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그들은 없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내게 달려들어 뽀뽀를 해대고, 춤을 추듯 껑충대던 그 모습도 더 이상 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내게 기쁨이고 또 다른 행복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처럼,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의 흐뭇함처럼 그들은 내 마음속 깊숙이 자리했습니다.
일터에서 돌아오는 가족 하나하나에게 달려가 반가움을 표시하고 애정표현을 잊지 않던 그들이었습니다. 고즈넉한 시간들을 활기 있게 소생시키는 그들이었죠. 그들은 무뚝뚝하고 바쁘다며 돌아앉아 자신의 일에 몰입해서 가족을 등지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낫습니다. 그뿐일까요. 배신을 일삼는 요즘 세태에 그들은 좋아하는 주인에게 끝까지 충성하는 고집이 담겨있는 사랑스러운 가족 이상입니다.
비가 오시는 날만 그들의 발을 묶었지요.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시켜주는 일은 주로 제가 했습니다. 모두들 학교와 일터로 떠나고 나면 그들을 데리고 나서는 일은 제게 남겨진 몫입니다.
그들이 풀밭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볼일을 보는 동안 저는 하늘을 봅니다. 나무들을 봅니다. 쪼그리고 앉아 들풀을 관찰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많은 발견들을 했습니다. 민들레가 피고 지는 봄에서부터 염주 꽃과 붓꽃이 제 힘껏 얼굴을 붉혀내며 여름을 지냅니다.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갈대가 휘적휘적 갈바람에 부대끼면 또 다른 발견을 합니다.
봄의 민들레 풀 씨가 날려 어느새 다시 꽃이 피어난 것입니다. 이곳이 남쪽이어서 인지 봄꽃의 씨앗이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서 새움을 틔우고는 또다시 앙증맞은 꽃을 피워내는 일 말입니다. 꽃 냉이와 별꽃, 지천으로 피는 너도 아재비 별꽃, 금잔화는 가을과 겨울을 상관도 않고 황금색 꽃을 피워냅니다. 선홍색 빛깔의 동백은 겨울의 끝에서 봄까지 꽃을 피워내다가 어느 날 꽃 송이채 뚝뚝 떨어져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일도 말입니다.
겨울도 봄날 같은 날들이 많아 사계절 초록 풀과 꽃을 보는 일이 행복에 겨웠죠. 이런 일들이 그들을 산책시키는 일에서 발견하는 큰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사각의 콘크리트 숲에 갇혀 흘러가는 구름의 뒤를 쫓을 일이 있었을까요?
그들이 우리와 가족이 되고서 가족들은 서로가 그들을 안아 보려고 쟁탈전을 벌이듯 했습니다. 모두들 자기 곁에 재우고 싶어 했습니다. 나도 가끔씩 녀석들을 팔베개를 해주고 곁에 재웠습니다. 남편은 녀석들을 껴안고 자는 나를 이해해주었습니다. 남편 또한 누구보다도 그들을 좋아했으니까요.
작은 봉제 인형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던 지원이 때문에 딸들의 책상 위에 있던 인형들은 모두 방바닥, 거실 바닥으로 내려오게 되었지요. 혼자서 물고 던지고 하던 것이 싫증이 나면 우리에게 물고 옵니다. 물고 와서는 손 앞에 놓습니다. 눈빛과 행동은 그 인형을 멀리 던져보라는 뜻입니다. 인형을 들어 멀리 휙 던지면 어느새 달려가 물고 뛰어 옵니다. 앞 머리털을 휘날리며 뛰어오는 모습은 살아있는 인형 그 자체입니다.
그 녀석은 저의 덧버선을 좋아했습니다. 앉아 있으면 살짝 물어 벗겨내서 달아났다가는 다시 옵니다. 저 더러 손에 잡고 있으라며 신호를 보냅니다. 덧버선을 잡아주면 으릉, 으르렁거리며 물고 늘어집니다. 녀석에게는 큰 오락이며 즐거움인 모양입니다. 한동안 놀아주지만 녀석의 놀이시간보다는 사람인 나는 무료하고 지치게 마련, `그만' 하면서 돌아앉습니다. 그래도 덧신을 물고 쳐다봅니다. 그러면 딴전을 피우며 대꾸도 않지요. 몇 번 애절하게 바라보다가 저만치로 가서 두발을 엎드려 앞으로 뻗고는 얼굴을 묻습니다. 가느다란 한숨소리와 함께.
