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는 오직 밤에만 외출할 수 있다. 햇빛을 받으면 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죽음에까지 이르는 XP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티의 단조로운 생활 속 유일한 낙은 한밤중 작은 기차역 앞에서 하는 버스킹과 자외선 차단 필름이 부착된 특수 창문 너머로 10년째 지켜보고 있는 짝사랑 찰리뿐이다.
어느 날 밤, 기차역에서 버스킹을 하던 케이티는 찰리를 만나고, 둘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연인이 된 두 사람은 매일 밤 데이트를 즐기며 꿈 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이도 잠시. 케이티의 병으로 인해 이들의 사랑도 위기를 맞게 된다. 이미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케이티와 찰리. 이들의 사랑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2018년 6월 개봉한 영화 ‘미드나잇 선’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기 힘든 최루성 멜로의 끝을 보여준 영화에는 2천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던 일본 멜로의 클리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불치병에 걸린 여자와 운명 같은 사랑을 나누는 남자’라는 뻔한 소재는 진부하게 느껴질 만도 하건만, 아름답고 서정적인 영상과 전개는 로맨스 팬들을 푹 빠져들게 만든다.
영화의 원작은 2006년 출간된 일본 소설 ‘태양의 노래’다. 달빛 아래 노래하는 소녀 ‘카오루’가 태양 아래의 서핑을 즐기는 소년 ‘코지’를 만나 나누는 사랑을 담은 소설은 같은 해 동명의 일본 영화 ‘태양의 노래’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TV 드라마, 뮤지컬로도 제작되며 일본 감성 멜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 ‘미드나잇 선’은 XP를 앓고 있는 소녀와 창밖으로 지켜보던 짝사랑 남자의 사랑이라는 원작 ‘태양의 노래’의 기본 설정을 그대로 차용했다. 여주인공이 부르는 감미로운 선율의 노래가 주축이 되는 것과 케이티와 카오루가 죽은 후 펼쳐지는 이야기 전개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미드나잇 선’은 원작 속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사건의 전개 등 주요 부분을 다르게 설정해 원작과는 다른 자신만의 이야기를 탄생시켰고, 원작을 뛰어넘는 극강의 멜로를 완성할 수 있었다.
원작의 ‘카오루’는 짝사랑 남이 당황할 정도로 직진 고백을 쏟아 놓는 당찬 성격이지만, ‘케이티’는 갑자기 만난 짝사랑 남 앞에서 어찌할지 몰라 얼굴만 붉히는 좀 더 전형적인 멜로 영화의 주인공으로 변경됐다. ‘태양의 노래’의 카오루와 코지는 서로의 엉뚱한 모습을 지켜보며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지만, ‘미드나잇 선’의 케이티와 찰리는 0.1초 만에 운명 같은 사랑에 빠져든다.
케이티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며, 눈 부신 햇살 속 찰리와의 시간을 만끽한다. 태양에 나선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에, 일생을 피해 다닌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케이티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느껴진다. 그렇기에 많은 이가 이 햇살 가득한 보트 위의 장면을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손꼽는다.
하지만 ‘태양의 노래’ 카오루가 삶을 대하는 자세는 케이티와는 정반대다. 바닷가로 여행을 온 카오루도 뜨거운 태양 아래에 나서지만, ‘우주복’이라 부르는 자외선 차단복을 끝내 벗지 않는다. 비록 얼마 남지 않았지만, 자신의 삶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서다. 이런 카오루의 모습은 한순간 모든 것을 내던지며 홀가분해진 케이티와는 또 다른 뭉클함을 선사하고,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곱씹게 만든다.
닮은 듯 다른 모습의 ‘미드나잇 선’과 ‘태양의 노래’는 조금씩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어느 작품을 봐도 훈훈하다. 뻔하긴 해도, 결코 식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감성 가득한 멜로의 정석을 보고 싶다면 영화 ‘미드나잇 선’이, 좀 더 현실적이고 풋풋한 청춘 로맨스를 원한다면 영화 ‘태양의 노래’가 좀 더 낫긴 하다. 또한, 이 두 작품의 여운으로 아쉬움이 남거나, 청춘 로맨스 이상의 감동을 얻고 싶다면 소설 ‘태양의 노래’는 꼭 보길 추천한다.
통플러스 에디터 김정아 jungya@chosun.com
통플러스 www.tongpl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