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휙 하고 지나가니 낙엽의 떼가 와르르 굴러간다.
아스팔트 위로 몰려다니는 낙엽을 바라보며 호젓한 산길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회색 빛 콘크리트 숲에서 만나는 낙엽은 서글프기만 하다. 낙엽이 딱딱한 아스팔트 위에서 발길에 밟히니 마음이 안타깝다. 황톳길이라든가 오솔길이라 던 지, 아니면 나무숲에 쌓여 있어야 포근한 느낌과 함께 덜 서글플 것 같다. 왠지.
가을의 첫 내음을 맡고 싶어 이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여행을 가고 싶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잠깐 나무 숲을 만나보면 좋을 것 같은 생각에 먼 산을 바라본다. 아직은 푸른색이 더 많은 도시의 한가운데에 있는 산이 외롭다. 울긋불긋 색색이 물든 가을 산이 보고파서 친구와 길을 떠나 본다.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는 먼 산들은 파란 하늘 위로 고운 빛을 띄워 보낼 듯이 형형색색이다. 아롱다롱 마치 몽글몽글 피어나는 구름 꽃 마냥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색깔 옷들을 입고 있다. 거대한 산은 작은 덩어리들의 색깔 뭉치인 듯이 서로들 품에 안고 그대로 서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데 사람들은 그저 바삐 지나간다.
곁에 있는 일행인 그녀는 가을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느라 할 말을 잊고 침묵하고 있다. 할 말이래야 늘 일상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야기일 뿐. 그렇다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둘은 말없음표를 만들고 먼데를 바라본다. 도시를 잠시 벗어났는데도 맑은 공기가 싸하니 피부에 감돌고 무겁던 몸조차도 가벼워짐을 느낀다.
좁다랗게 보여 끝이 보이지 않는 길. 통도사, 절 입구에 서서 심호흡을 해본다. 도시에서 혼탁해져 있던 몸속의 나쁜 공기가 전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아름드리 노송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길 위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른 소나무 가지 사이로 점점이 박혀 있는 청자 빛 파란 하늘이 내게로 떨어질 것 같다. 싸르락, 한줄기 바람소리에 소나무 갈비가 우리의 머리 위에, 흙 길 위로, 소리 없이 흐르는 냇물 위로 살포시 내려 않는다. 또 한차례 쏴아- 하는 바람소리에 잔잔한 나뭇잎들의 춤사위가 호젓한 숲길의 정적을 깨트린다.
“아--- 너무 좋다!” `너무 조오타'라는 말 이외에는 할 말이 없어서 연거푸 되뇌다가
“오늘 `너무 좋다'를 백 번쯤은 하겠다.” 했더니 그녀가
“'너무 좋다'가 오늘 모서리 닳겠다.”라고 하는 바람에 우리는 까르르 웃고 또 웃곤 한다. 우리 둘은 시골 출신이라서 나무를 바라만 보아도 정겨워서 쳐다보고, 냇가에 수없이 많은 바윗돌만 보아도 감격하고 옛이야기를 끄집어내고는 상념에 젖어 본다.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냇물 위로 떠다니다가 켜켜이 쌓여 있는 아름다운 낙엽을 바라본다. 맑은 물빛에 목욕을 한 듯 더욱 빛나는 빨간 단풍을 발견한 그녀가 살며시 집어 든다. 해묵은 추억에 빛깔을 입히기라도 할 듯이 조심스럽게.
20여 년이 다 된 듯하다. 학창 시절에 수학여행의 길목에 들렸던 곳을 다시 와보니 모든 것이 새롭다. 그녀도 오래전에 친구와 와 보고서 오늘이 처음이란다.
“그때는 이 길 밖에 없었는데 새로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생겼네.”
불만이 가득 차서 둘은 똑같이 합창하듯 말했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을 때 와 보았던 곳이다. 입구에 상점도 많이 생기고 투숙할 수 있는 장소가 여러 군데라서 경관도 너무 많이 해치고 있다.
숲에 난 길 한 옆에 앉아 본다. 낙엽이 푹신하게 쌓여 있는 곳에 앉아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낭만을 일으켜 본다. 여자인 까닭에 가슴속에 품어진 이야기도 많고 현실에 묻혀 툭 터놓지 못하는 여러 심정들을 토로해보기도 한다. 살면서, 나이 들면서 더욱 서운해지는 마음은 무슨 까닭인지.... 주부의 일상이 자신보다는 가족에게 매여 있기 때문이 아니냐며 서로를 위로한다.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을 갖자고 다짐도 해본다. 자신을 사랑해야 온 가족이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도 해본다.
가끔씩 시계를 바라보며 밖에 있어도 집의 일을 걱정하는 것이 한순간도 없음을 알고 툭툭 털고 일어나 돌아오는 길을 재촉한다.
가을을 만나고, 가을을 느끼고 우리는 행복해한다. 도시에서 느껴 보지 못한 풍요로운 가을의 내음에 코를 킁킁대기도 한다. 가슴속으로 비집고 들어온 가을의 고운 빛깔들이 우리를 애드벌룬처럼 두둥실 뜨게 만든다. 겨드랑이 사이를 스치는 가을의 바람마저도 우리를 축복하듯 한 떼의 갈잎을 선사한다. 낙엽의 비를 내려온 몸 위로 춤을 추게 한다.
가끔씩 호젓해지고 싶을 때는 마음에 맞는 친구와 길을 떠나세요.
시외버스를 타고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세요.
우리의 인생은 약속되어 있는 길을 지나가고 있는 거랍니다.
풍경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요.
잠시 일탈을 꿈꾸세요.
바라보세요. 느껴보세요.
이 가을을 더욱 멋지게 감상해 보세요.
*photo by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