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울 마을과 이신의 선생

by 안신영

교회 가는 주일 아침이면 목사님과 만나는 고양중학교 앞으로 가기 위해 30분쯤 미리 나가 솔개천을 산책한다.

오늘은 어떤 새로운 꽃이 얼굴을 내밀었을까 하며 둘러본다.

다니는 길마다 꽃이 많아 사진도 찍는데 꽃과 초록으로 뒤덮은 풀들을 바라보며 마음 가득 충만한 궁금증은 대자연의 일이며 인간사인 것 같다.

연로하신 장로님을 모시러 가는 길에 나를 태워주시니 고마운 마음이기도 하고 일찍 나오시느라 아침을 못 드셨을 것 같아, 근처 베이커리에 들려 커피와 토스트를 준비한다. 그런데 목사님은 오시는 길에 서오릉 주변 먹거리 촌에서 손쉬운 국밥을 드시고 오셨다며 장로님을 전부 드린다.


연로하신 장로님은 도래울 마을에 사신다.

마을 이름이 예쁘기도 하지, 왜 도래울마을이 되었을까? 고개를 갸웃했을 때 장로님 말씀으로 안개가 걷히듯 마을 이름이 유래된 이유가 밝혀지는 것이다.

"도래울이란 마을은 임진왜란 때 이 고장에 살던 이신의 선생이 의병대장으로 활약을 하면서 의병의 수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을의 작은 산을 돌고 돌아 산을 '도라산'이라 하고 마을 이름도 '도래울'이라 했어." 하시며

"후손들이 부자가 됐지. 이곳이 개발되면서 주변의 문중 땅값이 많이 올랐거든." 하신다.

"하하하~~" 목사님과 나는 그저 웃었다.

아직도 이 곳은 빈터가 많이 있긴 하다. LH 사태와 맞물리던 그때에 씁쓸한 웃음만이 감돌 뿐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내 고장을 지켜야겠다 결심한 석탄 이신의 선생은 의병을 일으켰고, 도래울마을 건너편 동쪽의 나지막한 도라산 정상에 의병들을 지휘하며 왜군과 전투를 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진을 치고 있을 때 병사가 얼마 안 되는 우리의 진영에서 선생은 꾀를 내어 병사들을 줄 세워 그 지역을 돌고 돌아 군사가 많아서 끝도 없이 행군이 펼쳐지는 느낌을 받도록 했다는 것이다.

마치 이순신 장군께서 적군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게 하기 위해 부녀자들의 노래와 유희인 강강술래를 부르며 돌게 한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한다.

또한 도래울의 유래는 돌 여울에서 나온 이름이기도 하다는데 여울은 강이나 하천의 급류를 말하며, 돌 여울, 돌 여울 하다가 도래울로 바뀌었다는 말도 있다. 예전에 창릉천은 돌들 사이로 급류가 흘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하천의 급류는 보이지 않고 장마 때나 큰 물살이 흘러가는 게 보인다.

이신의 선생의 호號, 석탄(石灘)은 고향인 도래울(돌 여울)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돌석石, 여울탄灘이다.

지난번에 이케아에 갔을 때 주변에 기와집이 보이고 뭔가 심상치 않은듯한 풍경이 있어 가보니 그곳이 석탄 이신의 선생 기념관이었다. 그래서 이신의 선생을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고양시엔 볼거리도 많지만 기념비적인 인물들도 상당히 많아 보인다.

임진왜란 당시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 몸 불사르는 충정으로 활약한 분들로서 권율 장군, 밥할머니, 또 이신의 선생까지 다양한 것을 보고 마음은 흐뭇해지는 것이다.

*이신의 선생 부부묘.
*솔개천 둑의 패랭이
*말발도리 꽃이 땅바닥으로 내려왔다. 원추리꽃.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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