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잊히지 않는 첫 만남

by 안신영

그와의 첫 만남 느낌은 한마디로 뜨악이었다.

27년 전 어느 날 신문사 기자로 있는 동생이 시인 한 분 만나보라며 연락처를 남겼다.

마침 해운대에 와 계시니 약속을 잡고, 퇴근한 남편과 함께 호텔 로비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섰다.

사람이 많지 않아 바로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동그란 안경의(마치 윤동주 시인의 안경 같은) 시인 느낌을 풍기는 모습의 한 남자분께 다가가

"안녕하세요? 안기자가 소개한 안신영입니다. Z 선생님 맞으시죠?"

"네, 반가워요. 그럼 이만." 우리의 위아래와 남편까지 훑어보고는 돌아섰다.

정말 황당한 우리는 커피 한잔 하며 나눌 담소는 아니더라도 커피숍에서 차 한잔 정도는 나누고 헤어질 줄 알았지만 그대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동생에게 그렇게 일별하고 헤어진 얘기를 전해주고 잊었다.


그 후 1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혼 후 혼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 가느라 바쁘게 살았다.

업 주부였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보험회사의 매뉴얼대로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일밖에는 없었다.

서울서 5년 동안 살면서 그 힘듦을 어찌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얼른 자리 잡아 그리스에서 발이 묶여 있는 막내도 데려와야 하니 난 옆도 뒤도 돌아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앞만 보며 달렸다.

그렇게 살면서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는 내게 한통의 전화, 동생이었다.

안부를 서로 물어본 뒤에

"잠깐 , 누나 형님 바꿔 줄게."

"형님이라니 누구를?" 곧이어 들려온 소리

"잘 있었어요? 나 Z에요." 하는데 그때 그 사람? 시인? 맞나?

"아, 네."

"벌서 십 년이 지났네요. 서울 오면 연락해요." 어쩌고 저쩌고 그동안 이혼을 하고 애들 밑에 돈이 10억이 들어갔다는 둥 별 필요도 없는 말들을 지껄여댔다. 내가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듣고만 있으니 서울 오면 연락해서 한 번 보자며 하고 끊었다.

그 후로 가끔 명절에 안부 문자 넣고 서울 출장이 잡혀도 만날 생각은 추호도 못했고, 서울 왔다 내려갑니다라는 문자를 KTX에 앉아 보내곤 했다.

그렇게 1년 반 정도가 흘렀다. 그리고 이사를 하고 막내를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서울에 올라간 김에 한번 Z 선생과 연락이 닿아 만났다.

막내를 데리러 그리스에 갈 예정이라는 말에 예전에 그리스에서도 지낸 적이 있다는 말을 하면서 막내 데려 올 때 혹시라도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연락을 해라, 그쪽에 친구들이 있으니 도와줄 수 있다는 말에 고맙다면서 큰 응원군을 만난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놓였다.

먼 길을 가는 것은 처음이기도 하거니와 그냥 여행이 아니고 불법체류로 발이 묶인 아이를 어떻게 데려 올 수 있나라는 것이 내겐 가장 큰 과제였기 대문에 심리적인 불안이 가득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하는 말

"매번 왔다 갑니다라는 문자만 보내더라?"

"그럼 뭐라고 해요. 선생님 형편이 어떤지 모르잖아요? 혹시 바쁘기라도 하면 민폐니까요."

"알았다, 알았어. 그래 오늘은 일정이?"

"저녁에 동창 모임하고 바로 내려갈 거예요."

그동안 내신 책 중에 **는 읽어 보았어요. 전부 답사를 하시는 거지요? 소설을 쓰시려면? 시로 등단하셨는데 어떻게 소설로 전향하셨어요? 그런데 창작 뮤지컬도 올리셨더라고요? 등등 늘 마음속에 그리움 같이 묻혀 있는 문학에의 갈망으로 나의 질문은 그런 것들이었다.

그렇게 내 생애 두 번째의 만남은 그리스에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끝으로 헤어졌다.

Z선생님과는 다시 일 년에 명절을 잘 보내라는 한두 번씩의 안부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흐른 뒤에 막내가 러시아 주재원으로 간다며

"엄마, 서울에 오세요. 이제 엄마만의 시간도 필요하고 글도 쓰셔야 하잖아요." 한다. 우물쭈물 망설임도 없이 이제는 막내 말대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서울로 직장을 옮겼다. 회사에서는 쉽게 서울센터로 옮겨 주었다.

바쁜 서울생활을 하던 중에 퇴근을 하며 휴대폰을 검색하다가 Z선생이 보낸 예전의 문자를 보게 되었다.

아마도 시베리아 여행을 하고 온 뒤에 보낸 문자였던 것 같다. 수 킬로미터에 펼쳐진 자작나무 숲을 보고서.

그래서 전화를 했다. 못 알아본다. 주변이 소란스러운 느낌도 있었고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하고 끊는다. 이건 뭐지? 연락하라며? 날 모른다고? 아흐흐.... 옛날의 커피숍 첫 만남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전화가 왔다.

폰을 잃어버려서 전화번호를 몰랐다면서 작업실에 놀러 오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Z선생과의 질긴 인연은 다시 시작되었다.

마침 주말에 서로 시간이 되어 작업실이 있는 양평으로 뵈러 가기로 했다.

밤사이 비가 내렸고 양평 가는 길은 지하철이 경의 중앙선과 연결되는 왕십리역에서 환승을 하면 되는 초행길의 나에게 가끔 어디쯤이냐는 문자가 날아왔다.

마중 오기로 했지만 간밤에 내린 비로 인해 자동차 바퀴가 진흙 구덩이에 빠져 움직일 수가 없다며 택시 타고 들어오라고 한다.

두 번째 만남도 여의치는 않구나.

택시를 타고 기사를 바꿔달라고 하면서 집의 약도를 알려준 뒤에 담배 두 갑을 사 오라고 하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거의 골초 수준이랄까?

아구야 난 담배 연기만 마셔도 알레르기가 일어나는 수준인데 큰일이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서야 가방에 지갑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택시기사에게 돈을 빌려 지불한다.

집 앞에 도착해서는 몇 년 만에 만나는 초면에도 불구하고 대뜸

"선생님, 택시비 주세요. 담배값도요." 하며 손을 내밀었다.

언뜻 스치는 당황스러운 표정에 겹치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함을 엿본다.


진흙 속에 빠져 있는 자동차 바퀴를 화풀이하듯 발로 차며

"신영 공주 태우러 갈랬는데 이 녀석이 뻗었어."

"늙은 공주 태우러 오기 싫었나 보죠?"

그렇게 우여곡절 같은 만남의 서막이 열렸다.

처음 방문하는 선생님의 작업실에 빈 손으로 갈 수 없어 마침 선물로 들어왔던 까뮈를 가방에서 꺼내 드렸다.

택시비 대신 내준 미안함을 무마라도 하려는 듯 얼른 두 손에 안겼다.

두 눈이 반짝거리며 귀한 술을 가져왔다고 좋아하기에 마음을 놓는다.


그렇게 길고 긴 질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매몰차고 어이없던 첫 만남에서 문학의 스승으로 그가 자리 잡고 긴 이야기가 쌓여가는 알 수 없는 인연이 시작했던 것이다.

*photo by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