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서 편지가 왔다.
우편물이 대체로 많이 배달되는 통에 계절이 계절인 만큼 문단에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 연하장 대신에 보낸 편지인가 했다.
누굴까? 하며 뜯어보는 내게 히죽히죽 웃으며
“연애편지, 연애 편지지?”
하는 그이에게 내보이며 편지를 흔들었다.
“내가 읽어 줄게.” 하며 서둘러 뺏는다.
뜯어보니 글씨체와 문장이 나이 든 사람이구나. 대략 훑으며 끝을 본다. 아, 수필을 읽고서 보낸 편지로구나. 그이는 소리 내어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내용은 `부산 수필문학'에 실린 졸작 `견공과의 인연'을 보고서 독후감을 써 보낸 것이다.
편지의 주인공은 구포 시장 가까운 곳에서 살고 계신 지긋한 연세의 아저씨다. 구포 시장을 지나칠 때마다 개소주와 영양탕 전문점 앞의 철창 안에 있는 개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다.
한편에서는 개를 먹는 식품으로 쓸려고 철창에 가둔 인간이며, 한쪽에서는 개와의 특별한 인연에 대하여, 개를 사랑한 것에 대하여, 개와의 이별을 안타까워 수필을 쓴 사람이라는 것이 대조적이다. 그분은 나의 수필을 읽게 된 연유와 개에게 공(公)이라는 칭호를 붙여가며 위해준 일에 대하여 특별히 마음에 들어 펜을 들었다고 한다.
세상에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개를 사랑하면서도 식품으로서의 사철탕과 개소주를 철 따라먹는 사람도 있다. 88 올림픽을 치를 무렵에는 혐오식품이라면서 도시에서는 팔지 못하도록 하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개를 좋아한다. 개하고의 사연은 참으로 많아서 그중의 한 가지를 수필로 옮겼다. 그 수필을 보고 존경한다는 뜻의 편지를 받고 보니 연예인들이 팬레터를 받은 것처럼 나도 팬레터를 받은 걸까?
팬레터라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연예인들이 받는 팬레터는 수많은 것들 중에 제일 먼저 띄고 싶어 온갖 치장을 다하여 보낸다. 그들이 공개하는 엽서, 편지들을 보면 기상천외한 것들이다. 편지봉투도 눈에 잘 띄는 빨강, 녹색, 보라색들이 주조를 이루고 엽서에 그린 그림이 혹시 비라도 와서 젖을까 봐 비닐코팅을 한 것들도 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전에 한 통의 엽서로 인해 꽤 오래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이 생각난다. 대학 시절에 `수필문학' 독자란에 “호두”라는 시와 수필이 실렸다. 얼마 후 경북 울진 후포리라는 곳에서 글을 잘 읽었다는 엽서가 왔다. 그런데 그 엽서의 글이 얼마나 달필이고 문장이 좋은지 당장 답장을 써서 부쳤다. 그 후로 얼굴도 모르는 이정례 언니와 펜팔을 하게 되었다. 바닷가 조그만 어촌에서의 삶을 간결하고 애절하게 보내왔다. 사라호 태풍이 휘젓고 갔던 마을의 얘기도 들었다. 도시에서의 삶과 아주 대조적인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리고 바닷가 미지의 언니에게 푹 빠졌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조그만 라디오도 선물하고, 졸업작품으로 만든 실크 스카프도 보내줬다.
그 언니는 집에서 말린 오징어를 정성스레 소포로 보내왔다. 그때 먹어본 오징어의 맛은 일품이었다. 그때까지 시장에서 사다 먹어본 오징어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우리 식구 모두 맛이 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어쩌다 맛이 없는 오징어를 먹을 때마다 나는 정례 언니를 생각한다.
음악과 문학에 대하여, 그 당시에 잘 듣던 가곡 `비가(悲歌)'에 대하여 얘기하고 tv가 없는 그곳에 tv를 보내주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그 언니가 경주로 시집갔다는 편지를 전해온 뒤로 우리의 편지는 끊겼다.
부산으로 시집을 와서 살지만 울진은 여전히 머나먼 곳이다. 신혼여행을 경주로 갔을 때는 어렴풋이 생각나는 주소로 인해 찾아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추억이, 만나서 볼품없어지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가끔은 울진에 가서 후포리라는 어촌을 찾고 싶다. 정례 언니를 만나지 못해도 언니가 살았던 곳, 한참 미래를 꿈꾸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던 시절에 주고받은 편지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말이다. 순수했던 시절의 한 추억을 오래오래 가슴에 담아두고 싶다.
늦은 밤 연세 드신 아저씨의 편지가 오래전 아름다웠던 정례 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오래도록 후포리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정례 언니도 그때의 나를 기억할까? 엽서 한 장, 격려의 편지 한 장에 받는 감동을 오래 지니고 싶다. 그분 말씀대로 어렵지 않은 글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끊임없이 쓰고 싶다. (1996)
*photo by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