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by 안신영


거의 20여 년 만에 시인은 말했다. 메시지로.


“수필 계속 쓰셔요. 내 작업실 양수리도 한번 오시고요. 작은 초막 작업실에 놀러 오세요."


얼마나 가슴 부풀어지는 초대인가!


시인은 일 년에 한두 번 뚝뚝 문자를 떨 구곤 했다. 명절이나 새해 인사를 하면 그 답으로 간단명료한 ‘그래요.’ 지난겨울엔 ‘광야의 자작나무 노란 잎이 마치 은행나무 같았다. 시베리아 작품 여행 끝내고 돌아왔다’는 가장 긴 메시지를 끝으로 수개월이 지났다.


바쁜 삶 속에서 잊고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


서울에 와서도 시인께 연락드리는 것을 잊고 지냈다. 그만큼 난 서울생활 적응하느라 진을 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퇴근길에 시인의 안부가 궁금해 전화를 했다.


“누구세요?”


“선생님 저 신영이예요.”


20여 년 한결같이 시인은 내게 언제나 선생님이며 그 앞에서 난 어린 학생처럼 저 신영이예요 한다. 아 나를 잊었나 보다 스치듯 서운함이 일었는데 금세


“아! 그래요. 사람들과 있으니 내가 연락할게요.”


그렇게 허무하게 전화를 끊고 시간이 지났다.


메시지가 왔다. 초대의 메시지.


서울에 와서 두 달 동안 한 일이라고는 회사와 집, 교회만 오갔을 뿐 외출해본 일이 없다. 반가운 마음으로 맞은 주말 가슴을 콩닥대며 외출을 서두른다. 밤새 세차게 비가 내렸고 주말 아침에도 여전히 비는 퍼붓는다.


그래도 세 번째의 만남을 미룰 수는 없어서 가르쳐준 방법대로 전철을 타고, 중앙선을 환승하며 양수리로 간다. 간다.

비는 이미 그쳤다.

밤새 내린 비로 주차되어 있던 차는 진흙 속에 갇혀 나올 줄을 몰라 아침 내 차를 끌어내려 애를 쓰다가 결국 택시를 타고나서 기사를 바꿔 달라는 전화가 온다. 약도를 일러 주시는 모양.


“기사님 얘기 들으면 어딘지 다 아세요?”

“그럼요. 그쪽에 몇 집 되지도 않지만 변호사 댁 아래라고 하면 다 알아요.”

아하 그런 곳이구나.


고향 말고는 찾아가 본 시골이 없으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날 제대로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것은 맞나? 편의점 앞에 세우며 담배 4갑을 사 오라고 하는데 가방 속에 지갑이 없음을 그때야 알아챈다. 집에 두고 왔나? 어디서 흘렸지?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진다. 거의 5년 만에 만나는 손님으로서 영 매너가 형편없다. 기사 아저씨에게 돈을 빌려 담배를 사고 드디어 선생님 앞에 택시에서 내려서는 첫마디가


“선생님, 돈 주세요.”


주차장에 세워진 검은색 엔터프라이즈를 가리키며


“역에 가기 전에 시장 보고 역에 나가 기다렸다 태우고 와서 맛있는 거 해주려고 했는데, 저 놈이 뻗어서 꺼내다 꺼내다 [공주 모시러 가야 하는데 뻗어 있냐!] 하며 발로 차기도 했다.” 는 귀여운 선생님.


“늙은 공주 태우기 싫었나 보죠. ㅋㅋㅋ”


“이게 몇 년 만이야?”


“2008년도 여름에 만났으니까....”


“처음 관가정에서 만났을 때가 언제였지? 한 20년 됐지?”


하며 안아주며 시인은 ‘정말 오랜만이다’ 하신다.


그래 이렇게도 만나지는 사람도 있나 보다. 서울과 부산이라는 지리적 위치도 있었지만 그간의 말 못 할 사정들이 쉽게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 이리라.


詩만 쓰는 분이 아니고 소설과 시나리오 작업, 몇 년 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 오페라도 무대에 올린 분이니 얼마나 바쁘신 몸인가.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하셔서요.”


아무래도 초막이라고 하셔서 전날 메시지로 ‘필요한 것 있으시면 준비해 갈게요’ 하니 단호하게 ‘없습니다’ 하셔서 가방에서 코냑 한 병을 꺼내 드렸다.


“어~귀한 술 가져왔네.” 하며 좋아하신다.


“사실 어제 이 것 가방에 넣고 지갑은 확인도 안 했어요. 그리고 그대로 들고 나왔어요.” 덜렁대는 내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아주 익숙한 모습으로 싱크대 앞에 서서 잠깐 뭔가 하시는 것 같더니 즉석 샐러드 두 접시를 식탁에 갖다 놓는다. 샐러드 좋아하는 난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시원한 쑥차에 코냑을 조금 섞어 맛있는 음료를 만들어 준다. 손수 가꾼 로메인 상추에 참치를 얹고, 삶은 달걀, 이탈리안 소스를 끼얹은 샐러드와 함께 잘 어울리는 칵테일이 됐다. 술에 약한 나는 쑥차에 조금. 선생님은 조금 진하게?


