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수대울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수대울의 추억은 지금도 아름답다.

by 안신영

그가 파리에서 돌아오고는 연락이 없다.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 메시지에

“어젯밤엔 반딧불이 들과 물소리와 놀았어요.”라고 답을 하는 그.

“그럴 줄 알았어요. 새벽 청아한 풀벌레 합창에 잠이 깨곤 한답니다.”

반딧불이 보러 가자고 하는 말에 내 발길은 양평 수대울로 향했다.


“반딧불이와 노는 그대 생각.

물소리에 시심으로 화답하는 그대 생각.

그대 생각, 생각만으로도 차오르는 이 기쁨.”


마중 온다고 한다.

너무 일찍 도착했다. 오랜 기다림 끝의 만남이기에 난 이미 벌써, 한국에 들어오셨다는 전화받은 그날부터 내 마음은 수대울에 와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설렘이 얼마만인가.

두 달 전엔 그냥 오랜만에 만나 엄벙덤벙하며 얼결에 지나간 짧은 해후였다.


드디어 6시.

"어디쯤?"

"양수역."

오늘의 엔터프라이즈는 나이 든 공주를 태우러 나왔다.

"무얼 먹으면 좋을까? 연 밭이 있는 식당에 음식이 좋다는데 입구를 모르겠더라."

"그냥 간단히 먹으면 안 될까요?"

"간단히?"

"저기 유기농 쌈밥집이 있네요."

"그럼 거기로 갈까?"


두물머리로 들어가기 전에 큰 연못가에 있는 유기농 쌈밥집이 보였다.

나름대로 시장을 봐서 무겁게 들고 온 나는 차라리 집에 가서 간단히 만들어 먹었음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는 나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을 거라는 생각에 그대로 따랐다.

마침 식당으로 가서 창가에 앉으니 둥근 해가 산 너머로 향하고 있었다.

아! 하는 탄성과 함께

“곧 낙조를 볼 수 있겠네. 거기 앉아.”

하시며 방석을 주신다.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 보는 낙조인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마음을 닫고 살아와 시어(詩語)들은 내게서 많이도 멀어졌는데...

'시심(詩心)을 줄 테니 시詩와 수필隨筆을 하라'라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박혀 아프다. 안타깝게 바라봐주는 이가 아직은 내게도 있구나.

프랑스에서 생각보다 오래 계셔서 그간의 근황을 묻고 얘기 나누던 중 붉은 해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어! 해가 없어졌어요. 이럴 수가. 노을도 없이 저 맹숭맹숭한 산자락 밖에 없네요.”

“그래 이상하다. 낙조를 바라보며 식사하라고 거기 앉으라 했는데.”

마치 숨바꼭질하러 숨어버린 어린아이처럼 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프랑스에서 가신 일은 잘 되었고, 친구들이 매일 파티 열어 주고 야간 스킨스쿠버 해서 살이 많이 빠졌다는 얘기. 그러고 보니 얼굴이 많이도 야위셨네.

“수필 몇 편 썼어? 보여줘야지.”

“아직 하나도 못 썼어요. 머릿속에 정리 중이에요. 많이 아프기도 했고. 너무 오래 회복이 안돼서 힘들었어요. 이제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곧 쓸게요. 유치한 것은 몇 개 썼지만 보여드릴 수는 없고....”

“나 같으면 매일 한 편씩 쓰겠다. 수필은 쉽잖아? ”

웃음 띤 얼굴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그가 정말 짓궂다.

"그래요 선생님은 글쟁이니까 바닷속 상어 만난 얘기며. 온갖 물고기 떼의 장관을 수필로 엮으시면 되겠네요."


난 글쟁이로 겨우 걸음마 떼려다가 극렬하게 달라진 환경에 넘어져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작년 여름, 가을엔 감각을 되살리려고 잡문을 짧게라도 쓰곤 했다. 그리고 올 4월 두 편의 수필을 썼다. 이제 시작이다. 나도 마음먹고 시작하면 예전의 나를 찾을 수 있지 않겠나?

“이제 노을이 보인다.”

산마루 끝에 엷게 노을이 물들어 있다. 안개 때문인지 희미한 노을은 아쉬움 속에서 사라졌다. 북한강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라 저녁 안개로 인해 노을은 쉽지 않았나 보다.

(몇 년 전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노을이 장관이었지.)

어린아이가 막무가내로 빽빽 울어대서 식사를 간신히 끝내고 서둘러 나왔다.

난 저럴 때마다 화가 치민다. 조용한 가운데 휴식처럼 맛있는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저런 사람들을 볼 때 기가 막힌다.

제 자식 귀여운 것은 알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때와 장소를 가려서 떼를 쓰고 울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물론 부모 본인도 진땀 나는 일이겠지만 개선해야 할 문제인 것은 틀림없다.

