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의 왕따

나이가 많다고 어른은 아니야

by 안신영


수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 레인이 시끄러워졌다.
잠시 후 곱게 늙은 할머니(60세~70세)들 예닐곱이 물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보인다. 비치의자가 놓여 있는 곳으로 가더니 단체(?)로 다리를 꼬고 앉는다. 팔짱을 끼고서 자신들이 수영을 했던 레인을 노려보고 있다.
이곳 수영장의 제일 끝인 옆 레인은 고급반 회원들이 수영 강습을 받는 곳이다. 며칠 전에도 그곳 사람들은 수영장을 한바탕 시끄럽게 한 인물들이 있는 곳이다. 왜 그랬을까?


수영장에는 초급반, 고급반, 교정반, 연수 반등 4개 반이 있다. 연수반 같은 경우에는 짧게는 3년 차에서 10년 차까지 있다. 초급반으로 시작을 해서 6개월쯤 강습을 받고 나면 중급을 지나 고급반으로 올라가게 된다. 초급반을 같이 시작했던 20여 명이 시간이 지나는 과정에서 10여 명으로 줄게 되고 그 반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면 초급반을 다시 모집하고 회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아주 잘하는 사람은 교정반에 투입이 되고 나머지는 고급반에 가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상급반으로 올라가면 먼저 있던 선임들이 신고식을 하란다. 그러면 같이 승급한 사람들과 어울려 떡과 음료수를 내어 수영을 마치고 나눠 먹는다. 넉넉히 해서 다른 반과도 나눠 먹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먹서먹하던 선임들과의 분위기가 조금은 원활하게 되는 것이다.


그 반의 할머니들도 신고식을 하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되었다. 새로 들어온 신참이 몇 년 아래 동생 벌인데 말투가 곱지 않아 선임 할머니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수영코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손한 신참과 같이 수영할 수 없다며 물 밖으로 나갔던 것이다. 그 문제는 약간 미묘한 감정싸움이었던 것 같다. 며칠 전 그 신참은
“야야, 우습데이. 그 할머니들은 앞이 막히는데도 비켜주지도 않고, 스트레스 쌓여서 수영도 못하겠다.” 하면서 언짢아했던 것이다.

수영장에서는 알게 모르게 알력 같은 감정의 기류가 흐르고 있다. 수영 새내기들조차도 젊은 사람은 젊어서인지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낫지 하는 우월감이 있다. 하물며 2년씩이나 먼저 입문했는데 불과 몇 개월밖에 안 되는 신출내기가 앞에 서겠느냐 하는 용납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교정반에 있던 시절 한 신입이 들어왔다. 예전에 하다가 오랫동안 쉬었다가 수영을 다시 하러 왔는데

"이 반 엄마들이 제일 좋다고 해서 일루 왔어요." 했다.

우리들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었겠지만 선임 대접받는 기분은 괜찮았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첫날은 그들의 수영실력을 보고 앞에 세우던지 아니면 그들 스스로가 뒤에서든지 하게 했다.


앞에 서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잘하는 사람이 앞에 서야 수영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수업 진행이 잘된다. 서로를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 가뜩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든데 먼저 있던 사람들이 텃세를 한답시고 쌀쌀하게 대한다면 그것처럼 볼 성 사나운 것이 없다.

고급반의 왕따 사건도 시작은 미미했다. 경력이 짧은 사람이 올라왔더라도 나이 드신 할머니들이 너그럽게 행동했으면 옆에서 보는 우리들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영을 하다 보면 한 살이라도 아래인 사람들이 체력도 좋고 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환갑을 넘긴 할머니들이 50대 중반의 사람에게 밀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선임 체면에 받아들이기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 참에 신참을 누르고 싶은 심정으로 신고식을 하라니까 순순히 신참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도 원인이 되었다. 조금 더 젊은 신참도 질세라
“앞을 가로막으며 수영도 제대로 못하게 하면서 신고식을 받아먹으려 한다” 고 별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데서 그녀는 집단 따돌림을 받고 교정반으로 훌쩍 뛰어 넘어갔다.


우리들도 초급반부터 같이 수영을 한 사람들끼리 계속하게 되는 줄 알았다가 1년을 못 채우고 이산가족이 되는 아픔(?)을 겪었다. 1년여를 울고 웃으며 정이 들어서 헤어지기가 싫었다. 사무실에 찾아가 얘기를 해야겠다고 할 정도로 우리는 반발했었다.
몇 명은 교정반으로 몇 명은 고급반으로 갔다. 마치 보호자를 잃어버린 듯이 우리들은 허전했다. 차츰 그 반에서 실력이 늘어 선두를 달리게 되었고 아주 재미있게 2년 여가 흘러갔다. 시간이 흐른 만큼 또 사람들과의 헤어짐이 우리를 기다렸다. 일부는 연수반으로 가게 되었다. 같이 시작했던 사람들과 함께 올라가고 싶었지만 각 반마다 정원이 있으니까 그럴 수는 없었다.

나이가 들만큼 든 어른들이 몇 년 아래인 후배가 못마땅하다고 `너는 여기서 나가라. 같이 수영할 수가 없다'면서 모두들 물 위로 올라 가버린 어른들의 자세는 모두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주름의 골만큼이나 연륜이 깃들어 보인다. 주름살만큼이나 세상일도 부대낄 만큼 부대끼며 헤쳐온 만큼 너그러운 아량과 포용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랜 세월을 거쳐서 경험을 쌓은 자만이 노인이 될 수 있다' `젊은이의 완성이 늙은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많은 경험과 지혜로서 어린 후배들을 이끌어 가야 하지 않을까. 어르신의 대접을 받아가면서.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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