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AN Jul 18. 2023

#002. 첫 데이트

DIY FAMILY

음,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게 생겼군!

이라는 내 생각은 또다시 박살났다.


이 모델같은 남자는 이상하게도 내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만남 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중, 

그가 보낸 저녁 사진의 난과 커리는 정말 맛있어 보였다.

먹고 싶어하는 나에게 그는 이번 주말 저녁에 본인이 아는 음식점에서 맛있는 커리와 난을 먹자고 했었다.

그래서 토요일 저녁, 그가 데려간 곳은 이태원의 ‘리틀 인디아’라는 식당이었다.


그에게 알아서 주문해 달라 부탁한 후,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조금 이상했다.

음식이 끊임없이 서빙되어 4인 식탁을 꽉 채울 정도였다.

이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그는 자신은 음식을 좋아하고 많이 먹는다고, 

이정도는 다 먹을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제서야 안심하고 맛있는 난과 커리를 즐기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먹는 이국적인 음식에, 잘생긴 남자와 나누는 즐거운 대화까지.

식사가 어디로 들어가는 줄 모르게 정신없이 대화를 즐기다 보니, 

배는 다 채웠지만 음식은 여전히 한가득 남아 있었다.


자칭 대식가인 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본인도 배가 부르단다.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에 남기고 자리를 옮기려는데 남은 음식을 포장해서 달랑달랑 들고 나온다.

왠지 조금 웃기면서도, 돈을 버리고 다니는 타입은 아니구나, 괜찮네. 생각했다.




자리를 옮겨 작은 맥주집에 도착했다.

웨이팅이 없는, 인기 없는 곳으로 갔을 뿐인데 

운이 좋게도 가게가 좁고 좌석이 적어 이야기 나누기 좋은 곳이었다.

그 곳에서 우리는 철학, 종교, 우주, 사회 문제 등 다양한 주제로 열띤 대화를 나누었고,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6시간을 보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저녁 시간에 만났다.




놀랍게도 비좁은 맥주집에서 6시간을 보낸 후, 

영업 종료 시간임을 알리는 맥주집 직원의 말에 확인한 시간은 오전 2시.

인천에 사는 그와 남양주시에 사는 나. 여기는 주말의 이태원.

우리는 즐거운 대화를 잠시 중지하고 택시를 잡으러 자리를 떴다.


토요일 늦은 밤의 이태원역은 지옥도가 따로 없다.

잔뜩 취해 싸우는 커플, 도로에 오줌을 갈기는 사람, 

택시를 잡으려 차도까지 서성거리는 사람 등… 


이 아비규환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집까지 가는 택시를 잡으려는 생각을 일찌감치 접게 되었고, 

무려 ‘트윈 베드’가 있는 숙소를 잡아 하룻밤을 함께 보내기로 결심한다.


당연하게도, 이태원 근방에서는 트윈 베드 룸뿐만 아니라 더블 베드 룸조차 찾기가 어려웠다. 

주말을 불태우며 청춘을 즐긴 자들이 이미 선점했던 모양이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씨름을 벌이다, 

겨우겨우 충무로역 근방의 레지던스를 찾아 예약하는 데에 성공했다.

다만, 침대는 하나뿐이었다.




사실 그다지 당황스럽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우리가 나눈 즐거운 대화 중에서 섹슈얼한 뉘앙스를 풍기는 문장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잘생긴 남자의 트리거를 당기는 주제는 너무나도 너드스러운 천문학 등의 주제였기 때문에.

일이 생긴다면 뭐…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지만 

이 너드와는 같은 침대에서 밤을 보내도 딱히 별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반쯤은 걸어가고, 반쯤은 겨우 잡은 택시를 탄 힘겨운 여정을 지나 드디어 레지던스에 도착한 우리.

녹초가 된 상태로 침대에 드러누워 중지했던 대화를 다시 나누고 있었다.

시간이 늦은지라 슬슬 눈이 감겨오고 나른해지는데, 남자가 갑자기 말했다.



우리 지금까지 너무 즐겁게 대화 나눴고, 가치관도 잘 맞는 것 같아. 
우리 연애관계로 사귀어 보지 않을래?




작가의 이전글 #001. 첫 만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