“프랑스에서는 저렇게 작은 어린아이는 출입금지야.”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요즘 대부분 식당들이 노 키즈 존을 내건 때문에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부산의 한 유명 스파에 13세 이하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서 이용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소란스럽지 않아서 마음껏 휴식을 취하고 돌아올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수대울로 향하는 길에 파스타집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데 왜 몰랐을까. 난 바보야.”

이정표에 소나기 마을이 있다. 황순원 문학관이 있단다. 다음에 가보기로 한다.


드디어 초막에 도착했다.

어젯밤 비가 많이 내려 차가 또 진흙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했는데 요즘은 다른 곳에 주차시킨다고 하신다. 앞집에 차대기 좋은 장소에 차를 세우고 초막으로 들어섰다.

짐을 내려놓자

“더 어두워지기 전에 물소리 만나러 가자.”

풀밭 자체인 마당을 지나 계곡에 내려선다.

물소리와 큰 바위와 작은 돌들이 우릴 맞아 준다. 물속 움푹한 곳을 가리키며

“여기 돌을 치워 내고 ‘옥녀탕’리라고 이름 붙였어.”

(무더운 여름 다 지나서 오시곤...)

물소리랑 놀았다는 그 물소리가 가슴 깊숙이 차 들어온다. 맑아지는 기분. 시원하다.

반딧불이와 놀았다는 그 시각은 곧 오겠지...

물가의 돌길을 따라 쭉 올라가다가 어둑해져 오는 시각이라 발길을 돌려 초막으로 돌아온다. 물소리에 우리의 말소리는 파묻혀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도 모르겠다. 마당가에 심어 놓은 배추, 무 등을 보여 준다. 약을 안치니 벌서 벌레들이 갉아먹기 시작해서 햇병아리만 한 배추 포기는 앙상한 뼈만 남아 있는 몰골이 되어있다.

“걔들도 먹고살아야지.”

역시 시인은 다르시네.

밤이 깊도록 반딧불이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신영 공주 질투가 나서 안 나타나는 거라며 웃었다. 아마도 계절적으로 백로도 지났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귀뚜라미와 온갖 풀벌레의 향연은 지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하나님은 어쩌면 이런 미물인 풀벌레 한 마리에게도 다 다른 성량을 주셔서 제 짝 찾기에 좋은 소리를 주셨을까?

며칠 전엔 귀뚜라미 소리가 하도 커서 프랑스에 있는 친구랑 통화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 정도로 시끄럽게 울었단다. 오늘은 모두가 협연을 이루는지 튀는 소리도 없이 조화롭단다.

그리스 음악을 틀어 주며

"이 음악 들어 봤어?"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 그리스 국민 여가수. 마리아 칼라스 이후 성악을 정통으로 배운 최고의 가수로 그리스 국민에게 절대적 사랑을 받는 가수죠."

나도 그녀의 노래는 많이 들어 봤다. 아마도 내 블로그에도 있을 것 같은데. 특히 To Treno Fevgi Stis Okto가 우리나라에서 '기차는 8시에 떠나네'로 번역되어 성악가 조수미 님이 불러 유명하다.

우리의 음악 듣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플라멩코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며 20대 시절의 플라멩코 여인과 풋사랑을 고백하며 아쉬워하는 표정이 순수하다. 내 마음 같다며 틀어 준 탐 존스의 'I who have nothing'을 들려주니 정말 오랜만에 듣는다며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한다.

지난번에 폰에 넣어준 ERA의 노래를 프랑스에서 즐겨 들었는데, 유럽은 지금 성가곡 같은 음악이 유행하더란다.

추억의 팝 20곡을 들려주니 마치 30년 40년으로 돌아간 것 같다. 아 좋다. Bee Gees의 'Don`t Forget To Remember ' 블루스풍 노래가 흘러나오니 '춤추자고 틀어 논 거지?' 하며 손을 내민다. 난 춤은 젬병이다. 내 몸은 뻣뻣하고 어찌할 줄을 모른다. 외국생활을 많이 한 그는 익숙한 일상이겠지만 난 새로움의 연속이다. 즐겁다. 기쁘다. 이렇게 마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아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기도 하고 얘기는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계속된다.

추억의 팝 20곡의 음악을 무한 반복해서 들어도 새롭게 들리는지 잠을 미루고 있다. 그는 쉬림프 딤섬을 쪄서 야식을 준다. 밤에는 물 밖에 먹지 않는 나. 야식 먹기는 또 처음이다.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 많아진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는데 정신은 되려 맑아진다.


며칠 제대로 잠을 못 잤는데 또다시 긴장 속에서 나의 잠은 저 멀리 달아났다.

여명이 밝아 온다.

*photo by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