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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Oct 04. 2023

송리단 길을 딸과 함께

추석 전에 들린 막내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다녀와야지요?"

"응, 아마도 1일이나 2일에 휴무될 것 같으니 그때 가자."

예상대로 5일 동안 근무를 하고 휴일을 맞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삼송으로 출발하면서 막내에게 연락을 한다.

삼송역에서 만나 막내의 차에 오른다. 며칠 전에 만났지만 여전히 반가운 딸.

출발한 지 몇 분 되지 않아 벽제 승화원에 도착한다.  엄마아버지 추모관에 드를 때마다 불효만 저지른 딸이기에 마음은 울적하다. 그저 좋은 곳에서 아무 걱정 마시고 마음 편히 계시라면서 속으로 웅얼거리다 나온다.

추모관 앞의 고양이.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간다.

딸은 엄마의 기분을 살펴

"어디 분위기 좋은 데 가서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갈까요?" 한다.

"아니, 집에 가서 마시자." 일찍 문을 열은 카페도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주변은 조금 삭막하다.

일찍 서두른 때문인지 도로는 한산하다. 네비를 검색하더니 딸은

"엄마, 44분 밖에 안 걸리네요. 금방 가겠는데요."

지난번엔 올림픽도로가 꽉 막혔다면서 역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지하철을 이용해 다녀 가면서, 챙겨주는 물건들을 두고 갔기에 집으로 향한다.

역시 닷새를 근무하고 나니 피곤한 데다가 수작업을 해야 하는 일이 있어 새벽까지 잠을 못 잔 난 정신이 몽롱했다. 어떻게 경기도까지 다녀왔는지 아득하다. 다른 때 같으면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브런치의 글들을 읽는데 눈이 피곤해서 비몽사몽 눈을 감고 목적지까지 버티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커피머신의 스위치를 켜고 커피를 내린다.

딸은 막내답게 여전히 맑은 목소리로 내 귀를 따당따당 울려 가며 조잘댄다. 역시 막내딸이지.

어른이지만 현실 감각이 막내보다도 미숙한 엄마를 늘 깨우쳐주는 딸이 고맙다.

"우리 뭐 먹을까? 신선한 야채가 없어서 그렇네~"

"엄마, 석촌역 근처에 송리단 길에 양갈비 잘하는 집이 있대요."

"뭐라고? 여기 송리단 길이 있어? 이쪽에 살아도 송리단 길을 처음 듣네."

"네, 우리 좀 걸어요. 골목이라 주차가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 날도 좋은데 걷는 거 좋지."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영업을 한다는 식당의 말대로 양갈비집을 찾아갔으나 문이 닫혀 있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 표시된 오픈 시간인데 인기척도 없다. 목표한 식당으로 가기 전에 엿본 식당은 12시 오픈이라며 준비 중이라는 안내를 해 놓았다.

"여기서 먹고, 다음기회에 저기서 먹자. 이곳도 괜찮아 보인다." 딸은 벌써 인터넷으로 식당의 메뉴를 사진으로 보여주며 시그니처와 내가 먹고 싶어 하는 메뉴를 정한다. 처음에 정하고 온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아 다른 식당 앞에서 서 있게 해서 미안해하는 딸에게

"이런 것도 좋네, 날도 화창하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좋은 기회잖아~^^"

늘 바쁘게 지내는 우리들은 잠시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 다반사. 이번엔 휴일이 길어 딸이 두 번이나 먼 길을 왔다. 골목길 식당 앞에서 오픈하기를 기다리며 얘기 나누는 일도 흔치 않은 일이라 즐겁다.

스파이시 로제 파스타, 리코타 치즈 샐러드, 토마호크 포크 커틀렛이 크다고 손을 펼쳐 본 딸.

식당 내부는 엔틱 분위기였고 음식은 리코타 치즈 샐러드까지 주문을 하니, 주문받던 분이 오히려 많아서 다 먹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괜찮다면서 딸은

"천천히 많이 드셔야 해요.".

맛집이었는지 예약 손님들과 함께 꽤 들어찬다.

오랜만에 천천히 오래오래 딸과 식사를 하는 시간이 좋다. 결국 주먹밥도 남기고 양배추 샐러드는 못 먹었다. 딸은 오픈 전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디저트 카페까지 다 알아 놓고, 그쪽으로 가자고 한다. 햇살은 눈이 부시면서 따사롭다. 오늘은 서늘한 바람까지도 내 마음에 쏙 든다. 디저트 카페로 가는 길 공원의 산딸나무는 자잘한 빨간 열매가 다닥다닥 열렸는데 아마도 기후 위기에 그들도 위기를 느꼈을까? 열매가 엄청났다. 길 위에는 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다.

산딸나무 열매.

길 위에 어진 열매를 보더니 이 묻는다.

'엄마, 얘는 뭐가 이렇게 우툴두툴 징그럽게 생겼어요?"

"ㅎㅎㅎ~ 아, 산딸나무라고 나무에 열린 열매가 딸기랑 닮았다고 그렇게 부른대. ㅋㅋㅋ.."

봄에 핀 산딸나무꽃은 참 예쁜데  빨간 열매는 비호감으로 길 위에 뒹굴고 있어 안타깝다.

