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기르기

by 안신영


“엄마! 새가 나왔어요.”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막내를 따라 베란다에 나갔다. 십자매가 새장 밖으로 나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다. 왜 밖으로 나와서 곤란해하고 있는지 의아해하면서도 그 심정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십자매를 살며시 잡아 새장에 넣어 준다. 불쌍한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아무래도 암컷이 없는 새장 속에서 있기가 싫어서 문을 열고 나왔는가 보다. 둘이서 지낼 때는 한 번도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어인 일로 나왔을까?
며칠 전에 암컷이 하늘나라로 갔다. 건강이 안 좋은 것 같아 애를 태우면서도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했다. 말 못 하는 짐승이 아플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요술이라도 부릴 줄 알면 그들과 얘기를 나누며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알아 적절한 치료를 해서 나아 줄 수가 있을 텐데.
동물들과 오랫동안 친숙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의 기분을 알 수가 있고 아픈 증세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십자매처럼 작은 동물일 경우에는 간호하기도 힘이 든다. 개, 고양이들은 집에서 치료를 해주다가 동물병원에라도 갈 수 있지만 붕어, 새, 거북이 등은 아픈 줄을 뻔히 알면서도 치료의 한계를 느끼고 그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호금조가 아플 때는 일주일을 지켜보며 간호했다. 집에서 키우던 호금조는 아름다워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의 신비로움에 경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호금조의 부리는 분홍색이며 양 볼은 빨간색이다. 부리 밑의 목둘레는 검정 색 띠를 두른 듯 흑단 빛이 곱다. 보통 예쁜 새들은 알을 낳아 부화시키는 일이 드물다.


아무튼 모이와 물을 갈아주며 한 번씩 바라보는 즐거움도 생명의 귀함 때문이리라. 새들을 들여다보면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을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 없음을 느낀다.
호금조는 자주 아팠다. 특히 암컷이 아파서 가족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새는 대개가 암컷이 잘 아프다.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쉽게 낳지를 못하고 알 막힘이 생겨 몸을 부풀리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그럴 때는 새를 방 안으로 데려와 치료를 해준다.
항문에다 올리브유를 스포이트로 한 방울 넣어 준다고 하는데 올리브유 대신 식용유를 넣어 준다. 새장 옆에는 스탠드를 켜놓아 따뜻하게 온도를 높여 주었다.
호금조 암컷을 곁에 놓고 알 막힘을 낫게 해 주려는 우리의 노력을 알았는지 이튿날은 하얀 알을 낳았다. 알은 낳았지만 새집에 낳지를 못하고 바닥에 낳았으니 실패한 것이다. 알이야 이다음에도 다시 낳을 수 있으니까 암컷이 건강을 되찾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럭저럭 수컷과 합류도 시키고 며칠이 흘렀다. 새장을 바라보다 암놈이 안 보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혹시 새집 안에서 죽은 것은 아닐까 하고. 호금조의 집은 아주 깊은 둥우리여야 한다.
짝짓기를 둥우리 속에서 하기 때문에 야생 호금조의 둥우리 길이는 1미터가 넘는 것도 있다. 한참을 들여다보며 암놈이 나오길 기다려 암컷 호금조가 얼굴을 내보이면 그때서야 안심이 되어 자리를 뜬다. 호금조 암컷이 건강이 그런대로 잘 지내는가 싶더니 또 탈이 났다. 밥도 잘 안 먹고, 물도 못 먹는다. 암컷을 다시 방으로 데려와 치료를 했다. 따뜻하게 해 주고 빨대로 물을 적셔 호금조 부리에 대주니 맛나게 받아먹는 다. 횃대에 올라갈 기력이 없는지 새장 바닥에 그대로 앉아 있다가 가끔씩 모이를 주워 먹는다.


