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제대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by 안신영

그래 아무 일도 아니지

여태껏 살아오며 큰일이 한두 번이었나.

이렇게 서글퍼할 일이 아니지


그러나 마음은 천근인걸

주위에서 내게 어쩌다 도움을 요청했을 때

내가 도움이 못 된다는 사실에 난 눈물이 솟았다.

먹먹하다. 온몸을 감싸는 서글픔으로...

그렇지 않아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룬 게 없다고 자책하는 나.


실망했을 거라며 말을 꺼내기란 쉽지 않은데

그 마음을 생각하면 속이 상한다.

내가 그토록 처절한 때가 많았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내색 한 번 하지 못했지.

힘들게 말을 꺼냈을 그 심정에 목이 멘다.


"있으면 얼마라도 다 보내고 싶어."

'내가 아무에게도 힘이 되어 줄 수 없을 때 조금 서글퍼"

"우울해하지 말아요. 마음을 평온히 가지세요."

"누군가 날 도와주지 못해 우울하고 서글퍼한다면

난 마음이 평온할 수 있을까요?"


"너희한테 항상 감사해."

"조금은 마음을 평온히 가져요.'

"엄마가 지금껏 우리를 이렇게

잘 키워주신 건 거저 한 건가요?"

"엄만 정말 바보 같아."


SOS를 보낸 이에게 도움을 주지 못해 우울해하는 내게 딸은 조용히 항변한다.

그래도 엄마 마음이 가는 대로 얘기하라고 하는 예쁜 딸.

갑자기 그에게서 얼마간 융통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순간 너무 놀래고 황망하여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우리가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리고 우리 사이가 돈 얘기를 할 사이도 아니잖아?

내가 그동안 아이들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전혀 몰라서 한 말이겠지.

워낙 잘 살았던 사람이기에 남의 사정이 어떤 줄 전혀 모르는 거야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홀아비 3년이면 이가 서말, 과부 삼 년이면 구슬이 서말"이라는 옛 속담을 믿은 모양이다. 내가 과부는 아니지만 혼자 지낸 세월이 10년 넘어서 그 정도의 돈은 있는 줄 알았단다. 내게 몇 백만 원이 쉬운 돈인가? 남편의 사기 이혼에 위자료 한 푼 받지 못하고 애들과 근근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리고 곧 둘째 딸도 결혼시켜야 하는 마당에 누굴 도와줄 형편은 아예 없다.

매우 섭섭한 마음에도 내게 손을 벌려 도움을 요청할 정도면 그 입장에서는 또 얼마나 기가 막힌 상황이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은 이래저래 편치 않았다.


혼자서 속상해하다가 둘째와 얘기를 나누고 마음을 안정시키려 했다.

이런 내 처지가 한 번도 부끄럽거나 당당하지 못했던 적이 없었다. 죄 지은적 없이 떳떳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데 그가 날 참 힘들게 하네. 대체 프랑스 다녀오고, 평창으로 말도 타러 다녔다면서 돈 한 푼 없는 알거지야. 뭐야? 골프도 치러 다닌다면서?

도대체 정체가 뭔지 모르겠네. 소설이 곧 출간될 거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사는 것이 힘드나?

하기야 소설 쓰고 출판하고 몇 개월마다 프랑스 다녀오고 하니 경비도 많이 들겠네. 그래도 얼핏 별장이 몇 채 있었다는 것 같았는데 전부 없앴나? 고정적인 수입이 없이 사는 것은 힘들기는 하겠지.

그러나 내게 돈 얘기한 것은 그의 실수로 여기자.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지. 그리고 그만한 일에 나 자신을 너무 닦달하지 말자. 지금까지 남에게 손 벌리고 피해 주며 살지 않았잖아. 없으면 없는 대로 성실하게 일하며 자족하며 살아온 내 삶을 깎아내리지 말자꾸나. 내가 이렇게 속이 상할 정도로 그가 내 마음에 들어왔나?

사람의 인연은 알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삐그덕거린 첫 만남 이후 어쩌다 다시 만나서 어떻게 이어지려고 이러는 것일까? 인연의 끈을 여기서 싹둑 잘라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사람이 돈이 있어야 만나고 돈 없다고 헤어지는 그런 것은 인간의 도리는 아니지만 어정쩡한 사이이기도 하면서 짧은 만남에서 너무 허심탄회한 사이가 되어 버렸나?


서울 생활 몇 개월 만에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지는 것 같다.

한탄스러움의 눈물은 거두고 밤새 뒤척일게 뻔하니 처방받은 수면제 한 알 털어 넣고 잠을 청하자.

아직도 지난번 앓고 난 후유증으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드는 것이다.

곧 찾아뵙고 전후 사정 얘기를 들어 보기로 하자.

*꼬리조팝

*photo by young.

*커버사진; 화가 이성미님 < 폴렌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