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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크에옴 Oct 03. 2018

약속의 그 브랜드 #1 EVE(이브)

좋은 브랜드는 고객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브랜드이다.

1. 서론: 이 시리즈를 연재하는 이유


나이키, 맥도날드, 코카콜라...브랜드 관련 서적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기업들이다. 이들의 눈부신 성공스토리를 읽다보면 ‘그래 이거야!’하며 무릎을 탁! 치게된다. 하지만 책을 덮고나면 항상 공허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은 왜일까. 물론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의 사례에서도 배울 점은 많다. 그래도 이렇게 ‘노는 물이 다른’ 세계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나는 스타트업 마케터다. 그런 나에게 버진이나 애플의 브랜드 전략은 정말이지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들을 따라하다간 아마 내 가랑이가 아니라 재무제표부터 반으로 찢어질 것이다. 난 우리회사보다 ‘약간’ 앞서나가는 기업들의 브랜드 스토리가 궁금했다. 나와 비슷한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래야 배운다음 최소한 따라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근데 브랜딩 공부한답시고 책을 몇 권 사서 읽어보니 개념정리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정작 보고 배울만한 사례가 부족했다. 구글링을 하다 지쳐버린 나는 결국 직접 찾아나가기로 결심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 바로 스타트업의 브랜드 스토리를 말이다.


이런 유명 브랜드들의 성공스토리는 감동적이긴 하지만 우리와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2. 좋은 브랜드란 도대체 무엇일까?


예전에 페이스북에서 어떤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산 적이 있다. 베개를 홍보하는 영상이었는데  포크레인으로 사정없이 밟아도 베개 속의 계란이 깨지지 않았다. 그 장면을 보고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나도 모르게 구매버튼을 눌러버리고 말았다. 이틀 뒤 설레는 마음으로 택배박스를 뜯고, 효과를 빨리 체험해보고 싶어서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각에 잠들었다. 하지만 자고 난 뒤의 어깨결림은 여전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개운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아직 이 물건에 적응이 되지 않아 그런줄 알고 한 달이 넘게 이 베개를 베고 잤다. 하지만 결국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 뒤늦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제품의 광고는 어깨결림이라는 내 painpoint를 잘 집어 내서 엣지있는 메세지로 설득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 베개는 실제로 나에게 어떠한 효용도 주지 못했다. 나에게 ‘숙면'을 제공해주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좋은 브랜드란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브랜드다."


그 약속은 고객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는 것이어야 하며, 결코 거짓이 아니어야 한다. 좋은 브랜드는 세련된 로고디자인, 압도적 성능, 세련된 광고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브랜드가 갖춰야 할 첫번째 덕목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 부합하는 스타트업을 찾던 중 내가 첫번째로 다루고 싶은 곳이 생겼다. 바로 ‘EVE’라는 브랜드다. 친환경 콘돔을 만드는 회사로 유명한 이 회사의 ‘비전’은 여느 기업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무의미한 단어들의 조합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심지어 헌법소원도 불사하는 등 말그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약속을 계속 어기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3. EVE의 약속 이행 심층분석

건강하고 안전한 성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소셜벤쳐


EVE는 콘돔, 러브젤 등 기존의 '성인용품'으로 치부되던 제품들을 의료적 관점으로 재해석 하여 건강하고 깨끗하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헬스케어 브랜드이다. 콘돔으로 시작하여, 러브젤, 외음부 세정제, 기능성 팬티, 최근엔 신제품으로 월경컵까지 출시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실 콘돔을 만드는 회사는 정말 많다. 먼저 해외브랜드에는 일본 회사인 사가미, 오카모토(전범기업이며, 위안소에 콘돔을 공급한 전례가 있으니 가능한 쓰지 않도록 하자), 영국의 듀렉스, 미국의 플레이보이가 있다. 요즘은 바른생각, 아우성 등 한국 브랜드 제품들도 인기가 많은 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국내외 쟁쟁한 브랜드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이 한국의 콘돔시장에서 EVE는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을까? 아니, EVE의 최근 활약을 살펴보면 생존을 넘어서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EVE를 런칭한 회사 '이브앤아담'은 2015년에 설립되어 업력이 3년 정도밖에 안된 신생 스타트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출액이 2017년 기준 13억이 넘었으며, 정말 탄탄한 충성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나포함). 뿐만아니라 최근에는 포브스에서 선정한 2018년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렇게 EVE가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EVE의 브랜드 컨셉에서 찾아볼 수 있다. EVE가 고객에게 약속한 핵심가치는 Healthy, Natural, Equal 세 가지이다. 단순히 멋지고 그럴듯한 말을 홈페이지에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다. EVE는 자신이 내뱉은 이 말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품개발, 판매, 홍보, 그리고 CSR까지! 고객과의 모든 접점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 브랜드 컨셉을 관리하고 있다. 이제부터 EVE가 고객에게한 약속 세 가지를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살펴보자.


