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생활

by 안신영

호야가 하늘로 간 뒤에 난 매일 맞는 아침을 어떻게 보낼지 몰라 허둥대고 있음을 느꼈다.


자다가 몇 번씩 깨서 호야를 바라보고 화장실 데려가고, 물 먹이고 다시 눕히고 하는 일을 반년 넘게 지속하다 보니 호야가 없다한들 단숨에 자고 일어나는 일도 여전히 없다. 아무리 늦게 자도 서너 번씩 눈을 떠서 두리번거리다 잠을 자는 통에 얼른 날이 밝아 아침이 되었으면 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간절한 바람은 베개에 머리가 닿으면 잠이 들고일어나고 싶은 이른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인데...


처음 며칠은 집안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일거리를 만들어 외출을 하기도 하고 김칫거리를 잔뜩 사다가 손질해서 하루 종일 김치를 담기도 했다. 배추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파김치, 부추김치를 차례로 담갔다. 알배추로 맛김치를 담고 얼갈이와 열무로 국물김치를 애들이 좋아하는 파김치를 양념에 버무리고 부추를 한 소쿠리 다듬어서 양념에 치댔다. 애들이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니 즐거운 일인 것은 분명한데 기운도 없고 흥이 나지 않고 뭔가 허전하다.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 몰라 허둥대던 나는 야채 가게도 한 번에 다녀오지 않고 두 번에 나눠 장을 봐 오면서 하루 종일 부지런을 떨었다.


주방에서 딸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다가도 나는 몇 번씩 뒤를 돌아보며 호야를 걱정하는 나를 본다. 나이 들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 호야는 주로 잠을 잤다. 연세든 어른들이 잠을 많이 주무시는 것처럼 우리 호야도 잠을 많이 잤다. 잠을 자다가 조그만 소리에도 눈을 번쩍 뜨고 살피던 아이라서 일을 하다가 예상치 못한 그릇 부딪는 소리라도 나면 호야 잠을 깨우는가 싶어 호야를 바라보던 몸짓이 습관이 된 것인가 보다.


그리고는 미장원에 가서 펌도 했다.


막내가 서울에서 내려와 우리를 위로해주고 마침 아프기 시작한 손을 치료하기 위해 날 한의원에 데려갔다. 지속적으로 사용하던 손이 긴장이 풀려 팔꿈치가 당기고 손목 등 여기저기 통증이 시작된 것이었다. 한 동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기분 전환 겸 딸은 날 서울로 데려갔다.


서울에 가서도 만나는 친구들이 대부분 호야를 알고 있는 친구들이라 호야 얘기를 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고...


어쨌든 우리에게 큰 사랑을 주고 행복을 준 호야를 잊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굳이 잊을 필요도 없으며 행복했던 순간만 떠올리고 싶으나 마지막 날 힘들어했던 호야가 자꾸만 생각이나 마음이 저려왔다.


며칠 뒤 부산으로 내려온 나는 손이 계속 아파서 한의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으며 지냈다.


동인 모임이 있어서 나갔다가 호야 안부를 묻는 이들에게 호야 얘기를 하고 또 위로를 받았다.


그 모임에 가기 위해서는 딸내미가 휴가를 내고 호야를 맡아 봐주어야 내가 하루 외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모임에서는 호야가 중요한 인물이었다.


반려견과 지내면서 가족처럼, 그러니까 사람에게 대하듯 말을 하고 보살핀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이도 있다. 우리 모임에도 동물이란 그냥 동물이라는 것. 나의 행동을 전부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예전부터 수필에 반려견 이야기를 몇 번 썼기 때문에 그 동인은 나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애쓰지 않아도 되는데.


