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피카소! 3.

피카소의 여인들 그리고 마지막 열정

by 안신영

피카소의 작품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그림보다 여인의 얼굴이 먼저 보이기 시작한다.
창작의 중요한 시기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여인들. 새로운 여인이 등장할 때마다 달라지는 화풍은, 피카소의 예술에서 여인이 결코 부차적인 존재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피카소는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라고 회상했다. 그의 말처럼 여성의 존재는 분명 그의 삶과 예술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전시장을 돌며 나는 자연스레 다른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그와 함께한 여인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아름다운 여인들이 화면 속에서는 종종 기괴한 얼굴로 변형되어 있었다. 그것은 내면을 꿰뚫어 본 시선이었을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허락된 왜곡이었을까. 화가의 뮤즈로 살아야 했던 삶은 어떤 시간이었을지, 작품 앞에서 오래 서서 생각하게 된다.

피카소의 첫 번째 여인 페르낭드 올리비에는 입체주의 탄생을 함께한 연인이었다. <아비뇽의 처녀들>과 여러 입체주의 조각 속에서 반복되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작품을 보니, 형태의 실험보다도 한 여인을 집요하게 바라보던 시선이 먼저 느껴졌다. 그러나 입체주의가 절정에 이르던 시기, 또 다른 여인의 등장과 함께 그 관계는 끝을 맺는다.

창문 앞에 앉아 있는 여인, 모자를 쓴 여인의 상반신.

에바 구엘(Eva Gouel)은 피카소의 두 번째 여인.

폴란드 출신 입체파 화가 루이 마르퀴스의 의붓딸로 1011년에 피카소의 연인이 되었다. 1912년에서 1914년 사이의 종합적 입체주의의 주된 모델로 작품 <나는 에바를 사랑해 J'aime Eva>에서 공개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밝히기도 했으나 주로 기타 또는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로 표현되었다. 작품 <우리 자기 Ma jolie>(1911-191,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는 예바에 대한 사랑을 작품 속에 아로새긴 작품이다. 1차 세계대전 중에 파리를 떠나 피카소와 아비뇽에 머물던 그녀는 1915년 12월 결핵으로 서름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ㄸ났다. 그녀와의 짧은 행복은 피카소의 작품 속에 영원히 새겨져 있다.

1917년 장 콕토와 이탈리아 로마에서 체류 중인 피카소는 <<퍼레이드>> 무대 장식 작업을 맡아 일을 하면서 러시아 발레단의 무용수 올가 코를로 바(Olga Khokhlova 1891-1955)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열 살이 어린 올가는 피카소와 사랑에 빠지자마자 발레단을 그만두고 1918년 7월 파리에서 결혼식을 올리면서 피카소의 첫 번째 부인이 된다. 첫아들 폴이 태어나지만 둘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고 잦은 불화로 관계가 멀어지던 중 피카소는 어린 마리 테라즈(Marie Therese Walter 1909-1977)를 만나 밀월을 지속한다.

뒤늦게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올가는 아들 폴을 데리고 남프랑스로 내려가 별거 상태에 들어가 이혼을 요구하지만 피카소는 재산 문제로 이혼을 거부한다. 올가는 1955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피카소의 부인으로 평생 남았다.

올가의 등장은 시기적으로 피카소의 입체주의 시대를 마감하고 고전주의로 화풍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아들 폴과 함께 피카소의 고전주의 시대 주된 모델로 등장한 그녀는 입체파에서 전통회화로의 급격한 변신을 하는 피카소의 화풍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발레단의 무용수였던 올가는 선명한 얼굴 윤곽과 아름다운 실루엣을 지닌 여인이었다.

여인의 상반신(모델; 올가).