한숨소리조차도 귀엽기만 한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피우던 재롱을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습니다. 너무나도 많기에. 아니면 너무 좋아서 하나하나의 행동에 모든 의미를 붙여가며 사랑하는 방법을 세웠는지도 모릅니다. 그토록 기쁨과 행복을 주던 그들이 우리 곁에 없는 지금, 그들이 갖고 놀던 인형들을 버리는 일을 서둘러했습니다. 집안 구석구석 녀석들의 모습이 배지 않은 곳이 없어 절절히 아려오는 가슴입니다. 가족들은 누구도 먼저 녀석들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아직도.
평온한 일요일 아침 산책하던 길에 이웃집의 큰 개에게 물린 지원이는 허무하게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마치 녀석이 가지고 놀던 봉제인형처럼 물려서 몇 번 흔들리다가 숨이 끊어진 것입니다. 어떻게도 손을 써 볼 수 없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 녀석이 우리에게 행복을 준 것에 비하면 우리는 무능했습니다. 한마디로 비겁했습니다. 그 큰 개를 한번 때려 주지도 못하고 발로 차주 지도 못했습니다. 괴물 같은 그 개의 입을 벌려 녀석을 꺼내는 일도 힘든 일이었지만 선혈이 낭자한 녀석을 안고 슬픔과 분노로 휩싸이는 정적만을 감지했을 뿐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같이 지켜본 루루는 그 날부터 곡기를 완전히 끊다시피 했습니다. 일주일 가량은 밥을 씹어 먹이고, 영양제도 먹였지만 토하기 시작해서 음식물을 삼키지를 못했습니다. 지원이의 2세를 가진 지 이십여 일이 지난 뒤에 그런 일이 생긴 것입니다. 모성을 자극해보며 힘을 내서 밥을 먹으라고 평소에 좋아하던 오징어를 삶아 줘도 고개를 돌려 외면하기만 했습니다. 저녁에 식구들이 돌아오면 비칠대며 걸어가 인사를 하고는 돌아와 누워 퀭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스러져 가는 한 생명을 손 놓고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어서 영양수액을 맞혀가며 간호했지만 우리의 간절한 소망과는 달리 루루의 생명도 꺼져 가는 불씨였습니다. 배 안에 있던 새끼들은 이미 죽어 어미의 생명까지도 위협했던 것입니다.
며칠 사이로 두 녀석을 잃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산책했던 길은 가지도 않습니다. 몇 날을 눈물을 뿌리며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발을 헛디디기도 했습니다. 가족 친지의 죽음이 아니어도 이럴 진데 만약 가족이나 부모형제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른들이 산사람은 살게 마련이라고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하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처음은 괴로워서 못 살 것 같더니 이제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계절은 변함없이 돌고 돌아 그들과 함께 누렸던 봄 햇살이 눈이 부십니다. 온천천 둑길에 서 있는 벚나무보다도 한 달여 일찍 피어나는 우리 아파트의 다섯 그루의 벚꽃은 화사하게 웃음 짓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아직도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그들이 내게 주고 간 슬픔의 덩어리가 이름 모를 풀꽃만 보아도 목안을 타고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간혹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까운 사람은 하느님이 먼저 데려가신다는 말을 합니다. 하늘나라에서 더욱 필요하여 쓰시려고 일찍 데려가신다는 말 말입니다. 우리 지원이와 루루도 하늘나라에서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하여 일찍 데려가신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들이 아니더라도 기쁘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위안을 해봅니다.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이 어긋나 돌아오지 못하는 곳, 제5의 공간이 있다면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그들이 영원히 살아있는 동안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