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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Jul 13. 2021

딸과 함께 했던 그날.

오래전 쓴 일기

새벽부터 두통으로 눈을 떴다.

미열과 함께 찾아온 두통을 당연히 처방받아 온 약을 찾아 삼키고는 누웠다.

원래 일어나야 하는 시간보다 30여분 일찍 깨어 두통이 가라앉기 시작하면 준비해서 첫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누웠는데 1시간이 지나도 두통은 가라앉지 않고 더욱 심해져서 머리를 들 수가 없다.

무슨 약이 그렇지? 의아해하며 다시 아스피린을 찾아 물컵에 물을 따른다.


결국 7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9시 예배에 참석은 하지만 무겁고 개운치 않은 머릿속으로 인해 우울하다.

하지만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막내딸의 무사 귀환을 감사드린다.

그동안의 쌓인 피로도 풀 겸 하루 종일 푹 자라고 했으니, 어제의 계획대로 루브르박물관전으로 발길을 향하기로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오호츠크까지의 거리는 지도상으로만 봐도 한반도의 몇 배는 되어 보인다.

로쟌 비잔, 하바로브스키 등, 낯선 이름 투성이의 도시로 출장을 다니고 이번에는 겨울에  물컵을 쏟으면 그대로 얼어 버린다는  도시 오호츠크까지 다녀왔는데 얼마나 피곤할까? 방해하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고, 어제 하지 못한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전람회 길로 나서긴 했으나 마음이 영 편치 못하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 이르니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관람하고픈 마음이 싹 사라진다. 대기시간을 보니 편치 않은 마음에게 돌아가라고 부추기는 숫자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하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치 시장 바닥 같다. 작년 여름 8월 휴가에 '고흐의 별이 흐르는 밤' 만치나 떠들썩하다. 평일 퇴근 후에 와도 괜찮을 관람 시간을 확인하고 '내셔널지오그래픽' 전시실로 들어선다. 여긴 조금 한가롭고 여유 있는 분위기이다. 즐겨보는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을 상기시키며 들어섰지만 내 마음은 도록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훑어보는 것으로 끝내고 전시실로 향하지 못하고 집으로 향한다.


무엇을 준비해서 막내딸의 입맛을 돋아 줄까?

러시아에서 기름진 음식을 한 달여 이상 먹다 왔으니 상큼한 메뉴로, 영양도 충실한 것으로 해야겠지?

딸도 좋아하고 요즘 자주 만들어 먹은 샐러드를 하기 위해 마트에 들려 집에 없는 재료 몇 가지를 사들고 들어 온다. 거리가 멀어 집에 돌아오니 저녁때가 다 되었다.

마침 막내의 남자 친구도 온다고 한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재료들을 꺼내놓고 준비하기에 이른다.

나가서 회라도 먹겠다고 하지만 토마토 샐러드를 만들어 낸 후 둘러앉아 먹으며 출장 얘기를 다시 시작한다.

어제 나누지 못한 얘기를.

오호츠크는 지금 우리나라의 초겨울 날씨 하 5도. 다행히 오리털 점퍼 하나라도 들고 갔기에 얼마나 다행인지. 춥다고 오들오들 떨었다는데 그 지역 사람들은 덥다고 한다나?ㅋㅋㅋ...

토마토 샐러드에 생양파를 보고서

"엄마! 엄마! 생양파 못 드시잖아?"

"그러게 선생님이 만들어 주셨는데 못 먹는다 말도 못 하고 그냥 먹었는데, 그날 이후 먹고 있어."

"우리 엄만 생파, 생양파, 생마늘 한 번도 드신적이 없어. 익은 것 말고는."

제 남자 친구에게 엄마의 편식을 다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놓고는

"그러고 보니 엄만  편식장이네.ㅎㅎ..."하고 웃는다.

"그래서 너희들이 음식 가려 먹어도 아무 말 안 했잖아."

"난 편식 안 하는데. 언니들이 했지."

"요즘 생각한 건데. 그래서 자주 아픈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양파도 몸에 좋다고 매 끼니마다 먹어야 된다고 나와있더라. 그런데 이 나이 되도록 맵고 냄새난다고 안 먹었잖아."

추석엔 연휴도 짧기도 하지만, 다시 러시아 들어 가야 하기도 해서 부산엔 나 혼자 다녀오기로 한다.

이번 출장의 성과가 좋아서 현지 언론의 사진, 유튜브에는 잠깐 스쳤지만 알아보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단다. 나이가 어려 전부 공부하러 왔냐고 묻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뭐하러 왔어요? 공부하러?"

"아뇨. 일하러 왔어요."

"무슨 일?"

"러시아에 중고 버스 팔아요."

다들 놀란다는 사실. 삼성 같은 대 기업에서 부장급들이 주재원으로 있으니 약관 20대의 나이로 주재원이니 놀랄 수밖에. 지난번에 판매한 대금을 받아 내는 중대한 임무. 가까운 시일에 200대를 계약하게 되는 것 같다. 코트라를 통해서 확실하게 인증을 해줬다니까 얼마나 대견한지. 회사의 사장님도 막내를 신뢰하며 멘토를 해주고 서로의 믿음과 안목으로 일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출장 갔던 도시의 신문에 난 시장과 딸.

이런저런 이야기로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늘 기도하는 막내딸이 대견하다.

그리스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마음고생하며  살았던 세월도 차츰 치유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딸을 보니 든든하다.

이제와 생각하면 나쁜 것이 다 나쁜 것만도 아니어서 그리스에서 있을 때 본인 노력도 노력이지만 네일숍 사장과 일하면서 러시아 말도 완벽하게 하게 되었고, 그리스 말도 다 능숙하게 되어서 왔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까를 생각하면 어미 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머나먼 타국에서 모든 것을 이겨내고 돌아온 장한 내 딸.

데리러 가서 나와 함께 보낸 일주일이 그리스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내 딸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돌아와서 나와 함께 새벽 기도 다니며 믿음 생활하고, 몽골에 단기 선교도 다녀와 뿌듯했다.

특히 하나님이 동행해주신다는 믿음으로 일을 하고, 기적의 역사를 체험케 하시는 주님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하니 더욱 열심히 기도하며 살아야겠다.


*커버 사진; 화가 이성미 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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