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가짜예요

by 안신영


토요일 오후는 소란스러운 설렘으로 집안에 들어오는 봄의 노란 햇살마저도 가글가글 눈웃음 짓는 것 같다.


아침 일찍 제각각 직장으로 학교로 떠나갔던 가족들이 차례로 반가운 문을 열고 들어 올 때면 웅성거림은 다시 시작된다. 가족들을 위해 점심은 무엇을 준비할까로 고민도 해본다. 찌개도 하고 밑반찬에 특별한 음식이 있다면 토요일은 더욱 즐거워지지 않을까?
성찬이다 싶을 정도의 음식을 한껏 차려 놓고 7명의 식구들이 달그락거리는 식탁의 소리를 즐겁게 듣는다. 오랜만에 돼지 족을 썰어 가지런히 놓은 접시를 보고 남편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이 비싼 족발을 누가 사 왔어? 아버님이 사 오셨어?” 하며 내심 즐거워한다. 아버님께서는 `내가 안 사 왔다.' 하시며 자리에 앉으시고


“아버님 낚시 가시면 우리끼리 먹지 비싼 걸 왜 사 왔어-어?” 하며 가족들의 웃음을 끌어낸다. 아버님께서 조금 서운하신 기색으로
“이게 뭐야 비싸?” 하신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비싼 거예요. 요렇게 한 접시밖에 안되는데 9천 원입니다. 아버님께서는 놀라시며 차라리 갈치 한 마리를 사는 게 낫지 하신다. 생선을 좋아하시는 아버님의 당연한 일 성이시다. 요즘 물가가 얼마나 비싼데요. 갈치 한 마리도 우리 식구 먹으려면 1만 원은 줘야 해요. 하니 2-3천 원 주면 사는 갈치인데 하신다. 싸다 비싸다의 공방전이 일어난다.


아버님께서는 나를 힐끗 쳐다보시며 “백화점에서 사서 비싼 거야.”라고 하셨다. 부전시장(부산의 큰 재래시장)에 가면 얼마 안 한다고 하시면서 못마땅해하시는 할아버지께
“그건 가짜예요.”


하고 갑자기 둘째 딸 아영이가 얼굴이 발개져서 큰소리로 고함을 쳤다. 설왕설래하던 식탁은 한순간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모두들 아영이를 쳐다보았다.


“그건 가짜라니깐요!” 그때부터 아영이는 물가가 비싸다는 것으로 열을 올리는 가족들의 얘기를 듣다가 가격이 싼 물건 이름만 나오면 그건 가짜 예요를 연발했다. 제 언니가
“학교 앞에서 30원 하던 복사 비도 올라서 요즘 50원씩 해요”라고 하자
“그것도 가짜야” 하고 말해서 가족들은 웃느라고 허리를 못 폈다.


학교 앞의 복사 비는 다른 지역의 반값도 되지 않은 가격인데도 말이다. 할아버지께서 반찬거리를 비싸게 샀다고 안 좋아하시는 것 같으니까 제 엄마의 역성을 들겠다고 한 말이 “그건 가짜예요.” 였으니 우리는 그 아이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백화점의 현란한 불빛과 으리으리한 실내장식은 모든 물건을 비싸게 보이며 믿음도 준다. 물건에는 깎을 수도 값을 물어볼 필요도 없이 가격표가 붙어 있다. 가끔은 0의 개수를 잘못 보아 한 달 봉급에 해당하는 옷을 사려고도한다. 어수룩한 촌부에게는 짙은 화장에 약간의 웃음을 띤 판매원 아가씨들의 미소조차도 비싸게 보일 수밖에 없다.
재래시장에 가면 이거 얼마예요 저건 얼마예요 라고 쉽게 물을 수도 있고 물건 파는 아주머니 기분이나 사는 사람의 행색에 따라 바가지를 씌우기도 한다. 한 번은 가족들이 좋아하는 장어구이를 하기 위해 삐득삐득 반쯤 말린 장어를 사다 구웠는데, 그것은 장어가 아니고 잔가시가 많이 박혀 있는 `하마'라는 장어 사촌이었다. 장어가 싸다고 생각해서 온 가족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게 많이 장만했는데 가짜라니.....


