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가을 소풍

추억의 시간, 이런 날도 있었지요.

by 안신영

택시에서 내려 산막을 노크한다.

문을 열어 주시며 깜짝 놀라시는 선생님.

"안 그래도 연락이 없어서 전화를 해 볼까 하려던 참이야. 오후에 오려고 연락이 없나 했지. 새벽부터 준비해서 왔겠구나. 어떻게 왔어? 택시? 마중 나갈 건데."

"어제 늦게 올라오신다고 해서 푹 주무시라고 연락 안 했어요. 잠 좀 주무셨어요?"

"커피 하실래요?"

"응. 커피는..." 커피를 꺼내 주시려고 움직이시는 선생님.

"아~ 원두 내려왔어요."

"완벽하네."


잠시 커피를 마시며 안개 자욱한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 좋다. 좋은 사람, 은은한 향의 커피, 음악이 흐르는 공간.

며칠 사이에 나뭇잎을 다 떨구어 내고 맨몸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들. 쇠락의 시간을 알려주는 듯한 낙엽더미. 열 지어 서 있는 나목 사이사이로 저 너머의 하늘이 옅은 빛으로 눈에 들어온다.

싱크대 앞으로 돌아와 재료들을 꺼내면서

"점심엔 콩나물밥 어떠세요?"

"자기가 해주는 것 뭐든지..."

"월남쌈은 좋아하세요?"

"으.... 응"


이상하다. 대답이 신통치 않으시네.

콩나물밥을 준비하느라 쌀을 찾아 씻어 불을 동안, 멸치, 양파, 마늘을 넣고 육수를 만든다.

양념장 만들 때 필요한 육수와 시원한 김칫국의 재료인 육수가 만들어지는 동안 콩나물을 씻고, 양념해 온 다짐육을 꺼내 솥 밑바닥에 깔아 넣는다. 콩나물을 넣고 불린 쌀을 얹고 다시 다진 육 콩나물을 넣은 후에 코드를 꽂는다. 육수를 한 국자 떠서 식힌 다음 간장, 부추, 마늘 다진 것, 당근채, 고춧가루, 깨소금을 넣고 완성 식탁에 올려놓는다. 다음 순서 애피타이저. 계란도 삶아 왔고 모든 재료는 접시에 얹기만 하면 요리가 되도록 준비를 했기 때문에 아삭이 상추와 라디치오, 사과는 오리엔탈 드레싱을 하고 참치와 등분한 계란으로 모양을 낸다. 좀 늦은 아침의 샐러드로 입맛을 돋우고 콩나물밥을 먹기로 한다.


"음.... 맛있다!"

맛있게 드시는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난 이런 시간이 마냥 좋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이 시간을 천천히 즐기고 싶은 것이다. 하여 긴 시간 음식 재료를 장만하는 데도 즐거움이 가득하다. 드디어 밥이 다 됐다며 전자자에서 삑삑 소리를 울린다.

식사 양이 적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콩나물은 많이 넣고 쌀은 조금 넣어했는데도 1인분 가량이 남았다.

대접에 남은 밥을 담아 놓으며

"이 건 나중에 데워 드세요. 맛은 좀 덜 할 거예요."

"응. 알았어."

양념장에 콩나물밥을 비벼서 입에 떠 넣는 순간부터 감탄하시는 선생님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음~ 맛있다. 이게 몇십 년 만이야?"

아마도 어렸을 적 어머님께서 해주신 이후로는 못 드셨던 것 같다.

"양념장은 또 어떻게 만든 거야?"

흐뭇한 미소로만 대답을 대신하며 선생님만 바라본다. 정말 맛있다고 드시는 선생님. 양념장에 부추를 더 넣어 놓자고 하셔서 듬뿍 넣어 준비해 놓는다.


"난 저녁에도 콩나물밥 먹을 거야."

"그럼 월남쌈은 야식으로 드시면 되겠네요."

"그러자."

*야채 골고루~

음악 얘기로 돌아가서 메일로 음악 파일 보내드린 것은 읽어 보셨나요? 컴에 저장해서 들어 보시라고 했는데.... 아니 몰라. 음악방에 들어가서 매일 들었는데.

아구 구... 선생님은 문자 메시지도 잘 안 열어 보시고 일 이외에는 관심이 없으셔서 깜깜이시다.

할 수 없이 바탕화면에 음악파일을 깔아 드리고는 듣고 싶으실 때 여길 클릭하세요. 연속으로 음악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그게 아쉽지만 그런대로 선택해서 들으시면 될 것 같다고 알려 드린다.

핸드폰에 로컬로 해드리자니 기기 등록해야지, 월 요금 지불해야지. 나처럼 한가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지 선생님은 할 일이 많으셔서 불가능한 일. 그냥 제 블로그 음악방에서 영화음악, 클래식 음악 등이 연속으로 재생되는 것을 보여 드리고 여기서 들으세요. 했더니.


