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피카소! 2

도자기와 피카소

by 안신영

3. 새로운 도전, 도자기

피카소 전시를 볼 때마다 나의 시선은 늘 도자기 앞에서 오래 머문다.
이번 전시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회화보다 먼저, 자연스럽게 도자기 쪽으로 발걸음이 향했다.

도자기 공예를 전공하던 학생 시절, 난생처음 피카소의 도자기를 마주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시야에 갇혀 있었다. 도자기는 옛것을 모방하고, 정해진 형식을 따라야 하는 분야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카소는 그 믿음을 단번에 깨뜨렸다. 그는 화가이면서 동시에, 나에게는 도자기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도공이었다.

도자기를 빚고 말리고 굽고, 다시 유약을 바르는 반복적인 과정 속에서 나는 늘 ‘잘 만드는 것’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피카소의 도자기는 달랐다. 그는 그 과정을 기술이 아니라 놀이처럼 다뤘다. 때로는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오브제처럼 만들어 말린 뒤 다시 구워 벽에 거는 타일로 구성하기도 했다. 도자기는 더 이상 그릇이 아니라, 자유로운 형식의 조형 언어였다.

전시장에 놓인 피카소의 도자기들은 그 세계가 얼마나 넓은 지를 단번에 보여준다. 작은 물병에서부터 커다란 항아리, 대형 꽃병, 동물 형상, 여인의 두상, 석판과 벽돌까지. 크기와 용도, 재료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드는 모습은 도자기가 가진 가능성을 끝없이 확장시킨다. 상상력 앞에서는 도자기 또한 제한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피카소 미술관 큐레이터 요한 포풀라르의 글을 읽으며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전후 시기, 공산주의를 신봉했던 피카소에게 도예는 삶과 가장 밀접한 예술이었고, 모두에게 열려 있는 예술적 유토피아에 가까웠다. 화가와 예술가라는 이름 아래 숨은 허세와 연출을 싫어했던 그는 도예 작업실에서 수공업과 공작에 가까운 순수한 창작의 기쁨을 발견했다.

*망사를 두른 여인의 두상.

이번 전시에서도 <망사를 두른 여인의 두상>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뒷면에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망사는 흙이라는 재료가 가진 물성을 잊게 할 만큼 가벼워 보였다. 우리 옛 여인들이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위해 흰 천을 둘렀듯, 유럽의 여인들은 이렇게 망사를 둘렀을까. 도자기는 국경을 넘지 않지만, 여인의 몸짓은 닮아 있었다.

<벽돌 조각, 여인의 두상>은 또 달랐다. 움푹 팬 벽돌의 요철을 그대로 얼굴의 입체로 살려낸 작품 앞에서는 피카소가 재료를 ‘만드는 사람’이기보다 ‘발견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흙을 빚기보다, 흙이 이미 가진 표정을 끌어낸 것 같았다.

전시장을 걷다 보니 오래전 수업 시간이 떠올랐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작은 타일을 초벌로 구워 펜던트를 만들고, 그것을 목에 걸고 다니던 시절. 서툴렀지만 세상에 하나뿐이라는 이유로 그 목걸이는 유난히 자랑스러웠다. 부드러운 흙의 감촉은 진흙을 가지고 놀던 유년의 기억까지 함께 불러냈다.

피카소가 도자기를 통해 꿈꾸었던 것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예술’이었다는 말을,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보다 더 또렷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화가의 손이 아니라 노동자의 손으로 흙을 만졌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의 도자기는 여전히 따뜻하고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술사학자 장 카수가 1949년에 남긴 말도 인상 깊다.
“피카소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동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지적 탐구보다 재료를 직접 만질 때 더 큰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도자기 앞에 선 피카소의 모습을 선명하게 떠올리게 했다.

피카소는 이 시기에 석판화와 함께 도자기에 몰두하며, 예술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가갔다. 그가 남긴 말은 여전히 생생하다.
“내가 만든 도자기를 모든 시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브르타뉴의 마을이나 어디에서나 여인들이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갈 때, 내가 만든 물병을 들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말 앞에서 나는 오래 서 있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피카소의 도자기는 작품이기 이전에 ‘삶을 담는 그릇’이었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손에 쥐고 사용할 수 있는 예술을 꿈꿨던 그의 도전은 지금 보아도 새롭다.