시집살이를 하면서 어려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바지락을 사서 뚝배기에 된장찌개를 뽀글뽀글 끓여 아버님께 드린다. 아주 맛나게 드실 것을 기대하였다. “이 게발(바지락) 어디서 산 거고?” 갑자기 짜증 섞인 시아버님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동래 시장에서 샀는데요.” 하며 무슨 일인가 놀라 목소리가 기어 들어간다. 조개는 가끔씩 뻘과 기름 냄새로 나를 실망시킨다.


정겨운 시골장터 생각이 나서 가끔 오시게 장( 우리가 사는 곳의 근처에서는 5일장)에 들른다. 토끼가 필요해서 새끼 한 쌍을 샀다. 집에 오는 동안에 수컷이 계속 설사를 했다. 그 길로 바로 토끼를 판 아주머니에게 가서 토끼를 보여주며 바꿔 달라고 했다. 아침에 금방 사간 것이니까 바꿔 줄 줄 알았지만 시치미를 뚝 떼는 것이 아닌가. 그런 토끼 판 적이 없다는 것이다. 토끼는 가짜가 아닌데 토끼 파는 아주머니는 가짜인가 보다. 의류의 경우에도 그렇다. 시장에서 아침나절 물건을 샀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러 가게 되면 `이것을 바꿔 줄까? 안 바꿔 줄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상인들은 마수니 재수니 하며 바꿔줄 생각은 않고 야단치기 일쑤다. 돈은 가짜가 아닌데.....
그런 일을 자주 대하다 보니 백화점을 선호하게 된다. 이상이 있을 때는 교환도 해준다. 입다가 해어진 옷은 수선도 해준다.


대가족에 하숙생까지 이끌고 찬거리를 사러 매일 재래시장을 다녔던 시어머니 시절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사 온 생선을 먹고 식중독에 걸려도 누구를 탓하기는커녕 주린 배를 채우기에 급급했던 시절이 있었다. 횟가루를 섞은 두부와 물감을 탄 선지를 먹어도 신문의 1면에 실리지 않았던 시절을 잊어버리려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시장에 가면 가짜와 가짜 사촌들의 상표를 달고 그들은 모두 백화점에 납품되는 물건이라고 하지 않는가. 물을 들인 참조기는 노란 물을 뚝뚝 흘리며 나도 가짜예요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새댁 시절이야 혹 그럴 수 있겠지마는 십여 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어설프게 보이시나 보다. 물론 재래시장에 가서 시장 골목에 진열된 족발을 산다면 조금은 싸겠지. 백화점의 물건은 믿을 수 있어서 좋다. 손쉽게 찬거리를 사는 편리함 때문도 있다. 즐비하게 늘어선 진열대 사이를 헤엄치듯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며 사온 족발인 것이다. 눈이 휘둥그레질 그이와 좋아라며 탄성을 지를 아이들과 기분이 좋으면 입 꼬리를 가끔씩 올리시는 아버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족발 사이에 때라고는 전혀 끼지 않은 매니큐어를 칠한 것 같은 깔끔한 족발을.


그런 족발이 비싸다고 하셔서 완전히 기가 죽은 나.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아무런 말도 할 줄 모르더니 조금 컸다고 제 목소리도 낼 줄 안다. 중학생이 되고 용돈을 쪼개 쓰는 나이들이 되니 저희들도 물가가 치솟았다는 것을 실감하는가 보다. 엄마의 입장이 그토록 난처해 보였나? 곤란할까 봐 한마디 해준 “그건 가짜예요.” 는 잠깐이나마 궁지에 몰려 있던 나를 구해냈으며, 웃음의 골짜기로 몰고 갔다. 무한정 고맙고 기특하다. 품에 안고 다독여 주고 싶다. 얼마나 함축되고 멋진 말인가.


그리고 아이들 눈에도 값이 싼 물건은 가짜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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