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주

차라리 내가 만들어 입을래

by 안신영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면서 낭랑한 목소리로
“공주가 왔다. 오로라 공주가 왔다.” 고 소리치는 조카딸 때문에 집안에 있던 우리들은 `웬 공주?' 하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공주병 신드롬이 일어난 요즘, 4살짜리 여자아이에게도 공주병(?)은 전염되었나 보다.

모두가 웃자고 잘난 체하는 사람들에게 `공주병',`왕자 병'이라고 지칭한 것으로 알았던 말들이다. 더욱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말은 `미 내공' `미내 왕'이라고 하는 낱말들이다. “미안해 내가 공주야. 미안해 내가 왕자야.”라는 말의 줄임 말이 재밌기도 하다.

누구나 자신은 특별하기를 바란다. 남보다는 다르고 싶고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심정이 마음속에 가득하다. 그래서 높은 사람과 인척이라며 특급대우를 받다가 사기 치는 사람이 있고, 종합병원에 수위라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연줄연줄 줄을 대어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싶어 한다. 어디를 가도 아는 사람을 대며 그 사람과 가까운 관계를 들먹이며 사돈의 팔촌까지도 편리를 보고 싶어 하는 심리가 공주병의 출현 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아이들의 공주병 타령은 귀여운 모습에서 그대로 끝이 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자신이 진짜 공주라도 된 양 주위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조카딸의 공주소리를 들으며 20여 년 전의 내 모습은 공주병의 원조가 아니었나 하고 미소 지어 본다. 친구가 첫 월급을 받았다고 내게 블라우스를 선물했다. 선물 받은 블라우스를 입고 충무로를 지나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똑같은 옷을 입고 걸어오는 여성이 보였다. 순간 부끄러워 어디 숨을 곳이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불쾌하기도 해서 얼른 집에 돌아가 벗어버리고 싶은 생각뿐이 없었다.


그때는 같은 옷을 입는 것은 개성이 없어 보이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곁에 같이 가던 그이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나를 놀렸다. 공장에서 수천, 수만 장 뽑아내는 옷 중에 하나일 뿐이고 그대만 사 입으라는 법이 있느냐며 호통을 쳤다. 여자들은 이상하다. 할 일이 없으니까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쓴다고 놀려서 결국은 나를 울게 만들었다.


유별난 성격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런 나의 성격을 좋아했다. 남보다는 다르게 살고,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좋았다. 한마디로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우아한 공주의 마음도 가져보고 귀부인도 되어보는 것이다. 좋은 곳에서 식사하고, 분위기 있고 고급스러운 곳에서 커피 마시고,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그림 보러 화랑에 다니며 시간을 즐기는 여유를 갖고 살았다. 그러나 내 생활을 즐긴다고 해서 남에게 손해를 입히고 괴로움을 주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때의 공주병은 조용히 자기 자신을 가꾸는 일에 몰입한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의 공주병은 외향적으로만 치닫는 것 같아 아쉽다. 아직 학생이면서 눈썹을 밀고, 귀를 뚫어 귀걸이를 하고 파운데이션을 발라, 싱그럽고 청순해야 할 그들이 공주병이라는 미명 아래 시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이는 그때 나의 옷 투정에 대하여 두고두고 얘기했다. 나의 행동은 그이에게 아주 단순한 옷 투정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나 보다. 아버지 옷을 물려 입고 형제간에 생필품을 물려받아 쓰는 것을 당연하게 알던 사람이 그런 나의 행동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으리라. 고명딸로 커온 나였기에 그런 증세가 더욱 심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도 그 일이 있었기에 나의 성격을 잘 파악하게 되었고, 옷을 사 입는 취미도 알게 되어 쓸데없는 해프닝은 아니었던가 보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특별한 사람-왕비-이라고 강조하면서


“너희 엄마는 그런 사람이야.” 하면서 은근히 주의를 준다.

처음에는 괴물 보듯이 하더니 몇 년 같이 살더니 내 쪽으로 많이 기울어졌다. 여자들이 자신을 공주라고 생각하고 생활하는 것은 정신 건강상 괜찮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심각하게 병적으로 기울지 말고 생활의 양념으로 공주병을 사용하면 팍팍하기 만한 세상살이가 조금은 재미있고 윤택 해질 것 같다.(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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