전시의 마지막에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피카소가 도자기를 선택한 것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예술을 다시 삶으로 돌려놓으려는 선택이었음을. 그리고 그 선택은 도자기를 사랑했던 한 관람자의 기억 속에도 오래 남아, 여전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

*포도송이와 가위로 장식한 사각 접시. 벽돌 조각, 여인의 두상.

미술사학자 장 카수가 1949년에 남긴 말도 인상 깊다.
“피카소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동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지적 탐구보다 재료를 직접 만질 때 더 큰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도자기 앞에 선 피카소의 모습을 선명하게 떠올리게 했다.

피카소는 이 시기에 석판화와 함께 도자기에 몰두하며, 예술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가갔다. 그가 남긴 말은 여전히 생생하다.
“내가 만든 도자기를 모든 시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브르타뉴의 마을이나 어디에서나 여인들이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갈 때, 내가 만든 물병을 들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말 앞에서 나는 오래 서 있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피카소의 도자기는 작품이기 이전에 ‘삶을 담는 그릇’이었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손에 쥐고 사용할 수 있는 예술을 꿈꿨던 그의 도전은 지금 보아도 새롭다.

전시의 마지막에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피카소가 도자기를 선택한 것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예술을 다시 삶으로 돌려놓으려는 선택이었음을. 그리고 그 선택은 도자기를 사랑했던 한 관람자의 기억 속에도 오래 남아, 여전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

*월계관을 쓴 아이의 두상이 있는 타일. 여인의 두상이 있는 석판.

피카소의 도자기는 한마디로 놀랍다. 오래 전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대하고 만들었던 도자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유약을 바르고 다시 색을 입히며 그림까지 그리고 나면 처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탄생할 때가 많다. 1200도의 불가마 속에서 새로 탄생하게 때문에 불의 예술이라고도 하는 도자기는 열기가 식은 다음에 꺼내보고 운명이 갈린다. 도자기 가마 옆에는 산더미같이 깨진 도자기 동산이 있다. 예술가들은 본인이 원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 때 가차 없이 망치로 두드려 깼기 때문이다.


거침없이 그린 그림.

우리의 도자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 현대로 들어서서는 도자도 다양해져서 놀랄 일이 없지만 1970년대 학창 시절엔 많이 놀라웠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스페인의 도자기 흙은 우리의 흙처럼 좋은 것은 아닌가 보다. 우리의 고령토가 세계 최고라고 배웠는데 고려청자의 비색, 조선시대의 백자처럼 맑고 빛나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물론 유약에 따라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고유의 고려청자. 조선의 백자, 분청과는 사뭇 다른 색채감, 질감, 형태, 크기는 우리와는 천지 차이다. 개인적 생각에 분청자기에 가까워 보이는데 피카소의 독특한 예술세계는 마치 동심으로 이루어진, 마음껏 놀며 의미를 부여해보고 싶은 충동의 찰흙놀이를 발견하는 것 같다.

순진무구함이 엿보이는 작품들... 올빼미와 여인, 부엉이, 올빼미, 비둘기와 염소들.

*목욕하는 여인 장식의 꽃병. 나이프, 포크, 반 자른 사과와 껍질이 있는 접시

피카소의 작품 어디에서나 여인의 모습은 빠질 수 없다. 그의 자유분방함이 도자기에서도 엿보인다. 꽃병에 여인의 나신을 넣다니... 접시엔 도르르 말리는 사과 껍질과 튀어나올 듯한 씨가 보이는 반 자른 사과 모양을 양각으로 돌출되게 만든 뒤에 색칠을 하여 정물화처럼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올빼미가 있는 스페인 접시. 정면, 측면 얼굴과 두 올빼미 장식으로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꽃병.

<올빼미가 있는 스페인 접시>- 귀여운 올빼미가 당당히 서서 노려 보는 모습이 마치 기사 같다. 꽃을 담는 작고 <정면, 측면 얼굴과 두 올빼미 장식으로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꽃병> - 꽃을 꽂는 작고 예쁜 꽃병만 보아 오던 나의 눈에 이렇게 어마 무시하게 커다란 조형에 술로 만들어진 꽃병을 만났을 때의 경이로움을 상상해 보시라.

