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신영 Jun 30. 2021

요즘 영화 보러 가기도 힘들어...

추억의 시간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함께 영화를 자주 보러 다녔다.

스필버그 감독의 E.T가 나왔을 때 막내가 세 살이었는데도 참으로 열심히 영화를 보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에 방학이 되면 어린이 영화들이 쏟아져 나와 늘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관엘 갔다.

애니메이션이 요즘처럼 활발하진 않았지만 심형래 씨의 '우뢰매' 시리즈를 계속 보러 다닌 것이 생각난다.

아이들은 매우 좋아했다. 태권브이, 언제나 정의의 로봇이 고난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악당들을 물리치는 마지막 장면에 나 자신도 아이들과 함께 환호를 지르곤 했다. 비록 일본 만화영화였지만 그랜다이저를 매일 TV로 함께 시청하며 울고 웃곤 했다.

일본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인 캐나다 출신 루시 모드 몽고메리 (Lucy Maud Montgomery) 여사의 자전적 소설인 빨강머리 앤도 즐겨보던 프로인데 아이들보다도 방영시간을 내가 더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시어른들은 이런 나를 의아해하셨다.

"너는 어른이 애들처럼 만화를 보느냐." 하셨으니까.

슬픈 장면에선 여지없이 제일 먼저 눈물을 흘리는 나.

월트 디즈니 만화에서부터 캔디, 까치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프로들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영화를 같이 보며 얘기를 나누는 친구 같은 엄마였다. 애들이 크면서 수험생이 되고 시어른을 모시면서 영화관에 자주 갈 수 없었던 우리들은 비디오를 빌려다 영화를 봤다. 좋은 영화를 기억해 놨다가 들어오는 대로 빌려다 보면서 어느 날은 아이들이 시험기간인데도

 "시험은 기본으로 치는 거야"하며 영화를 보자고 했다. 그때 둘째가

"내일이 시험인데 같이 영화 보자는 엄마는 우리 엄마밖에 없다."라고 하면서도 영화를 좋아하는 둘째 딸은 함께 영화를 감상했다.

우리가 서울로 와 그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되었을 때는 저녁에 모인 아이들과 함께 심야 영화도 보았는데 이렇게 늦도록 우리가 바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니 꿈만 같다고 했다. 여자 넷이서 길거리를 걷고 한강 공원에 가서도 그저 즐겁기만 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눈치 보며 살았던 세월을 지나 우린 자유로웠다. 뜻하지 않게 이산가족이 되고 다시 모이고 큰 손녀가 영화관에 데리고 갈 나이가 되어서는 다시 영화관에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주로 애니메이션을 보러 다녔는데 [벼랑 위의 포뇨], [리오] 등 조카를 위해 둘째와 막내는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고 가족 나들이를 하며 추억 만들기를 기꺼이 감당하는 것을 좋아했다.


오래전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 왔다.

큰 애가 친구와 가라며 관람권을 보내줘서 함께 갈 친구를 물색해야만 했는데 마땅히 같이 갈 사람이 없었다. 믿었던 친구는 갑자기 못 가게 되었다고 새벽에 연락이 오고, 회사 동료들은 이미 본 사람들이 많았다.

혼자라도 봐야지.... 비슷한 연배가 아니라서 함께 가자고 못한 사무실 동생이 보고 싶다고 동행해서 어렵게 영화를 보고 왔다.

블로그 방명록에 둘째가 영화 재미있죠? 같이 지내면 영화 데이트를 했을 텐데 라며 아쉬워했다. 둘째랑은 영화 취향이 비슷해서 좋다. 그래 애들과 함께 있으면 영화 볼 사람이 없어서 고민 같은 것은 안 했겠지.

새로운 시각에서 본 광해였는데 배우 이병헌이 연기를 잘했다고 모두들 얘기했다.

(아마도 9년 전쯤 영화 같네요~^^)

둘째 집에서 손녀를 육아할 때 매달 영화관에 갔다. 둘째가 하율이 보면서 힘들다며 바람 쐬고 오라면서  꼭 영화를 예매해줬다. 제 친구 엄마가 혼자 외로울 거라며 함께 보라고 했다. 딸 둘이 모두 타지에 있어서 그 친구 혼자였다. 어느 땐 프리미엄관을 예매를 해줘서 테이블엔 와인이나 주스를 차려주고 영하 보며 마시라고 하는데, 마치 집에서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듯 안락한 의자에 깊숙이 앉아 [사도]를 보고 오기도 했다.

친구는 효녀 딸 덕에 생전 처음 이런 곳에서 호강하며 영화를 감상했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요즘은 막내가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보여 준다.

"엄마, 보고 싶은 영화 없어요?" 하고 묻는다. 골똘히 생각하지만 요즘 영화와 먼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딱히 없네." 하면 딸은 엄마가 좋아할 풋풋한 순정 만화를 찾아서 틀어 주면서

"이건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

딸은 엄마의 취향을 잘 알아서 만화영화든 드라마든 찾아낸다. 그럼 또 집중해서 보다가 울컥해서 눈물이 고인다. 이젠 눈물 나는 게 싫어 슬픈 영화는 외면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사이다 같이 톡 쏘는듯한 시원한 것이 트렌드라고 한다. 갑갑한 것은 싫은 요즘 세상이다.


영화관에 다녀온지도 꽤 되었다. 함께 영화 보러 가던 친구는 부산에 살고 있으니 함께 갈 친구도 없다. 코로나 때문에 영화관에 갈 생각도 안 하고 살았는데 예전에 [광해]를 보러 함께 갈 사람이 없어서 애를 먹었던 생각이 나서 영화에 대한 추억 한토막 끄집어 내 보았다.


*커버 사진; daum.

*본문 사진; daum.

작가의 이전글 꼼지락꼼지락 뚝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