1930년대 초 피카소 대표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마리 테라즈. 피카소의 숨겨둔 여인이라는 이유였을까 피카소는 짧은 신고전주의 시대를 끝내고 초현실주의풍의 독특한 작품을 생산하는 시기이다. 1931년 피카소는 부아 젤루에 성을 구입하여 그녀와 동거하면서 초현실주의 작품에서 감춰진 얼굴이었던 그녀는 밝고 빛나는 아름답고 에로틱한 여인으로 작품에 등장한다. 1935년 둘 사이에 딸 마야가 태어나면서부터 둘 사이는 멀어지기 시작했고 1937년을 전후해 새로운 여인 도라 마르의 등장으로 마리 테레즈는 설자리를 잃게 되고 네 번째 여인으로 기록된다. 마리 테레즈는 피카소 사망 4년 후인 1977년에 목을 매달아 스스로 생을 마감하다.

마리 테레즈는 피카소의 회화 양식을 완성한 대표 시기를 함께한 여인이었다.


도라 마르(Dora Maar 1907-1997)는 초현실주의 여류 사진작가이다. 사진작가였던 그녀는 피카소 반전反戰 예술의 상징이 된 <게르니카>의 모든 작업 과정을 지켜보며 기록으로 남겨 이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데 공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피카소의 현실 참여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그녀는 새로운 여인 프랑스와즈 질로의 등장으로 피카소 곁을 떠나야 했다.

파란 모자를 쓴 여인의 상반신(모델; 도라 마르).

프랑스와즈 질로(Francoise Gilot 1921 -)는 법학도였으나 화가로 전향한 젊은 미술 하도였다. 피카소가

60살이 넘은 나이에 만난 그녀는 당시 21살이었다. 프랑스와즈는 1944년부터 피카소의 연인이 되어 10년간 살면서 두 아이를 낳았으나 1953년 피카소를 스스로 떠나면서 피카소 여인 중에 자진해서 그를 떠난 유일한 여인으로 기록되는데 지금 까지 100세의 삶을 누리며 살고 있다. 피카소의 작품에서 꽃의 여인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아름답고 우아하고 기품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작품에 그려졌다. 1964년 피카소와 10년의 삶을 기록한 [[피카소와 함께 산다는 것]] 제목의 회고록을 발표하면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이 책의 발간으로 피카소의 노여움을 샀으며 두 자녀는 피카소 생전에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피카소의 삶에 마지막 여인이자 두 번째 부인인 자클린 로크(Jacqueline Roque 1926-1986), 결혼과 이혼으로 어린 딸이 있는 자클린이 피카소를 만나 것은 27세의 나이에 71세의 피카소. 연인 프랑스와즈가 떠난 후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을 때 도자 공장에서 일하는 자클린을 보자 사랑에 빠져 든다. 스페인 여자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그녀에게서 찾아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랜 별거 생활을 했던 첫 번째 부인 올가가 세상을 떠나자 자클린과의 결혼식을 올린다.

피카소와 자클린

자클린은 피카소의 말년을 함께 1973년 피카소의 사망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피카소 사후에 무젱의 저택과 보브나르그의 성을 비롯한 피카소가 남긴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았으나 우울증과 알코롤 중독에 빠졌고 1986년 권총으로 자살하면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유언에 따라 보브나르그 성의 피카소 옆에 묻혔다.

피카소 작품에서 그녀는 화가의 작업실, 화가의 모델이라는 연작의 주된 누드모델로 등장하면서 화가와 모델의 은밀한 관계를 시사하는 노화가의 뮤즈로 등장하였다.

피카소 여인들은 비교적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작업의 중요한 변화 시기를 함께 했던 공식적인 여인이 있는가 하면 잠시 관계를 맺었던 쥬느비에브 라포르트(Genevieve Laporte 1926-2012)와 실베트 다비드(Sylvette David 1934-)등 그리 알려지지 않은 여인들 또한 그의 삶에 흔적을 남긴 여인들이다.


17살의 마리 테레즈를 떠올리면 마음이 편치 않다. 45세의 피카소 옆에서 그녀는 정말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을까. 오늘날의 시선으로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시대가 달랐다 해도, 여성 편력 앞에서는 예술가라는 이름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 테레즈는 피카소 작품 속에서 가장 빛나는 여인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부인 올가와의 관계가 식어가던 시기에 만난 그녀는 1930년대 피카소 예술의 중심에 서 있었고, 그의 작품 속에서 가장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얼굴로 반복된다.

