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달(月)이 바뀌면 딸은 언제나 휴무가 언제냐고 물어 온다. 근무표는 항상 말일에 발표하기도 하지만 주말과 공휴일, 달력에 빨간색으로 된 날짜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딸이 조금 여유로운 날을 맞춰 고맙게도 나를 만나러 온다. 유독 막내가 오는 날이 기다려졌던 것은 독일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해외출장으로 몸이 고단하지는 않았는지, 원하는 만큼 바이어들을 많이 만났는지가 제일 궁금했기 때문이다.
바이어도 많고 오더도 많이 받아야 딸이 고생을 덜할 텐데 말이다. 하지만 20년도 넘은 그때 우린 한국으로 오는 길에 경유하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기쁨보다는 초조한 마음으로 시간을 죽였던 일이 떠올라 딸이 괜찮았는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엄마, 삼전역 근처에도 맛집이 있는데 거기 한번 가볼까? 송리단으로 가도 좋고요."
"가까운 데로 가자. 새벽 4시까지 잠을 못 잤어."
"감기예요? 목소리가 안 좋네."
"아냐, 모기 한 마리 때문에 잠을 못 자서 그래."
모기란 놈은 자려고 누우면 앵하고 나타나고 일어나 불을 켜고 살펴보면 어디로 숨었는지 안 보이고...
그 조그만 것이 얼굴을 스칠 때 날개로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느껴져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여름 내 안 물렸는데 요 며칠 물려서 빨긋빨긋 점점이 무늬졌다. 워낙 늦게 잠자리에 눕는데 모기와 숨바꼭질하느라 새벽까지 천정과 벽을 훑고 옆방에도 가보고 결국은 찾아서 전기모기채로 잡고서야 잠이 들었다.
로봇이 서빙.
"엄마, 잘 드시는 우렁된장 쌈밥집 가도 되고 파스타랑 샐러드 드셔도 되고요."
"너는? 너도 좋아하는 걸로 하자. 요즘은 야채가 많이 고프다."
"그럼 파스타 집으로 가요. 나도 오빠 때문에 가려 먹기 때문에 오빠 없을 때 먹고 싶은 거 먹어야지."
사위는 건강 때문에 의사가 칼로리 식단 처방을 해줬기 때문에 딸도 덩달아 함께 먹는 바람에 살이 너무 빠져서 걱정이다. 빠지라는 사위의 살은 안 빠져서 고민이고.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꽤 들어오는 것을 보니 맛집인가 보다. 울 딸은 이 동네에 사는 나보다 맛집을 더 잘 찾는 것 같다. 확실히 젊어서 검색을 엄청 잘하는가 보다. 그러고 보면 난 식당 검색을 한 번도 안 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아마도 딸들이 다 해주고 이제는 내가 특별히 누군가를 대접할 일이 없어서인 것 같다. 그만큼 살아가는 일이 단순해졌기 때문이겠지.
새로 먹어보는 파스타와 피자, 샐러드와 사이드 메뉴까지 둘이 먹기엔 많아 보여 걱정을 하니 남으면 포장해서 갖고 가면 된다며 웃는다. 그러면서 독일 출장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프랑크푸르트에서 5일 동안 전시를 했는데
"엄마, 프랑크푸르트는 이번에도 삭막했어요. 사람들이 얘기하던데 원래 그 도시가 삭막하대요. 그때 우리 엄청 삭막하다고 느꼈잖아요."
그때라면 막내를 그리스에서 5년 만에 데려 오면서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게 되었는데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환승이 9시간 뒤여서 공항에서 9시간을 지낼 수가 없어서 공항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가 거리를 거닐어도 보고 백화점에도 둘러보고 했다. 백화점 화장실에 가서 놀랐던 것은 입구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1달러식 받고 화장실을 사용하게끔 해서 놀랐다. 그런데
""엄마, 저것 좀 보세요. 어휴." 딸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 는 헉! 거리의 담장마다 뾰족한 못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있었다. 갸우뚱하며 왜?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엄마, 아무래도 비둘기가 앉지 못하도록 한 것 같아요."
답장위에 못을 거꾸로 박아 놓아 새들이 앉을 수 없도록 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마다 비둘기들이 많아 여기저기 담장 위에 앉을 수 있을 텐데 뾰족한 못이 위로 솟아 있어 절대로 앉아서 쉴 수는 없을 것이었다.
역시 독일답다 하면서 씁쓸해했던 기억이 그 도시가 삭막했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또한 그리스에서 나쁜 사람들이 내 딸을 잡고 놓아주지 않아 의도치 않게 불법 체류로 5년 동안 마음고생을 하고 임시 여권으로 돌아오던 길이라서 우리의 마음은 자유로울 수가 없었고 한국땅을 밟기 전까지는 회색구름이 드리워진 마음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제는 떳떳하게 자신의 사업으로 출장을 가서 며칠씩 지내다 오는 딸로 성정하고 일정을 잘 마치고 돌아와 밝은 얼굴로 얘기하는 모습만 보아도 대견하기 그지없다.
졸업반 대학생 인턴 두 명을 데리고 일을 하고 무사히 돌아왔으니그것도 참 자랑스럽다. 어느새 이렇게 컸나.
가기 전에 날씨도 알아보고 한국처처엄 무더운 날씨는 아니어도 30도 넘는 날씨라는 말에 얇은 점퍼 한 개만 여벌로 넣어 갔는데 도착 이튿날 비가 오고 기온은 10도 안팎으로 떨어져 온몸이 완전 덜덜 떨리는 상황이 되었단다. 마침 아는 브랜드 매장이 있어서 다운 점퍼를 사 입었는데 전시장에 나온 인턴들이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오들오들 떨고 있어서 감기라도 들면 큰일이다 싶어 매장으로 갔으나 갑자기 추워져 점퍼는 이미 동이 나고 없어서 옆의 백화점에 가서 한 벌씩 입으라며 두벌을 사다 주고 따듯하게 지내게 했다는 말에 울 딸이 역시 사업하는 사람 맞다는 생각이 든다. 괜찮다며 거절하는 학생들이 자신을 믿고 외국에까지 왔는데 병이라도 나면 큰일이라고 생각되어 옷을 사다 입혔으니 참 잘했다고 말해 줬다. 괜찮다고 하는 것은 남이 옷을 사주면서 비용이 드니까 당연히 거절했겠지.
또 찾아온 손님들과의 에피소드를 얘기하는데 너무 웃겨서 난 빠진 배꼽을 찾아 식당 바닥을 뒤져야 했는데 그건 다음번에 얘기해야겠다. 딸만큼 재미있게 얘기할 말주변은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