이제 많은 시간이 선물로 주어진 기분이 들어 그냥 보낼 수는 없고 뭔가 해야 할 것 같아 일자리를 알아보려 했으나 적지 않은 나이가 걸림돌이 되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여 고용지원센터에서 국비 지원을 받아 공부를 하기로 했다. 처음엔 요리를 배워 자격증을 취득해서 나중에 취업도 할 수 있으면 취업을 하리라는 생각을 갖고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만들기도 잘한다는 자부심이 있기에 망설이지도 않고 조리사 자격증을 위해 요리학원을 알아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 취업을 하면 일반 식당에 취업하는 것보다는 괜찮지 않을까?


그런데 모임의 맏언니가 반대를 하셨다. 체력도 안될 것 같고 고생이 된다면서 좀 더 지적인 일을 하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사실 평생을 해 온 음식인데 무엇이 힘이 들까? 하지만 한정식이란 것이 손이 워낙 많이 가는 일이란 것을 잘 아는 나 자신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손이 아프다고, 무릎이 안 좋다며 침을 맞으러 다니는 형편에 중노동을 할 수 있으려나 은근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제는 요리학원에도 가보고 디자인 학원에도 가 보았다.


평소에 옷 만드는 일도 좋아하고 아이들 어렸을 때 미싱을 사서 옷 만드는 일도 잠시 배운 적이 있어서 디자인 학원에 가보니 패턴 실무 코스도 있어서 마음이 쏠렸다. 요리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지만 물에 손을 넣지 않는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솔깃하다. 몇 주전에 여성복 만드는 책을 두 권씩이나 사놓고서 왜 요리를 할 생각만 했을까? 옷 만드는 일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월요일에 고용센터에 가서 다시 상담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애들도 음식도 맛있게 만들면서 왜 힘든 일을 하려고 하시나 했다면서 패턴 쪽으로 하기를 원했다.


화요일, 수요일 이틀을 몸살로 심하게 앓고 나서 목요일 모임을 하고, 어제는 한의원에서 무릎 치료를 받고 학원 두 군데를 다니며 알아보느라 피곤했다. 오늘도 치료받고 나서 사고 싶은 책이 있어 교보 문고에 들려 책을 찾는 일도 힘이 들어 필자와 제목을 알려 주고 직원에게 부탁을 해서 책을 찾았다.


나태주 님의 "죽기 전에 詩 한 편 쓰고 싶다"


책을 들고 돌아오며 다른 때 같으면 버스 안에서 내용이 궁금해서 책을 펼쳐 보았을 텐데 무릎에 올려놓은 채로 그대로 멍 때리며 돌아와서는 몇 시간 동안 죽은 듯이 잠을 잤다.


아직 회복이 안된 모양이네.


나이는 속일 수가 없나 봐.


몸 따로 마음 따로 노는가 보다.


국비지원으로 배움도 있고 자격증 취득하고 나면 취업의 길도 열리는데 난 왜 이런 정보도 모른 채 여태 살아왔을까? 일주일에 한 번씩 4주간 상담을 받는 동안에 심리검사, 적성검사를 하고 배움 동영상을 다 보고 확인증도 출력해서 제출하는 일이 있어서 집에서 고용센터까지 4 정거장 정도라서 운동 겸 걸어서 다녔더니 몸에 무리가 왔는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호야랑 산책하던 오랜 습관이 지금도 호야랑 함께 산책을 하는 것처럼 하고 있다.


처음 며칠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공원을 돌았다.


호야가 없는 집안에서 있을 수가 없어 문을 박차고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그 녀석이 얼마나 우리를 힘들게 했었는지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안타까웠던 순간이 더 많아한 쪽 가슴이 아파 올 때가 많다 아직도.


호야랑 이 동네 구석구석 안 다닌 곳이 없이 다녀서 여길 가도 호야,


저길 가도 호야가 생각나서 나는 반갑게 호야랑 매일 얘기한다. 그때는 어땠었지. 그랬었지를.


아침에 호야가 있는 느티나무 아래서 아침 인사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저녁에도 들려 하루를 마감하는데 오늘은 가지 못했네.


내일 아침 일찍 올라가야지.


호야! 오늘도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았지?


즐겁고 행복했지? 매일 그렇게 보내야 해! (201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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