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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Aug 02. 2021

내게 주는 특별한 선물

여름 반팔 원피스

친구에게서 일요일에 만나자는 톡이 왔다.

녀 하율이와 동갑내기 쌍둥이 외손녀 본다고 어찌나 바쁜지 가까운 곳에 살지만 자주 만나지 못한다.

코로나로 인해 더욱 그렇긴 하지만 부산에 살 때는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나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손녀 키우는 얘기에 둘은 푹 빠져 살았다.

친구의 둘째 딸과 손녀하율이 엄마는 초등, 중등 친구라서 우리도 함께 30년도 훨씬 넘은 지금까지 친구인 것이다.


친구가 만나자고 하는데 뭘 입고 갈까 생각하다가 투명하게 비치는 원단 정리함에 눈길이 갔다. 정리함에서 숨 막혀서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옷감들을 바라보며 빙긋 웃는다.

'그래, 여름 원피스 한 벌 만들어 입자. ㅎㅎㅎ~'

예전에도 글 모임에 나가긴 해야 하는데 마땅히 마음에 드는 재킷이나 원피스가 없으면 밤새 만들어 입고 나간 적이 있다. 특히 간단한 민소매 원피스는 금방 만들 수 있어서 좋지만 볼레로나 재킷을 덧입어야 하니 더운데 한나로 충분한 반팔 원피스로 만들어 입자고 생각하고 만들기 시작했다.

남자들도 그렇겠지만 여자들은 특히 외출할 때 무엇을 입을까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친구와는 수십 년을 이어오면서 서로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아도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엔 첫눈에 입고 있는 의복 패션으로 판단하기가 쉽다. 옷이 날개라는 옛말을 들추어내지 않아도 말이다.

사실 난 옷 입는데 만큼은 고집이 있어서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취향대로 지금까지 지내오는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그 친구는 의사 딸내미가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몇 벌씩 브랜드 옷을 사 준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은근히 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그 친구도 아들 없이 딸 만 둘이다. 큰 딸은 외국계 회사에 다니고 아직 미혼이다.

둘째 딸은 우리 둘째와 비슷한 시긴에 결혼을 했으며 아기도 4개월 앞서 출산했는데 쌍둥이라서 그때부터 친구는 딸 집에서 살림과 육아를 맡아하고 있다.

아기들이 어렸을 때는 베이비시터 1명, 살림 도우미 1명, 대구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올라오는 사돈이 3박 4일을 도와주고 내려가는 일을 반복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고서부터 혼자 살림과 육아를 한다.

그렇게 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큰 힘을 주는 엄마에게

"난 엄마 없으면 안 돼." 하면서 코로나 이전에는 엄마와 아기들 데리고 외국 여행도 많이 다녀오고 온갖 호강을 시켜준다는 얘기를 한다. 사위도 의사이니 사는 것이 남부러울 것이 없다는 것이 얘기를 듣다 보면  파악이 된다.

그 딸은 학교 다닐 적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다. 재수를 해서 이화여대를 들어갔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삼수를 해서 기어코 의대에 들어갔다. 부모의 바람도 있었다. 특히 아버지의 의대 바람은 특별했던 것으로 안다.


큰 딸도 대학을 두 군데나 다녔다. 부산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는데 부산에서 명문에 속하지 못하는 학교를 졸업한 것을 콤플렉스처럼 여기더니 서울로 이사를 와서 고려대학교에 편입을 하여 대학을 다시 다닌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원하는 기업에 취직을 하고 지금까지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프랑스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본인의 꿈은 꼭 들어가고 싶은 미국계 회사로 이직하고 싶다며 준비하고 있다는 새로운 소식을 전해 준다.

아무튼 친구는 쌍둥이 손녀 돌보며 살림한다고 만날 때마다 거의 기진맥진이다.

그래도 유치원에 간 사이에 가끔 보던 얼굴을 코로나로 인해 밖에 돌아다니다가 행여라도 전염시킬 수 있을까 봐 몸을 사리느라 이번엔 봄에 한 번 여름에 한 번 보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가 집에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친구는 우리가 못 만나고 있던 여러 달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었음을 얘기한다. 그러면서 입고 나온 시폰 원피스가 어떻냐고 물어본다. 많이 뚱뚱해 보이지 않느냐면서 입은 것 같지도 않게 가볍고 편하다고 말하며

"우리 딸이랑 백화점에 가면 마음에 드는 것 얼마든지 고르라고 하는데 하나만 고르면 어느새 한 벌 더 골라서 두 벌씩 사주는데 요즘은 많이 안 다니니 옷이 많이 필요치 않더라."

"원래 시폰은 얇고 가벼운 것이 특징이지, 입어도 부담스럽지 않고 빨아도 툭툭 털어 말리면 금세 마르고 여름엔 최고지. 이번엔 나도 이런 옷감으로 한 번 만들어 봐야겠네. 얇아서 바느질하기가 까다로워 잘 안 했는데."

"지금 입고 있는 것도 만든 거야? 예쁘네." 한다.

"아니, 원래 입고 나오려고  리넨으로 반팔 원피스를 만들었는데 반팔을 입으려니 해가 뜨거울까 봐, 이건 퀼트 작가인 친구가 만든 원피스야."