“그동안 부산에 두 번 갔는데 전화도 못했어. 안타깝게.”


“왜 이제 연락했냐. 가까운데 있으면서”


전화기를 잃어버려서 전화번호를 몰랐다고 하신다. 며칠 전 나를 몰라보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다.


시베리아 작품 여행 끝내고 돌아와 6개월 동안 원고 교정하고 얼마 전에 출판사에 넘기고 났는데 연락이 된 것. 절묘한 타이밍이다. 서울에 왔다고 바로 연락했으면 통화도 안 됐을 것은 뻔하다. 어쩌면 영화도 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반가운 소식. 소설이 출판되는 일도 기쁜 일인데 영화까지 만들어질 수 있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난 음악이 없으면 안 돼.”


오페라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집안이 반갑다. 늘 음악이 흐르는 집안, 실내에서 일도 하고, 마음 맞는 사람과 담소하고, 책도 보는... 환경을 꿈꿔 온 내게는 천국이 따로 없다.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음악으로부터 문학, 종교, 삶.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을 가리키며


“이 자연이 다 성경이야.”


“풀 한 포기도 치열한 투쟁이야. 토마토, 수박, 호박, 오이 등을 키우면서 열매 중 한 개를 자연도태되면서 한쪽으로 영양이 전부 전달되어 실하게 크게 된다"는 것을 관찰에 얻고 계셨다.


창문 밑에 봉숭아, 마당 한 곁에 붉은 맨드라미. 여러 가지 꽃모종을 심어 놓고 부지런히 지하 암반수로 물 주었다는 시인은 해맑게 웃으며 자랑한다. [나 잘하지!] 어깨를 으쓱해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착각인가?


세월이 얼마큼 지났나. 우린 조금씩 더 늙어 있었고, 여전히 바쁜 선생님. 동그란 안경, 네이버 블로그 [선생님의 방랑 문학관]에서 뵈며 댓글로 인사를 하기도 했지.


사실 시인은 유명 인사다. 인터넷에 이름만 검색해도 팬들이 엄청 많은걸 금방 발견하게 된다. 한국인 최초로 자동차 경주의 불모지인 한국 대표로 국제 자동차 경주인 파리-다카르 랠리를, 사하라 사막을 완주한 분이다. 국제 파일럿 학교 출신이며, 파리 4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문단에 등단한 뒤에 한국 문단에 등단하신 분이다. 서정주 님의 애제자이기도 하다. 스웨덴 한림원에 프랑스어로 쓴 서사시 한 권이 등록되기도 존경스러운 시인!


몇 시간째 칵테일을 마시며 얼굴 붉어진 선생님. 바깥 풍경을 보다가


“저기 저 산, 저 흘러가는 구름을 좀 봐. 아름답지?”


“정말 좋아요. 저녁 어스름 빛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의 표정. 말로 표현하기 힘들죠.”


“와~ 시인 아니랄까. 어스름 빛...”


“그래서 시간대 별로 변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좋잖아요.”


내 폰에 저장된 음악을 들려주니 좋아하며 보내달라는, 천진스러운 표정.


“어떻게 그런 것을 하고 사니?”


신기한 듯이 물어본다. 오랜만에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음악 얘기를 실 컷 한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공유하고픈 음악을 컴퓨터 사양이 받아 주지 않아서 옮기지 못한다. 딸에게 전화로 물어보며 선생님 폰에 몇 곡 옮기긴 했지만 부족하다. 나도 컴맹이라 딸들에게 물어보며 배우는 것이 많은데 '비밀도 없이 다 얘기하냐? 나는 원래 감추질 못한다. 내 문제는 거의 애들하고 오픈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데.... 이상한가 보다. 음악 옮기는 일은 다음으로 미룬다.


“ 이런 열정을 숨기고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 고 묻는다.


흩어진 애들을 모으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몇 년을 그렇게 살았다. 숨겨진 열정이라든가 끼 같은 것은 아예 내겐 없는 것으로 무시하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서서히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독립을 하려 한다.

몇 개월 전부터 먹고 있었던 마음에 불을 지른 것은 막내였다. 막내가 러시아에 장기 출장을 다니게 되다가 주재원으로 있게 될지 몰라 제 원룸에서 살아 보라고, 예전처럼 글도 쓰고 엄마만의 시간을 갖고 살라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혀와 무작정 올라왔는데 만만치 않다. 부산의 애들에게는 일 년이라는 기한을 말하며 왔지만 내가 그린 그림대로 살아지면 여기서 살리라-


문학과 음악, 살아온 끝없는 얘기로 시간은 쉬이 흘러간다.(2012)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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