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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Sep 22. 2023

낙지를 품은 부추전

김치를 담겠다고 알배기 배추 세 통을 집어 들었다.

다른 부재료는 집에 있으니 계산하려는데 마트 사장님 부추 한 단을 건네며

"부추도 넣어야지요."

"양이 많아 남으면 처치 곤란이라서..."

"남으면 부추김치도 담고, 부추전도 하고~^^" 하면서

"그냥 가져가세요."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지만 이미 비닐봉지에 들어간다. 부추 넣으면 깊은 맛이 나지만 김치가 지저분해 보여 배추김치에 넣는 걸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하율이 엄마가 부추김치를 좋아해  겨울 같으면 파김치랑 몇 가지 담가서 보내련만..

김치에 조금 넣어 모양만 내고 남은 부추를 전부 썰었다. 옛날처럼  반죽할 큰 그릇도 없으면서 썰고 나니 양이 너무 많아 대책이 안 선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돌릴만한 맛의 부추전은 자신이 없어 공짜로 받았다고 부추전 만들어 마트 사장님에게 갖다 주지도 못하겠다.

20년 넘게 제사삿상, 차례상을 차리면서 한광주리씩 부쳐대던  부추전.

벌써 수년간 전을 만들지 않아 낯설다.

반쯤 덜어 내어 부추김치로 대체한다. 마침 김치 담고 남은 고춧가루 양념에 부추를 버무려 부추김치 완성.

다음은 부추전 재료를 반죽할 차례인데 해물이라도 넣어야 부추전 풍미가 있을 것 같아 마트로 향한다.

오징어를 찾았으나 낙지 밖에 없단다. 낙지가 비싸 많이도 못 넣겠다. 두 마리만 들고 와 손질해서 탕탕탕 썰어 미리 준비해 놓은 당근, 양파, 깻잎에 넣고 반죽을 한다.

그런데.... 하, 너무 오랜만에 지짐을 반죽하는 손은 그 사이에 잊어버렸는지 반죽이 어설프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사다 놓고 봉지 그대로 있는 우리밀 밀가루를 넣어 반죽을 해서 달군 프라이팬에 조금 떠서 한 개를 부쳐본다. 밀가루 양이 부족한지 재료들이 제각각 떨어진다. 예전처럼 수월하게 반죽이 만들어지지 않아

밀가루 조금 더, 찹쌀가루를 조금 보태서 반죽을 뒤적인다.

다시 국자로 떠서 프라이팬에 부어 살살 펴보니 이제 된 것 같다. 휴우~

싱겁게 되었지만 원래 싱겁게 먹으니 그냥 하자. 노릇하게 구워진 것을 떼어먹어 보니 부침개 맛이 난다.

밀가루 음식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몇 장 되지 않아도 언제 다 먹어? 먹다가 남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누굴 줘야 하는지부터 생각하게 된다.

작은 접시만 하게 다섯 장을 굽고. 남은 반죽은  팬 크기만 하게 구워낸다.

한 장은 나눠서 간식으로 , 나머지는 포장해서 냉동실에 넣는다.

막내가 다니러 오면 꺼내서 함께 먹어 볼까나?

작은 것 다섯 개는 식힌 뒤에 포장해서 평소 진심으로 대하는 회사 동생에게 갖다 준다.

"오랜만에 부추전을 만들어 봤다. 방아잎도 없고, 청양고추도 없이 대충 만들었더니 니맛도 내 맛도 아니더라. 남이 해주면 뭐든 맛있다 하니 그 맛으로 먹어봐."라는 메모와 함께 사무실 냉장고에 넣어 둔다.

그리고는 문자를 보낸다. 봉지 하나 잘 챙겨 가라고.

이튿날

"언니, 맛있던데요? 오징어도 들어 있고."

"오징어 아니고 낙지 넣었어, 오징어 사러 갔는데 오징어는 없고 낙지가 있더라. 그래서 낙지 품은 부추전이야~^^ "

"언니 낙지였어? 그래서 내가 오늘 안 피곤 한가 보네?"

"야아! 하하하하하하!"

씩 웃으며 한술 더 떠 리액션하는 동생 덕분에 유쾌하게 웃으니 그야말로 하루의 피로가 달아났다.


음식은 함께 먹어 줄 이가 있어야 만드는 재미도 있고 맛있게 만들 궁리를 하게 된다.

함께 할 가족이 있을 때는 맛을 봐주며 맛있다, 짜다, 싱겁다 같은 기본적인 말만 해줘도 그저 즐거워 음식 만드는 손이 춤을 추듯 움직였다. 이제는 점점 조리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쌈채소 위주로 여름을 보내고, 또 샐러드 같은 간편식만 만들게 되고 간단하게 차려 먹는 데에 익숙해져 간다.

김치를 담근다고 하면 친구도 회사 동생들도 사 먹지 왜 김치를 담그냐고 한다.

어떤 김치가 맛이 있더라며 브랜드를 알려주고 그것으로 여름을 나고 있다고 하던 친구의 말이 떠올라 검색을 해보았지만 혼자 먹기엔 양도 많고, 입맛에 맞을지도 의문이라서 수수한 입맛에 맞는 적절한 양의 김치를 만들어 먹는다. 가끔 국물김치도 담가 먹고, 맛김치도 담근다.

오랜만에 부추전을 구워 혼자 맛을 보면서 이왕이면 재료도 골고루 넣어 제대로 만들 걸 하고 생각해 본다.

다음엔 제대로 한번 만들어 이것저것 챙겨주는 친구에게 들고 가 맛을 보여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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