"안 그래도 몇 시간씩 여기서 듣고 있어. 좋은 음악이 많드라."

"선생님 덕분에 영화음악 공부 많이 했어요. 또 옛날에 봤던 영화 장면 떠올리면서 들으니까 좋더라고요."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무주에서 시인들 모임하고 리조트에서 밤바람 맞았더니 감기 기운이 여전하다고 하신다.

'감기엔 밤바람이 가장 안 좋은데. 음의 기운이라고 해서요. 감기 안 나아요. 무조건 쉬셔야 해요.'


그런데

"산책 갈까? 소풍 갈까?" 하신다.

"난 여기로 소풍 왔고요. 쉬고 싶어요. 제대로 잠도 못 잤거든요."

"그랬겠다. 재료 준비한다고 밤새웠겠다."

"저 정도 갖고 밤새우진 않아요. 여기 온다는 설렘으로 잠이 안 온 거죠."


가을의 정취는 역시 숲이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나목들과 아직 선연하게 남아 눈길을 끄는 단풍나무 몇 그루를 만난다. 조금은 쌀쌀한 기온에 팔짱을 끼고 걷는다. 손이 차갑다고 선생님 주머니에 손을 넣으라고 하시고는 손을 꼭 잡아 준다. 선생님의 최대의 마음 표현이시지 아마도... 말없이 걷기만 해도 충만되어 오는 기쁨. 해는 있으나 안개로 인해 낮달처럼 쓸쓸하게 보였다. 잎을 다 떨어내고 작은 구슬처럼 영롱한 보라색 열매는 무어냐고 묻길래 좀 작살나무 열매라고 답해 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풍성했던 나무들의 모습이 겨울을 맞아 나목으로 두 손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을 말없이 전해 준다.


밤나무 높은 가지 위해 초록의 식물을 가리키시며

"밤나무에 기생한다는 저 식물로 차를 달여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하던데.... 이름이 뭐더라?"

"겨우살이 풀이예요. 항암 효과에 좋다며 차로 많이 해 먹어요."

예전에 시어머님 방광암 치료에 도움되는 항암 약재를 찾아 약재상에도 많이 다녔었는데 이름이 겨우살이풀, 참나무, 밤나무, 오리나무, 버드나무 등서 기생하는데 항암 작용을 하며 암 치료에 사용되고, 혈압을 낮추고, 산경 통과 관절염의 약재로 쓰이는 약효가 뛰어 난 식물이라고 얘기해 준다.

*아삭이상추. 라디치오.

산속은 일찍 밤이 찾아온다.

"월남쌈 먹자." 시며 코냑을 꺼내시고 칵테일을 만드신다.

"콩나물밥 드신다면서요?" 하면서도 준비해 온 재료를 접시에 담는다.

각양각색의 재료를 보시고는 놀라시는 그를 보며 월남쌈 재료를 잘 해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까 전에 야채 꺼내 놓는데 나더러 몇 날 며칠 샐러드만 먹으라고 야채를 저렇게 많이 싸왔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게 다 쌈 재료야? 이게 대체 몇 가지야? 하나, 둘, 셋, 넷..... 열다섯?"

"소스는 안신 영표라고 했지?"

"네, 유정이 시어머니 될 분이 깔끔하고 입맛에 잘 맞는다고 하대요. 그냥 우리 가족 입맛에 맞도록 만든 거예요."

"음... 정말 맛있다. 난 베트남에서 먹을 때 별로였어. 맛이 없더라고."

"아. 그래서 아까 대답이 별로 셨구나." 이해가 간다.

"보통 우리 애들, 손님들, 모두 맛있다고 엄청 먹어요. 삼겹 수육 말고도 오리 훈제나 불고기로 하거나 새우살로도 하는데 새우살이 마땅한 게 없더라고요."

"아니 이것도 좋아. 냄새도 하나도 안 나. 쌀로 만든 페이퍼, 고기, 야채.... 영양도 골고루."

코냑을 한 모금씩 마시며 천천히 음식을 즐긴다.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는다고 하시는 귀여운 그이다.

소스가 정말 특별하다고 하시니 기분이 좋다.

"페이퍼가 없으면 야채 다 섞어서 소스로 드레싱 해서 샐러드로 드셔도 돼요."


"음. 알았어. 알았어."

이 모든 것이 안신영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하지.

다음엔 또 다른 음식으로 서프라이즈! 서프라이즈!

나는 희망한다. 서프라이즈가 계속되길.

그가 야식으로 먹겠다던 월남쌈을 저녁 식사로 하면서 즐거워했다.

