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발을 따끈한 물에 담근다.
불그레해지는 발등 위로 따끔따끔한 열기가 퍼져 올라 땀방울로 맺힌다. 어렸을 때 놀다 다쳐 생긴 흉터가 물속에서 어른거렸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랄 때에는 장난감이나 롤러스케이트, 스케이트보드와 같은 놀이 기구가 없어도 하루해가 짧았다. 돌멩이 한 개, 나무 쪼가리 하나만 갖고도 마을의 골목길을 누비고, 야트막한 언덕배기에서 해지는 줄을 모르고 즐겼으니까.
하루는 사촌 큰오빠가 큰 인심을 쓰듯이 우리가 타고 싶어 하던 끙게를 태워 준다고 했다. 끙게는 굵은 나뭇가지가 Y자로 되어 있는 모양이어서 한쪽의 나무 끝에 새끼줄을 묶고 두 개의 가지 위에 발을 얹고 앉아 있으면 앞에서 끌어야 하는 조금은 위험한 놀이였다. 사촌 언니들과 나는 신바람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오빠의 뒤를 졸졸 따라나섰다.
큰오빠는 끙게를 끌어 주다 다칠까 봐 불안해하면서도 누이동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기꺼이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드디어 끙게가 출발을 하자 주변의 나지막한 집들과 산이 비잉 비잉 돌아갔다. 하늘은 내려앉았다 또다시 올라갔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언니들과의 까르륵 대는 소리도 하늘로 올라갔다.
`아차' 하는 순간 돌부리에 부딪쳐 끙게가 균형을 잃으면서 왼발이 끙게 밑에 깔렸다. 앞에서 달리는 오빠는 뒤에 있는 우리들의 상황은 모른 채 동생들을 신나게 해 주느라 더 빨리 달렸다.
“아악!” 소리치면서
“그만! 그만! 오빠 그만 가! ” 다급하니까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자 오빠가 섰다. 발은 형편없이 뭉개져서 피로 범벅이 되고 뼈가 보이는 듯 희끗희끗한 것이 보이자 오빠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어쩔 줄을 몰랐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오빠에게 앞으로는 끙게를 태우지 말라는 불호령을 내리시고, 야단맞는 오빠의 등 뒤로 큰 조카를 원망의 눈으로 바라보던 엄마가 서 계셨다. 발등 위에 생긴 흉터를 볼 때면, 땀을 흘리며 태워 준 사촌오빠와 끙게의 추억이 떠올라 흙 내음이 아련한 시골길이 그리워진다.
그날 이후로는 즐거웠던 끙게 놀이는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 손에 끌려 씨 뿌린 후에 흙을 덮는, 농기구로 돌아간 끙게는 우리들과 놀던 때를 그리워하듯 사랑채 흙바람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 후 서울로 이사한 뒤에는 그 놀이 자체를 아예 잊어버렸다. 도시의 아이들은 그런 놀이를 전혀 몰랐고 끙게도 없었다.
우리는 도시에 살면서도 나와 똑같은 발등의 상처를 내 딸아이에게 남겨 주고 말았다. 난 끙게를 끌어 주지도 못했고 내가 보았던 그 시골길의 아스라함도 보여주지 못하면서 딸아이의 발등에 내 추억 같은 상처를 남긴 것이다.
딸아이는 남편의 품에 안겨 있었고,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와 수원에서의 못살던 그 시절에 젖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숭늉을 놓을 자리에는 아무런 위험한 구석이 없었다.
“여기 숭늉 있어요.”
부엌에서 끓인 숭늉을 방안에 들여놓고 돌아서는 데
“으앙!”
자지러질 듯한 아이의 울음이 귓가를 때렸다. 남편이 친구와의 이야기에 빠져 호기심 많은 딸아이가 기어 다니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오빠 그만 가!' 옛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누가 뜨거운 물을 여기에 놓았느냐”며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일그러지는 시동생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발등의 화득거리는 열기로 딸아이는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여리디 여린 살갗은 금방 부풀어올라 물집 투성이가 되었다. 아픔으로 작은 몸을 떨며 우는 아이를 치료했다. 가끔씩 한숨을 토해내듯 우는 아이를 등에 업고 골목길에 눈물을 뿌리며 서성댔다.
식구들에게 얼굴도 들지 못할 곤혹스러운 입장은 `이것이 꿈이었으면' 하고 천 번 만 번 되뇌었다. 하지만 아우성치며 달려드는 뼈아픈 상처 그대로의 발만이 내 눈앞을 어른거렸다. 어릴 때 큰 충격을 받으면 아이들은 보통 마음이 내성적이고 열등감을 갖는 경향이 있다는데.... 이런 걱정과 함께 `여자 아이 에요, 제발 흉터 없이 낫게 해 주세요' 하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모든 신들에게 간절하게 빌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추억 어린 내 것과는 전혀 다른 흉터를 어린 딸의 발등에 남기고 말았다.
그 날 이후 유난히 숭늉을 좋아하는 시동생과 가족들에게 숭늉은 치가 떨리는 아픔으로 머릿속에 박히게 되었다.
아이가 커 가면서 가끔씩
“엄마, 내 발등이 왜 이래요?” 하고 물어 온다.
물끄러미 딸애의 발등을 보면서 잠시 할 말을 잊는다. 집안에 손님이라도 들어서면 어느새 방안에 들어가 양말을 신고 나오는 아이가 애처롭다. 그래도 딸아이는 내 눈치를 살피면서 엄마와 같은 곳에 흉터가 있다고 애써 헤헤거린다. 또 흉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끙게 타기를 좋아했던 나처럼 그저 밖에서 노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발등에 보기 흉한 흉터가 있지만 그 애는 자꾸 밖으로 나가 끙게를 찾으려 한다. 위험하게 경사진 시멘트 바닥을 청바지가 다 닳아 엉덩이가 보일 정도로 신나게 논다.
그런 흉터가 있는 발일지라도 둘째는 우리 집 여자들 중엔 가장 큰 신발을 신고서 씩씩하게 자란다. 유난히 긴 엄지발가락은 끙게를 끌려고 힘을 주던 사촌오빠의 발을 참 많이도 닮았다. 그 애의 발등을 보면 가슴이 울먹여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끙게가 남긴 상처가 아파서 일까?(1997)
*끙게; 씨를 뿌린 다음에 흙을 덮는 농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