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학년. 유치원 다닐 때에는 소풍이나 현장 학습을 가도 집에서 준비하는 도시락이 없었기에 서른 살이 된 막내딸이 고등학교를 마친 후부터는 김밥 만들 일이 없어서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엄마가 있으니 이제는 맛있는 김밥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큰 딸이 제 딸에게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동안 손녀딸은 김밥보다 유부초밥을 좋아해서 김밥을 먹지 않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풍을 가니 김밥 만들 재료와 손녀가 원하는 과자와 도시락 데코레이션 할 과일 등 여러 가지를 사 왔다.
"엄마, 홍이 1학년 때 김밥을 쌌는데 정말 맛이 없었어. 김 고르는 것부터 어떤 김을 써야 하는지도 몰랐고, 엄마가 열 가지 정도 속재료를 넣었던 기억만 있을 뿐, 어떻게 말아야 하는지도 몰라서 어찌어찌했는데 그때부터 홍이가 김밥을 거부했어."
1학년 봄 소풍 무렵부터 내가 서울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내가 홍이에게 김밥 맛을 보여줄 기회는 없었다.
딸들이 어렸을 때는 온 가족이 김밥을 좋아해서 김을 세 묶음 이상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30~40개씩 김밥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한 명이 소풍을 가면 그날 다른 딸들도 도시락은 당연히 김밥. 가족들은 시어른을 제외하고는 점심, 저녁 메뉴가 어묵탕과 김밥이었다. 김밥이 목이 멜까 봐 속재료를 10여 가지 넣는 것이 전통처럼 되어 있는 나만의 김밥. 그 외에 애들 좋아하는 새우튀김과 과일을 곁들여 넣어주어서 인기 있었던 소풍 도시락이다.
선생님들께서 드실 것은 목이 메이지 않도록 해파리냉채도 만들어 찬합에 넣어 배달했던 기억인데 몸을 움직여하는 일은 잘 도와 드렸던 것 같다. 그만큼 내 아이를 맡아 가르친다고 열심히 정성을 다 했다.
하필 몸살로 이틀을 앓으면서 삼일 째 되는 날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시장은 잔뜩 보아 부려놓고 내가 아프면 안 되는데... 약 기운으로 조금 괜찮은 저녁에 큰 딸의 도움을 받아 속에 들어갈 재료들을 썰고 졸이고, 양념해서 볶아 놓았다. 쇠고기 볶음, 단무지, 당근채, 어묵조림, 햄을 가늘게 썰어 놓고, 우엉채 조림, 맛살채, 달걀지단, 오이절임 등 밑간을 전부 해놓고 다음 날 아침을 기다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 큰 딸이 지어 놓은 밥을 떠서 유부초밥용 밥을 만들고 김밥을 만들었다. 요즘은 마트에 가면 초밥용 유부가 입맛에 맛게 고르면 될 정도로 많이 나와 있는데 예전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단촛물을 만들어 밥을 만들고 유부도 심심한 간장소스를 만들어 졸여서 썼다. 참 편한 세상이며 천편일률적인 맛으로 맛의 평준화를 이룬 것도 같다.
김밥을 만들어 놓으니 큰 딸은 도시락 데코레이션을 했다. 딸 것과 담임 선생님, 동생 몫을 열심히 만들어 포장을 했다. 손녀 딸용으로 조금 가늘게 만든 김밥을 한 접시 썰어 주니 손녀는 환하게 웃으며 맛있다며 잘 먹었고, 몸이 아파 둘째 네로 아침에 못 가는 내게 둘째 딸이 호야를 산책시켜 데려왔다. 둘째 딸은 들어서자마자 "음~엄마 김밥 냄새!" 하면서 담아 놓은 김밥을 뚝딱 먹고는 출근을 했다.
"바로 이 맛이야~" 하면서.
손녀딸 소풍 덕에 오랜만에 가족들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그동안 손녀는 제 엄마가 만든 김밥이 너무 맛이 없어서 김밥은 맛이 없는 거라는 인식 속에 유부초밥만 먹었다고 한다. 두 딸은
"김밥 싸는 게 쉽지 않더라."
"우리 어렸을 때 엄마는 선생님 도시락까지 그 많은 김밥을, 또 곁들이는 음식까지, 새우튀김이 기억에 제일 많이 난다. 그래서 홍이에게도 여러 가지를 넣어주게 됐다."라고 김밥을 먹으며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한다.
몸살에 미묘한 입맛까지도 잘 알 수 없어 김밥은 내가 원하는 맛있는 맛이 아닌 것 같은데 딸들과 손녀가 맛있다 하니 다행스럽다.
아무튼 오랜만에 김밥을 만들어 온 가족이 먹을 먹을 것 까지 세팅해놓아 뿌듯한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