이렇게 차려 놓고 山幕에서의 아름다운 시간은 시작되었다.

*토머토와 수육이 사진에서 빠졌네요~

그러나 오늘 이 시간이 지나면 도 이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서울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겠지. 이미 마음은 정리가 다 되었다. 아름다운 이별을 마음속에 두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며칠 전에 서울 오셨을 때 전화 통화를 듣고 내가 곁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과 그렇게 헤어지고 일만 하며 살았던 내가 어찌어찌 일면식만 있던 그와 다시 만나게 되었고 무궁무진한 그의 이야기 속에 함몰되어 가는 나를 보게 되었다. 까탈스러운 남편 이후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참 기뻤다. 음악이면 음악, 그리운 문학 이야기, 그동안 수필을 시로 다시 쓰라는 호통을 몇 번씩 들어가며 다시 써보면서 가닥을 잡아가고는 있지만 혼자라고 생각했던 그에게는 호적상이지만 엄연히 부인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대방의 여인이 한국말로 말하는데 그는 자꾸만 불어로 말을 했다.

뭔가 이상해서 통화를 끝난 뒤에

"상대방은 한국말을 하는데 선생님은 왜 불어로 얘기를 하세요?"

"아, 니스에 있는 호적상 아내야."

난 너무 놀래서 할 말을 잊었다. 혼자이신 줄 착각을 한 내가 잘못이지. 그동안 1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에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왜 얘기를 안 해주셨냐고 따질 일도 아니고 제일 싫어하는 내로남불은 죽기보다 싫은 내가 아닌가? 침묵하는 내게 간단하게 얘기를 해주신다. 그러면서 원망 비슷하게 왜 진작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시는 분께서는 왜 먼저 연락을 안 하셨나요? 저는 사느라 바빠서 남자에게 먼저 연락할 시간이 없었다."는 내게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 둘이 살다가 아기를 낳았는데 남자가 떠났다면서 아기에게 호적을 올려야 하는데 아빠를 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줬단다. 그러면서

"아프리카 여인이 부탁을 했어도 난 그렇게 했을 거야."

"네네, 엄청난 휴머니스트시네요. 잘하셨어요."

"이혼해 달래도 이혼도 안 해줘서 그러고 있어."

그 이후 내 마음은 식었다. 투명하지 않은 사람은 싫다. 오늘 마지막 소풍을 계획한 것은 내 마음에서 그를 떠나보내기 위해서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에의 불은 지폈고 몇 개의 시는 좋다는 말도 들었다. 3개만 더 쓰고 현대시학의 주필에게 보낼 거라며 열심히 쓰라고도 했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 중이신 정진권 선생께서는 연세가 있으셔서 언제 퇴원할지도 모른다.

이제 스스로 홀로서기를 해야지.

다 그런 거지 뭐. 마음은 오히려 가라앉아 그동안 설레며 좋아했던 마음들을 다독거리고 있는 중이다.

그는 가끔 서울에 올 때마다 앞 뜰에서 키운 가지며, 오이, 애호박, 상추 등을 지하 암반수로 키웠다면서 들고 와 퇴근하는 내게 전해 주고 모임에 가기도 하는 다정한 사람이지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남자는 못 되는 것 같다. 언제나 보살펴줘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남자다. 내가 워낙 시아버지와 남편을 오랫동안 뒷바라지해 온 이력으로 이 사람에게도 자연스레 보살피며 좋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딸들은 엄마가 모처럼 마음 나눌 사람이 생겼다고 좋아하며 적극 지지하지만 딸들이 마음 다칠까 봐 시시콜콜 얘기는 못한다.

혼자서 사는 모습을 보아 왔기에 측은한 마음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나이 든 남자가 혼자서 그렇게 사는 것이 쉽지 않은데 아마도 소설을 쓰기 때문에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겪어보니 성향이 곁에 누군가 귀찮게 하면 안 되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밤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새벽녘에야 작업이 끝나 점심때쯤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와는 퍽 다른 세상의 사람 같았다.


오래전에 소개로 얼굴 한 번 보고 십 년 뒤에 전화 통화 한번. 그리고 막내 데리러 가기 전에 만나 점심 한번 얻어먹은 사이가 무슨 인연이길래 여기까지 왔을까?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다. 니스의 아내의 존재를 모를 땐 매일이 즐거웠다. 시를 이야기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세계 각국을 돌며 겪었던 수많은 이야기는 끝날 줄 모르고 재미있었다. 앞으로 그의 소설이 미국 영화사에서 영화로 제작할 거라는 이야기까지 나와 잘 되기만을 멀리서 빌어주는 것만이 나의 몫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손수 가꾼 야채를 가져다 주기도 하는 다정함이 있다.

*photo by young.

*커버 사진; 화가 이성미 님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