EVE의 로고는 나뭇잎의 잎맥을 연상시키는 그래픽을 통해 친환경성에 대한 EVE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약속 1: 대한민국의 성문화를 개선하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EVE는 평등하고 공정한 성문화 정착에 관심이 많다. 특히 청소년들의 문제해결에 집중하고 있는데 정말 의미있는 CSR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이를 소개하자면 먼저 청소년에게 무료로 콘돔을 선물하는 '프렌치레터 프로젝트'가 있다. 경제적/사회적 어려움, 심리적 부담감 등으로 인해 콘돔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콘돔을 우편으로 보내줌으로서 접근성을 높이고자 함이다. 그리고 청소년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콘돔 디스펜서 설치 프로젝트 '청소년 콘돔자판기'도 진행 중에 있다. 그동안 어두운 공간에서 숨어서 사야만 했던 콘돔을 밝은 양지에서 만나볼 수 있게 함으로써 콘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하는 인식개선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EVE는 서울시립청소녀건강센터 '나는 봄'에 매 달 정기적으로 콘돔을 기부하고 있다. 기부된 콘돔은 성교육 교구로 활용하거나 피임이 필요한 청소년이 직접 가져갈 수 있다. EVE는 이렇게 자체 프로젝트를 하는데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법을 바꿔보려는 대담한 시도도 하고 있다. 청소년의 피임 접근성을 가로막는 여성가족부 고시가 잘못되었다고 '헌법소원'까지 시작한 것이다. 정말 최고된다.  


이외에도 EVE는 성교육, 페미니즘 관련 문화예술행사 후원, LGBTQ 행사 후원, 여성인권단체와의 연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이를 SNS를 통해 활발히 알리고 있다. 건강하고 안전한 성에 대한 접근성은 연력이나 성별, 특정 성적지향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제한되어서는 안된다고 믿고있기에 이렇게 열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진정성이 잘 어필되었기 때문인지 EVE의 행보는 항상 고객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다.


이브가 2017년 진행했던 사회공헌활동.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약속 2: 몸에 좋지 않은 성분은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EVE는 인체에 유해할 수 있는 화학물질을 첨가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브랜드이다. 따라서 모든 제품이 신체건강의 관점에서 설계되었다. EVE의 기준을 충족하는 '건강한 제품'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역경이 있었다고 한다. 신체에 유해한 성분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콘돔을 만들 수 있는 제조사가 국내엔 없어서 전세계를 뒤졌고 결국 태국에서 연구개발이 가능한 라텍스 제조사를 찾아냈다. 그렇게 니트로사민, 파라벤, 합성착색료, 합성 착향료 등 우리 몸에 유해할 수 있는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제거한 건강한 콘돔이 탄생한 것이다. 정말이지 이들의 열정과 끈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니트로사민은 국제암연구소 기준 제 2등급에 해당하는 발암물질로서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남성용 콘돔 절반 이상에서 검출되었다. 뿐만아니라 파라벤은 유방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진 인공 방부제의 일종이다. 합성착색/착향료도 여성의 몸을 교란시킬 수 있는 유해물질이다.


EVE콘돔 3종세트.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이 1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약속 3: 친환경적인 제품을 만들겠습니다.


EVE는 환경친화적 제품을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이는 환경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자연에 남기는 흔적을 최소화 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EVE의 포장재는 대부분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물질을 사용하여 만들어진다. EVE 제품의 패키지로 사용되는 모든 종이는 FSC 인증을 받은 친환경 용지이다. FSC 인증은 어느 지역에서 어떤 형태로 공급된 목재인지, 그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발생하였는지,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였는지, 지역생태계를 보호하였는지, 벌목된 목재보다 더 많은 나무를 심었는지, 지역 토착민과 동식물을 강제로 이주시켰는지 등에 대한 기준을 토대로 심사를 합격한 용지에만 부여되는 국제 환경마크다.


또한 EVE는 포장과정에서 쓰이는 비닐제품 사용을 줄이기 위하여, 100% 천연 Kraft Paper로 제작되는 포장완충 시스템인 ‘GEAMI(지아미)’를 사용한다. SFI(산림조합)과 FSC의 인증을 받은 자연친화적 포장재인 지아미는 기존의 버블랩(뽁뽁이)와 달리 친환경 재질로 만들어져 생화학적 분해가 가능하며, 테이프나 끈과 같은 2차 부자재가 필요하지 않아 사용 후 쓰레기 발생량도 줄어드는 친환경 패키징이다.


EVE 제품의 패키지로 사용되는 모든 종이는 FSC 인증을 받은 친환경 용지(ARCOPACK, SIMCOTE)이다.


이처럼 EVE는 브랜드 컨셉을 통해 고객들에게 제안한 가치들을 정말 '목숨걸고' 지켜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VE의 진정성있는 활동들을 지켜보자니 뭔가 경외심마저 든다. EVE의 사례를 조사하면서 결국 브랜드 전략이 비즈니스 전략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고객의 관점에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 고객에게 효용을 주는 약속을 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 그리고 일관성 있는 메시지 전달을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것. 그렇게 브랜드 관리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알게되었다. 정말 배울점이 많고 앞으로의 성장도 기대가 되는 브랜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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