아직 반팔을 입고 잘 나가지 못하는 나는 팔을 가려주는 긴팔 원피스를 입고 나갔던 것이다. 뜨겁게 비추는 햇볕도 문제지만 나이가 드니 피부가 예전 같지 않고, 봄에 산책을 많이 해서 그런지 그을려 갈색 반점이 주근깨 마냥 도배를 하다시피 해서 보기 흉해 반팔 옷을 입기가 겁이 난다. 반팔을 입으면 쿨토시를 반드시 하고 나갈 정도로 예민하다.

사실 지난봄에 만났을 적에도 큰 딸이 밍크코트 사준다고 파주 아울렛에 갔다가 못 사고 다시 강남에 있는 백화점 *도 모피에서 딱 마음에 드는 코트가 천만 원 하길래 돌아서는데 매니저가 부르면서 봄이라 60% 세일한다며 400만 원이라고 해서 횡재한 얘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다. 사실 요즘 난방이 잘 되어 는 시대라 밍크코트 입고 특별히 갈 일은 없는데 친척들 경조사에 입고 갈 옷으로는 밍크 만한 게 없다며 큰 딸이 사줬다는 것이다. '맞아 맞아, 경조사엔 입고 갈 필요 있어' 하며 맞장구를 쳐줬었다.

오늘 유명 브랜드 원피스를 입은 친구를 보고 '예쁘다, 어디서 샀냐, 잘 어울린다' 칭찬을 많이 해줬어야 했는데 내가 눈치가 없었나 보다.

예전에 우리나라 디자이너 옷만 고집하며 입던 버릇이 있던 나는 비싼 외국 브랜드와 유명 브랜드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옷값이 비싸도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어쩌다 외출할 때 한 번씩 입는 옷을 많이 사둘 필요를 느끼지 않아 마음 내키면 패션 책을 뒤져보며 나에게 맞을만한 디자인을 골라서 패턴을 떠서 만들거나, 친구 작업실에 들려 친구가 디자인해서 만든 옷을 사거나 패키지를 주문해서 들고 와 하나밖에 없는 옷을 만들어 입거나 한다.

*8월에 내려가서 줄 하율이 원피스와 하율이 원피스 만들고 남은원단으로  커플로 입으라고 만든 둘째 반바지.

애들이 어렸을 때는 서로 고만고만 비슷하게 살던 집이었지만 딸들 교육을 잘 시켜서 의사 만들고 나니 사는 모습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역시 우리나라는 아직도 의사들이 잘 사는 나라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난 내 딸들에게 아픔만 주고 제대로 해준 것이 없어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애들이 부모 잘못 만나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은 늘 있어 왔는데 오늘 유독 마음도 무겁고 다리도 천근이다. 물론 친구 가정도 100% 완벽한 것은 아니다. 세상사 천 가지, 만 가지 걱정이라고 항해사인 남편이 배를 타고 바다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편집증이 심해져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위험한 사람이 되어, 상상력이 과해 칼을 들고 아내를 죽이겠다고 덤비는 남편과 함께 살지도 못하고 각자 서울과 안성의 다른 집에서 생활을 해야 하며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이 살고 있는 집에 가서 밑반찬 챙겨 주고 청소해주고 온단다. 찬 맛있게 하는 집을 찾아 정해반찬 집 아줌마와 싸우고, 도우미 아줌마랑 싸워서 힘들어도 친구가 내려가 관리를 해준단다. 남편의 이상 행동 때문에 친구 혼자 못 가고 딸 둘과 내려가 큰 딸은 화장실 청소, 둘째는 방청소, 친구는 주방 청소를 해주고 오는데 그 사연이 기막히다. 남편이 청소를 안 해서 집안이 돼지우리 이상 간단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 구더기가 온 집안을 기어 다녀서 기함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장인이 이렇다는 것을 사위가 알까 봐 일 년에 몇 번 기념일에나 만나서 시간을 보낼 정도이다.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하고, 오손도손 단란하게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없음은 이전부터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그 남편은 해도 해도 너무한 사람이다. 하기사 정상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효성 지극한 그 딸이 이번에 장이 심하게 꼬이고 중첩이 되어 대수술을 받았고 헬리코박터 균 때문에 약을 먹고 위 내시경을 하다 작은 혹이 발견이 되어 떼어 냈는데, 조직 검사에서 암이라는 판정이 나서 놀란 가슴을 진정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안팎으로 스트레스가 심하다 보니 그런 위중한 병이 발생했는가 보다. 다행히 다 낳아서 나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어 하소연을 한 시간이 친구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길 빌어 본다.

 

원피스를 다 만들어 딸에게 보여주며

"아줌마 만나러 갈 때 입으려고 만들었어"하니

"엄마, 예쁘다." 한다.

"예뻐? 너도 만들어 줄까?" 하니

"응"한다.

아직 딸에게 원피스는 만들어 준 적이 없다. 나와 떨어져 지낼 때에는 긴치마도 입었었다고 하지만 직장을 나가면서 아무래도 코디하기 쉬운 바지를 주로 입는 것 같아 블라우스와 바지만 만들어 줬었다.

이번에 입기 편한 출근복을 만들어 주려고 워싱 처리한 고급 리넨을 사 왔는데 아무래도 원피스로 디자인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올 여름 내게 준 특별한 원피스였지만 아직 입고서 외출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손녀와 딸들 옷만 만들다가 여름 원피스를 만들어 선물한 셀레던 기분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

* 이년 전 포목점 앞을 지나다 첫눈에 들어 샀지만 이제야 만들었다.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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