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글자의 모양이 패션모델이다.
한글은 소리글이지만 옷이라는 글자만은 사람의 모습과 닮았다.
옷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다. 사람이 특별하면 특이한 디자인이 어울리고, 평범하면 무난한 디자인이 어울린다.
옷장 문을 열고 어떤 옷을 입을까 하고 둘러본다. 대부분의 옷 색깔이 검정인 것에 망설여진다. 계절이 겨울이면 검은색의 코트가 외출복의 마무리를 썩 잘해주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그러나 봄이나 여름 같은 계절에는 검은색보다는 좀 더 화사한 밝은 색으로 치장하고 싶어 진다.
언젠가 겨울옷을 바겐세일 한다고 해서 사들고 온 나의 옷들이 검은색 일색인 것에 놀란 남편은 `또 무채색으로만 샀어?' 하며 안타까워했다. 입어서 튀지 않은 옷을 고르다 보니 무난한 디자인의 검정, 고동색, 흰색 등이 주조를 이뤘다.
그리고 그 해 여름의 백화점 바겐세일에는 남편이 옷을 골라 줬다. 밝고 화사한 색과 특이한 디자인으로 고르는 것을 보며 `안돼요, 안돼요'를 연발했다. 남편은 더 나이가 들면 입을 수 없다면서 입어보기를 권했다. 골라주는 옷을 입고 거울을 보니 평소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거울 속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용기를 내서 한번 더 거울을 본다. 나와는 친근하게 생각지 않았던 주황색 반짝이 니트 앙상블에 짧은 주름 스커트는 발랄한 인상을 주었다. 처음 볼 때보다는 조금 더 새 옷에 익숙해진 내가 보인다. 샵의 매니저도 아주 좋다며 적극적으로 권한다. 시집살이에 감기몸살을 오래 앓아 병색이라던 남편의 적극적인 권유로 그 옷을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입었다.
이렇듯 옷 색깔은 사람을 발랄하고 명랑하게, 우울한 사람으로도 변화시키는가 보다.
옷을 고를 때 우선 좋아하는 색깔로 만들어졌는지 살펴본다. 좋아하는 색이라고 전부 좋은 옷이 될 수는 없다. 빨강과 보라색을 좋아한다고 빨간색, 보라색 옷을 과감하게 입지는 못한다. 되도록 무난하게 색깔이 밝으면 옅은 색으로 만들어진 옷을 고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 보니 튀지 않고 어색하지 않은 색깔을 찾다 보니 무채색 옷이 더 많이 옷걸이에 걸려 있다.
옷을 고른다는 것은 또 다른 자신을 고르는 것이며 또 다른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흔히 빨강은 정열의 색, 파랑은 불안의 색, 녹색은 정숙의 색이라고 하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색깔에 대한 보편적인 관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빨강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정열적인 사람으로, 검정, 회색이나 밤색은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보인다.
옷은 마음의 여분을 표현하는 거울이다. 돈이 없어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편하게 입을 마땅한 여름옷을 만들어 볼까 궁리를 해본다. 워낙 옷값이 비싸 쉽게 사 입어지지 않는다. 특히 여름옷 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무슨 천을 사다가 만들면 될까? 책을 이리저리 펼쳐본다. 맞는 디자인을 고르고 재단 그림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그래, 마음에 드는 옷감을 뜨고 원하는 디자인으로 좋은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은 없겠지. 가계부도 절약되고, 자신이 만들어 입은 것이라고 어깨도 으쓱해질 테고...
자잘한 꽃무늬 천을 사다가 스커트 재단을 하고 재봉틀을 돌려 만들었다. 스커트 길이는 발목까지 오도록 해서 허리 부분은 주름을 폭폭 잡아 완성을 했다. 스커트를 입을 때 세트로 들고 다닐 거라며 가방도 만들었다. 여름에 딱 어울릴 것 같은 하늘색의 자잘한 꽃무늬가 앙증맞았지만 실패였다. 천의 질감과 디자인이 맞지 않았던 것이었다. 손쉽게 만들어 보려는 욕심이 천의 질감을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옷이라는 글자에서도 머리를 크게 해도 다리를 길게 해도 이상하듯이 모든 것이 적재적소에 맞아야 어울린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재단사는 재단 일을, 재봉하는 사람은 재봉 일을 해야 멋진 옷이 걸어 나오리라. 잘할 줄도 모르면서 어쭙잖게 기술자들을 흉내 내다가 팔다리 어깨가 아픈 곤욕을 치른다.
옷은 천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모든 천이 전부 훌륭한 옷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가에 따라 멋진 디자인의 옷이 되기도 하고 몸빼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가서 한 벌 사 입어. 무엇이든 전문가가 필요한 거야. 아무나 마음먹은 대로 한다고 다 되면 이 세상에 전문가는 필요 없는 거지” 한다. 변함없이 내 손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러나 올여름 바겐세일에는 내 마음의 여분을 털어 내어 밝고 시원한 여름옷을 한 벌 장만하러 나가야겠다.(1997)
*photo by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