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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Aug 20. 2023

밤의 탄천길을 걸으며 드는 생각들

입추, 말복도 지났건만 날씨는 연일 뜨겁다.

녁즈음 시원한 빗줄기가 사람들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다시 지하철 역사로 되돌아오게 해도 얼굴들은 즐거운 표정이 역력하다.

나조차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작은 우양산이 있었지만 굵은 빗줄기가 그저 신이 나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를 기다려 역사로 내려와 화단가에 걸터앉는다.

유모차의 아기도 아장아장 걷는 아기도 엄마와 함께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밤에도 피어나 빛나는 분꽃.

뜨거웠던 땅이 식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폭우와 폭염이 반복되어 많은 사람들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이곳에는 피해가 없다며 흠뻑 내려 열기가 식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가 비만 내리면 악몽 같은 순간이 떠오를 사람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미치자 미안해서 홀로 낯 뜨겁다.

3개월 만에 퀼트 모임에 다녀왔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한동안 참석을 미뤘더니 회원들이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모든 것 잊고 분당을 다녀왔다. 확실히 혼자 있는 것보다 같은 취미로 마음이 이어진 사람들과의 대화는 좋다.

전시회 준비 이야기도 있지만 이번엔 빠지기로 다.

다른 회원들의 준비가 잘 되기를 염원해 본다.

밤의 해바라기

밤이 되어 오랜만에 탄천길로 향한다.

쉬는 날, 낮엔 더워서 그 좋아하던 산책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밀린 일을 하다가 날이 저물기 일쑤였다.

밤에도 사람들은 산책을 나와 탄천길을 걷는다. 반려견과 걷는 사람들, 가족과 걷기도 하고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도 꽤 있다.

오랜만에 나오니 풀벌레들이 반기는 것 같다.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오는 걸까? 누군가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다고 하던데 각양각색의 풀벌레들 향연이 다채롭다.

차소리 없이 온전한 풀벌레 소리였으면 하지만...

역시 밖에 나오길 잘한 것 같다.

가로등 불빛에  젖은 나뭇잎들이 반짝이는 것도 예쁘다.

누군가의 부지런한 손길로 키 큰 해바라기 꽃이 가지런히 서 있고 그 옆엔 키 작은 봉선화가 꽃을 잔뜩 달고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모든 것이 고마운 마음이 든다.

꽃들은 계절마다 피고 지며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니 말이다.

길 위엔 작은 벌레들이 빠르게 움직여 몸을 감추려 하는데, 방아깨비 한 마리 미동도 하지 않는다.

 뒷다리 하나뿐인 방아깨비와 괜찮은 방아깨비

어?

다리가 하나 없다.

그래서 망설이는 것일까?

어떡하나? 도움을 줄 수 없어서 안타까워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수풀 속으로 어서 돌아가기만 바랄 뿐이다

몇 걸음 더 걷다 또 만난 방아깨비 한 마리.

이 녀석은 뒷다리가 온전하다. 다행이다.

멀리 물길을 바라보려 발돋움을 하는데 고라니 한 마리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휙 돌아서 달려간다. 그 곁에 있던 고라니 고개를 들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서서히 발길을 돌려 친구를 따라간다.

'미안하다. 너희들이 있는 줄 몰랐어.'

어서어서 풀속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울린다.

방아깨비 환자가 있다는 것을 눈치라도 챈 것일까?

'여름 한철 살아내는 것도 이리 힘들어서야 어쩌냐 방아깨비야.'

방아깨비 다리도 도마뱀 꼬리가 새로 나듯 그렇게 새로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깐이지만 밤의 탄천길을 걷고 돌아오니 몸과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듯하다.

워낙 더운 여름을 힘들어하는 체질인데 올해는 너무 더워서 숨만 쉬고 사는 것 같다.

얼른 가을이 찾아와 더위가 달아났으면 좋겠다.

브런치에서 글 올리라는 알림이 오기 전에 글도 쓰고 활발한 활동이 아니더라도 나다운 삶을 살고 싶다.

계절의 변화를 먼저 느낄 수 있는 자연 속에 스며들고 싶기도 하다. 철새들의 무리도 관찰하며 그들의 속내도 읽고 싶다.

무더운 이 여름이 어서 가고 나의 계절인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는 아이 같은 생각을 하며 '참 철없다.' 슬며시 여름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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