그래도 사진 몇 장 취하고 그곳을 지나 마치 웨딩 샵 같은 느낌의 어느 건물 앞에 다다른다.

"엄마, 여기에요."

"아니, 처음 오는 동네에서 길도 잘 찾네."

"계속 지도 보고 걸었어요."

이곳도 핫플레이스인지 손님이 밀려든다.

실내의 좌석은 몇 개 되지 않고 테라스와 이층에 좌석이 있다. 무릎이 안 좋은 엄마를 위해 딸은 위로 올라가지 않고 커피 주문을 하고 와인 잔에 담긴 예쁜 케이크를 가져온다.

(딸이 있으니 이런 곳도 다 오네. 혼자서는 오로지 탄천이나 석촌호수 산책 밖에 모르는데 딸과 함께 하는 시간은 신세계를 경험하는 것 같다.)

딸기가 얹힌 순백의 크림케이크는 달아도 너무 달아서 한 스푼 떠먹고 커피로 입가심을 하고는 더 이상 못 먹는다. 비싼 케이크 돈이 아까운데 딸은

"사진 값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매일 하는 일이 아니니까. 오늘 같은 날 기분 내보는 거죠, 엄마랑~"

그저 고맙지요. 근검절약이 몸에 밴 딸이란 것을 아는데 엄마와 나가면 돈을 좀 쓴다. 미안하게시리...

또 딸은 엄마가 너무 느슨해지고 다른 생각할까 봐 베스트셀러도 내고, 가끔 주문이 들어오는 스마트스토어도 키워서 딸한테 물려줄 생각을 하라고 한다.

"목표를 세워요. 다른 생각 말고!"

늘 능력 부족이란 생각과 굳어진 머릿속에서 향기 나는 글이 나오지 않음을 잘 안다. 역부족이라는 것을 실감하기에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이다. 욕심부리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 꽤 된 것 같다. 이젠 읽고 싶을 때 읽고 쓰고 싶어 질 때 쓰기로 했다는 것은 실력이 안됨을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기에 참을성 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높고 푸른 전형적인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가 소중한 추억이 되겠지. 귀한 시간을 내어 나와 함께 해주는 딸이 내게 하는 말은 가끔은  뼈를 때리기도 한다.

"엄만, 엄마의 힘을 다 소진하면서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았어요? 도망도 안 가고, 이혼도 안 하고?"

갑자기 뜬금포를 날리는 딸.

힘든 일을 겪고 혼자 고군분투하는 엄마가 안쓰러웠나 보다.

"그냥 다 그렇게 사는 건가 보다. 어머니 세대도 그렇게 사셨고 숙명처럼 받아들인 거겠지. 또 너희들도 있고. 직업도 없으니 그냥 참고 사는 수밖에"

"맞아, ㅇㅇ엄마도 ㅇㅇ아빠가 두 집 살림 한 거 알면서도 이혼하면 살길이 막막하다고 그냥 살았잖아요."

"그리고 엄만 이혼을 한 번도 생각 안 했어. 내 책임인데 너희들을 잘 키워야 했고."

"하긴, 예전에 힘들면 부모에게로 오라고 교육을 안 시켰죠?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으니까. 뼈를 묻어야 한다면서 옛날에는. 그런데 의외로 아기 키우기 힘들다고 비전이 없다며 도망간 사람도 많더라고요."

"그런가?."

"우리가 아는 가까운 ㅇㅇ엄마도 도망갔잖아요."

"아, 그렇네. 맞아. 생각해 보니 친척 중에도 애 엄마가 도망가서 혼자 키워 시집도 보내더라. 그런 사람 있었어."

퀼팅 가방의 핸들링을 담수진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서너개 만든다고 새벽까지 잠을 못 잠.

어릴 적 시선이 아닌 나이가 들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엄마와 아빠가 살아왔던 것을 떠올리며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새 딸은.

결혼과 함께 나는 아이 키우고 집안 살림만 잘하면 된다고 시어른들과 남편이 꼼짝을 못 하게 했다.

"지금은 교육부지만 우리가 학교 다닐 적엔 문교부였는데 문교부 발행 중학교 미술준교사 자격증도 있었는데 말이야. 공예 전공했기 때문에 그런 걸 준 것 같아. 어른들도 말리니까 밖에 나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어. 그래서 숨 죽이고 살은 거지."

"암튼 자기가 통제하기 좋잖아.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게 한 거지. 완전 소시오패스야."

"그러다 세상에 내던져지니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고 맨날 그렇네, "

"그래도 엄마 잘하고 있는 거야. 그때 보다도 훨씬 많이 알고 나아졌잖아. 그러니까 엄만 자신에게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말해줘요. 엄만 정말 잘하고 있는 거니까. 알았죠?"

누가 이렇듯 엄말 위로하고 잘하고 있다며 용기를 북돋워 줄까?

곰살맞게 엄마 취향 알아서 밥 사주고 카페 데려가고 사진도 찍어 주며 글감을 제공할까?

엄마의 성장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라는 딸의 마음.

채찍질해 주는 막내딸을 위해서라도 게으름은 가을바람에 날려 보내고 부지런을 좀 떨어야겠다.


*이 가을 작가님들 모두모두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만 가득하세요~

*사진; 양유정, 안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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