새들은 양이 적어 잠깐 먹지 않아도 굶어 죽는다. 행여 굶어 죽기라도 할까 봐 모이를 잘 먹는지 관찰을 하고 물통에 오지 못하면 빨대에 물을 묻혀 부리에 적셔 주기를 반복했다.
이튿날 새벽 밖에 있던 호금조 수컷이 짝을 찾는지 애절한 목소리로 울어댔다. 그러자 “나 여기 있어요.” 하듯이 암컷이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너무 놀라워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바깥에서 안에서 그들은 애절한 목소리로 울어대기를 한참 지속했다. “가여운 것들 얼른 건강해져서 같이 지내면 얼마나 좋겠니?” 하며 암컷을 도로 수컷이 있는 새장 안으로 넣어 주었다.
너희들 운명이야 내가 더 이상 어쩌겠니? 아팠다가 회복이 되어 건강해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테고, 건강을 되찾지 못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새를 치료해주는 병원도 없으니 나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그렇게 호금조는 시름시름 앓다가 나의 마음도 몰라준 채 죽었다. 예쁘기도 했지만 며칠 동안 애를 태우며 치료한 보람도 없이 가버린 데 대한 허무함으로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속상해했다. 암놈이 죽자 수컷은 꺼이꺼이 숨 넘어 갈듯이 울었다. 저렇게 울다가는 목이 터져 나갈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새를 안고 새집으로 갔다.


새집 주인에게
“호금조를 키우다가 내 간장이 다 녹아들 것 같아요.” 했다. 비싼 새의 수컷을 그냥 주니 미안했던지 십자매 한 쌍을 주면서
“노래도 잘하고 튼튼한 새니까 잘 살 겁니다. 키워보세요.”한다. 십자매를 받아와 키우니 새집 주인 말대로 노래는 아주 잘했다. 십자매들도 목소리가 좋은 놈이 있고 안 좋은 놈이 있다.
그러나 그 십자매는 수컷이 일찍 생명을 다하고 새로운 수컷을 사다 넣어 주고, 암컷이 죽어 다시 암놈을 사다 넣어 주는 것을 반복했다. 결국에는 새로운 짝을 만나 잘 사는 것 같았다.
먼저 애들(십자매) 마냥 금방 죽지도 않았고 금슬도 매우 좋아 수컷은 구애의 노래로 아침을 알렸고, 암컷은 다소곳하니 지내면서 알도 낳았다. 비록 무정란이라 새끼를 부화하지는 못했어도 그들은 행복하게 보였다. 한 달 전쯤이던가 암컷의 모양새가 하도 쑥쑥 해서 “네 모양이 왜 그러니?” 하고 물어보기도 했다. “가을이라 너희들도 털갈이하니?” 대답 없는 물음을 자꾸 던지면서 자세히 바라보았으나 밥도 잘 먹는 것 같고 목욕도 잘했다.
그들은 목욕을 아주 좋아했다. 호금조에게 물을 한번 갈아 줄 때 십자매에게는 두 번 갈아줘야 했다. 여름에는 매일매일 물을 갈아 줘야 한다. 물방울을 튀기며 푸드덕 대며 목욕하는 것을 보며 나까지도 시원함을 느낀다.
십자매 암컷이 결국에는 세상을 버렸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내 가슴이 울먹울먹 해지며 갑갑해 왔다. 작은 생명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미미한 힘에 실망스럽고 수컷에게 미안해서 안절부절못했다.
가족에게도 말도 못 하고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안정되고 난 뒤에 남편에게 전했더니 남편은 수컷을 자유롭게 날려 보내라 한다. 먹이를 잡아먹지 못해서 굶어 죽을 것이 뻔하다며 못한다고 했다. 남편은 그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새집에 갖다 주고 싶다.
새로운 짝을 만나 구애의 노래로 하루를 시작하고, 사랑하고 새끼를 기르며 살기를 바란다. 그런데 아직도 새집에 갖다 주지 못하고 미적거리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어떤 조치를 취해 달라고 새장 밖으로 나왔었던 것은 아닐까? 남편의 말대로 자유로운 세상 밖으로 날아가기를 원했을까? 아니면 암컷을 찾다가 새장 밖으로까지 나오게 된 것일까? 하루빨리 십자매의 진로를 결정을 지어야겠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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