8알을 품고 있는 비둘기. 무릎 꿇은 여인 술병

<알을 품고 있는 비둘기> - 피카소의 작품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비둘기를 이번에는 도자기로 알을 품게 했네요. 프랑스 시인 장 콕토가 "자네는 비둘기의 목을 비틀어서 비둘기에게 생명을 불어넣는군"하고 말했대요.

<무릎 꿇은 여인의 술병>- 하룻밤 말리고 오브제가 꾸덕꾸덕 해졌을 때 피카소는 여기저기 눌러 오목한 부분을 만들고 통통한 팔을, 허리와 목을 강조하기 위해 점토를 구부려서 여성의 모습을 완성했다.(요안 포풀라르의 글에서)

*풍경, 부부, 연인과 원숭이: 세 개의 원형 장식이 있는 술병.

<풍경, 부부, 연인과 원숭이: 세 개의 원형이 있는 술병>- 술병을 돌아가며 보면 세 개의 원안에 풍경, 부부, 연인과 원숭이 그림이 들어 있다.


*토너먼트 장면이 있는 접시, 갑옷 입은 기사. 부엉이가 있는 원형 꽃병잇

피카소는 접시를 투우장으로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고 자신의 최애 마스코트 올빼미, 부엉이, 비둘기들을 회화, 데생에서 수없이 그렸듯 도자기에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형대는 도자기 제작자가 만들고 하룻밤 말린 것에 모양을 구부리거나 움푹 파이게 하거나, 색칠을 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피카소는 점토를 가늘고 길게 만들어서 자르고, 조각하고 붙였다. 또한 점토를 구부리고, 성형하고, 조합하고, 거기에 화장토, 유약, 파스텔을 칠했으며 점토를 구운 뒤에 점차 나타나는 색깔의 변화를 관찰하였다고 하는데 실험 정신이 투철하고 천진 무구한 어린애의 모습이 발견되기도 하는 장면으로 생각된다.

*부엉이 세 마리가 있는 작은 고딕 술병. 아룸 꽃이 있는 고딕식 술병.
*목신이 장식된 적은 술병. 올빼미.

도자기는 조각도, 회화도 아니거나, 또는 조각인 동시에 회화이기도 하면서 예술 분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1961년 발로리스 라디오 인터뷰에서 도자기와 조각 간의 관계를 묻는 말에 피카소는

"굉장히 비슷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도자기의 경우 이미 만들어진 형태 위에 유약을 바르고 색을 입히죠. 그리고 그 위에 그림까지 그리면 처음과는 전혀 다른 오브제가 탄생합니다."

비주류로 인식되는 소박한 예술, 장인의 예술, 공방의 예술인 도예는 피카소에게 장르 간의 경계를 재정의할 방법, 더 정확하게는 이 경계를 자유롭게, 끊임없이 즐겁게 넘나들 수 있는 통로를 알려주었다.

"조각은 무엇인가? 회화는 무엇인가? 우리는 진부한 생각과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정의에 매몰되어 예술가의 역할이 새로운 생각과 정의를 만드는 것임을 언제나 망각한다."라고 피카소는 말했다.

예술을 새롭게 정의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도전했던 피카소에게 도에는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 준 것이다.

이미 60여 년 전에 새로운 정의를 내린 피카소! 역시 그는 천재 예술가임이 분명하다.(다음 계속)

연주자들로 장식한 접시. 눈과 황소가 있는 스페인 접시, 후면: 황소 머리
*여인의 누드가 있는 가젤. 머리 빗는 여인의 누드가 있는 가젤. * 가젤- 불쏘시개이면서 도자기를 구울 때 받침대 역할을 하는데 피카소는 여기에도 생명을 불어넣어 줬다.
*물고기를 든 손 장식의 원형 꽃병. 이 작품은 "손가락을 벌린 두 손은 마치 도자기를 빚고 있는 도예가의 손처럼 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photo by young: (작품 사진-도록 캡처)

*참고: PICASSO In the My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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