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는 길냥이

때로는 길냥이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by 안신영

솔개천 둑을 따라 걸으며 먹이 찾아 청둥오리들이 왔을까 하며 고개를 쑥 빼고 둑 아래를 바라본다.

어라? 오리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길냥이 한 마리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미동도 하지 않는다.

길냥이의 눈길을 따라 시선을 옮겨 보지만 그곳엔 마른 갈대와 잡초만 무성하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깊은 상념에라도 빠진 모습이 안쓰러워 발길을 잡는다.

둑길 위에서 길냥이의 뒷모습 옆모습 밖에 볼 수 없어 정확한 표정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내 가슴은 벌써 쿵하니 내려앉았다. 애처로운 뒷모습에 먹이는 제대로 먹었는지, 어디 다친 곳은 없는 것인지 냥이의 안부가 궁금했다.


냥이들을 만날 때면 식빵 모양으로 앉아 눈만 굴려 주변을 살피거나 날아드는 새들에게 신경을 곤두세워 배를 낮게 깔고 포복자세로 응시하는 냥이를 발견할 때도 있다. 식빵 자세는 그래도 편안할 때인 것으로 보인다. 길냥이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다른 길냥이와는 싸움을 한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털을 칼같이 세우며 으르렁댄다. 상대방이 포기하고 돌아갈 때까지 결코 물러나지 앉는다. 느릿느릿 걸어 다니며 제 갈길을 가는 의연한 길냥이를 볼 때면 그래도 마음은 편했는데...


산책길에 만나는 크림색의 어떤 냥이는 벤치를 자신의 것인 양 턱 하니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잔소리도 한다.

" 그래, 그랬어?" 하며 추임새를 넣어 주면

"야옹 옹 야옹 옹" 하고 대답하듯 야옹거린다.


옆의 벤치에 앉아 동행인과 수다를 떨면 흘겨보며 자리를 떠난다.

"미안해 시끄러웠어?"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면 가던 걸음 멈추고 다시 앉기도 하는 길냥이는 어쩐지 고집 세고 자신감이 뚜렷해 보이는 고양이다.


길냥이도 인간세상에서 유행하는 멍 때리기가 전염이라도 되었나?

고양이도 멍 때리기를 해야 할 만큼 머릿속이 복잡한 것일까?


몇 년 전에 멍 때리기 대회가 2014년에 시청 앞 잔디밭에서 열렸다.

이후에 빗발치는 요구와 인기로 국제 멍 때리기 대회가 북경, 수원에서 차례로 열렸고 2016년에는 한강에서 멍 때리기 대회가 있었지만 요즘은 코로나 19로 인해 멍 때리기 대회는 열리지 않는 것 같다.


멍 때리기 대회 주최 측에서는 멍 때리기의 취지와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다음 백과 발췌입니다)


멍 때리기 대회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과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시간낭비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참여형 퍼포먼스다. 예술가 웁쓰양은 열심히 일을 하면 돈이 벌리 듯, 열심히 일을 했다는 것은 또한 시간도 버는 행위라고 본다. 벌어놓은 돈으로 커피를 마시거나 근사한 옷을 사는 사소한 사치를 누리 듯, 시간의 사치도 부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벌어놓은 시간은 언제나 새로운 일들로 채워지고, 우린 계속 바쁘게 살아갈 뿐이다. 혼자만 멍 때리는 것이 불안하다면, 다 같이 멍 때리면 어떨까.


멍 때리기 대회의 목적은 바쁜 도심 속에 멍 때리는 집단의 등장 자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바쁜 현대인들의 삶과 발칙하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집단의 시각적 대조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다. 멍 때리기가 과거에 시간낭비라는 시각이 있었다면 현재에 와서 그 의미가 달리 해석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대회라는 프레임은 목적지향적 활동으로 변환시킴으로써 멍 때리기 활동에 가치를 부여해 보려는 의도가 있다.



언제까지 움직이지 않으려나 동영상을 돌려 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동도 하지 않는 냥이를 바라보다 지치는 쪽은 나였다. 몇 초도 견디지 못하고 나는 가던 길을 가기로 했다. 산책을 하고 돌아와 보니 멍 때리던 냥이는 온 데 간데 없이 마른풀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요즘은 물을 보며 멍 때린다는 물 멍, 불을 바라보며 불 멍, 산을 바라보는 산 멍이 있다고 들었다.

친구가 산 멍 때리고 있다는 사진을 보내와서 산 멍도 있구나 했다. 햇살 좋은 날 남편과 함께 은평구에 있는 흥국사 너머의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들이 사진을 찍었다며 보내주었다.


TV 뉴스에서 멍 때리기 대회 소식을 접했을 때 특히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은 처음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대회에 몰려든 참석자들을 보고 놀랬다. 나도 놀랬다.

그런데 멍 때리기가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참가자들은 주어진 시간에 눈을 감아도 안되고, 졸아도 안된다. 물론 옆 사람과 말을 해서도 안되며 움직여도 안된다. 참가자들의 심박동 수를 체크하고 관람하는 시민들의 투표에 의해 우승자가 뽑히는 대회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우리들은 너무나도 치열하게 살고 있어 저렇듯 가끔은 넋을 잃은 듯이 멍 때리는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길을 걷는데도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지하철 버스에서도 먼산 바라보는 사람들은 보기 힘들다. 모두들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다. 나부터도 지하철에 오르면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읽느라 먼 길 갈 때면 기회라는 듯이 브런치를 열어 글 읽기에 바쁘다.


뉴턴은 사과나무 밑에서 멍하니 있다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냈고, 비판 철학자인 칸트도 머리 식히기에 좋은 산책을 즐겼으며,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과 보트를 타며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멍하니 있거나 휴식을 취할 때 아이디어가 잘 떠올라 인류에 보탬이 되는 좋은 글과 발명품이 나온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이제 우리가 저렇게 멍이라도 때려야 이 어려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나 보다. 대회 측의 요지를 이해하며 뇌 전문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뇌를 쉬어 줘야 좋은 것은 사실임이 분명하다.


코로나도 잊고 가끔은 넋을 잃은 듯이 있어 보는 것도 퍽 좋을 것 같다.


*친구에게 양해를 구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친구 부부 아들이 촬영)

*길냥이 사진: 안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