전시장을 나서며 나는 생각했다.
피카소의 예술은 분명 위대하지만, 그 예술을 떠받쳤던 여인들의 삶까지 위대했는지는 쉽게 말할 수 없다고.
그 질문이 오래 마음에 남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전시가 내게 남긴 가장 큰 감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평생 동안 나는 사랑만 했다. 사랑 없는 삶은 생각할 수가 없다.... 피카소>

염소.

염소 청동조각은 꽤 사실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대작 염소 그림.. 웃고 있네. 해학적 모습.

해골과 성게의 연관관계? 솥단지와 해골도...

솥단지가 있는 정물화.

염소. 두 팔을 벌린 여인.
솥단지와 해골. 테이블 위의 해골, 성게와 램프.
염소. 비둘기
풀 베는 사람. 고양이.

<나는 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그린다.

Pablo Picasso>


마지막 열정

<나에게 비술관을 달라, 그 속을 가득 채울 것이다. Donnez-moi un musee, je le remplirai.>

대가들의 작품을 재해석하는 시간.

낭만주의 들라크루아 알제의 여인을 15점 다른 버전.

디에고 벨라 시 케즈 시녀 글 58점.

마네 풀밭 위의 식사 재해석 27점

니코라 푸생

자크 루이 다비드.

*재해석한 그림들은 도록에 없어서 캡처를 하지 못했습니다. 풀밭 위의 식사라든가 알제의 여인 등 많은 작품을 재해석해서 그렸다는 것이지요. 전시회장에도 몇 점 없었습니다.

<칸느의 해변>-지중해 해변 도시 칸느가 지닌 매력을 마음껏 표현하고 예찬을 보내는 듯하다.

전면에 자리한 야자수 나무는 해안의 생동감을 주고 칸느 해안을 감사는 만에는 돛을 단 요트와 고대와 현대식 건물이 즐비하다. 멀리 바다의 풍경을 완만한 곡선의 물결로 처리한 부분은 이 도시가 오랜 라틴문명의 역사를 지닌 바다임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현재와 과거를 아우르면서 역동적이고 평온한 분위기를 밝고 힘 있는 필치로 대비한 이 작품은 폭이 2m에 이르는 대형 캔버스 안에 풍경의 디테일을 대담하게 담고 있다. 그의 마지막 여인 자클린과 행복한 말년을 보내는 피카소의 평화로운 삶이 표현된 작품으로 역경을 딛고 한 세기를 살아온 70대의 노화가의 힘 있고 자유분방한 필치가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다.

보브나르그 식탁은 딸과 자클린이 모델.

보브나르그에서 거주. 10개월에 거쳐 완성

여인과 어린아이와 개 한 마리가 실물보다 과장되게 묘사. 움직이는 아이와 꼿꼿한 자세로 앉은 여인과 대조를 이룬다. 피카소가 집안에서 키운 달마티안 종의 페로(Perro )는 검고 무거운 찬장과 대조적으로 흰 바탕에 점박이 무늬가 돋보인다.

<그림은 보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피카소의 삶과 예술은 그가 함께한 여인들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여인들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그의 예술은 변모하고 발전하고 소멸하고 재생되었다.

청년 시절의 페르낭드 올리비에는 장미 시대와 입체주의 시대를 연 여인이었고, 에바 구엘은 입체주의를 꽃피운 여인이었으며, 올가는 고전주의 시대를 함께 했고, 마리 테라즈와 도라 마르는 초현실주의 시대의 동반자였다. 프랑스와즈와 자클린은 피카소 예술의 정점에서 지칠 줄 모르는 창작열을 지켜준 여인들이었다.

*photo by younng;(도록 캡처).

*참고;PICASS0 Into the My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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