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1900을 다녀오다

꿈을 꾸는 예술가들~

by 안신영

최근 몇 년 동안 미술 전시와 거의 담을 쌓고 지냈던 내게

〈비엔나 1900〉 전시 소식은 반가운 설렘이었다.

주일 예배 후 공지 시간, 목사님께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를 교우들과 함께 관람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분들이 많은 공동체답게 음악, 미술, 공예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도 여럿 계셨다. 현장 예매가 쉽지 않아 여섯 명이 동시에 접속해 스물네 장의 티켓을 확보하는 과정은 작은 작전처럼 느껴졌지만, 그만큼 모두의 기대가 컸다.

관람 당일,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붐볐다. 주차장을 찾지 못해 멀리 차를 세우고 걸어오신 분들도 있었고, 입구까지 이어진 대기 줄은 전시에 대한 관심을 실감하게 했다. 19세기말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의 작품, 그중에서도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이름이 관람객을 끌어모았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클림트의 황금빛 작품들은 볼 수 없었지만,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오스트리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의미가 깊었다. 회화뿐 아니라 유리, 도자기, 가죽공예까지 아우른 전시는 ‘예술과 공예가 결합된 일상’이라는 그들의 이상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구스타프의 자주 보던' 키스'와 황금색으로 그린 여인의 초상화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볼 수 없었어도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오스트리아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뜻깊은 날이었다. 특히 유리, 도자기, 가죽공예에 이르기까지 총망라한 예술가들이 예술과 공예를 접목시켜 아름다운 일상생활을 하려 했던 꿈이 어우러진 전시회라는 생각을 했다.

*전시실 천정 위로 눈을 돌리니 에곤실레의 드로잉이 설치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 오스트리아 빈 레오폴트미술관과 협력하여 19세기말 비엔나에서 변화를 꿈꿨던 예술가들의 활동과 모더니즘으로의 전환 과정을 레오폴트미술관 소장품 총 191점으로 특별전시관으로 우리들을 불렀다.

교우들과 함께한 첫 전시 관람이라는 점도 특별했다. 늘 예배 후면 바쁘게 흩어지던 일상과 달리,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작품을 바라보며 감탄을 나누는 시간이 낯설면서도 따뜻했다. 관람 줄을 따라 이동하다 문득 학창 시절 인사동 갤러리를 돌며 과제를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이렇게 많은 인파 속에서 작품을 봐야 할 줄은 몰랐다.

드디어 쿵닥쿵닥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관람줄을 따라 어깨를 부딪치며 이동하면서 뜬금없이 학창 시절 인사동 갤러리를 돌며 작품을 감상하고, 덕수궁에 있던 미술관에서 인상파 화가 전 리포터를 써냈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는 콩나물시루 같은 인파가 아니어서 여유롭게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10년 전쯤 예술의 전당 피카소전에서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에곤 실레의 자화상 앞에서는 특히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왜 그가 끊임없이 자신을 그렸는지, 왜 그의 인물들이 불안하고 메마른 색을 띠는지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다.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예술이 얼마나 치열한 자기 고백이 될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클림트와 실레를 중심으로 한 비엔나 분리파의 움직임은 당시 보수적인 미술계에 대한 저항이자, 예술의 자유를 향한 갈망이었다. 회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생활용품과 공간까지 아름답게 만들고자 했던 그들의 시도는 도자기 작품과 유리 공예, 가구 디자인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도자의 두상, 화려한 문양의 화병, 찻잔 세트는 ‘쓰임’을 넘어 예술이 된 일상의 물건들이었다. 역시나 자신의 자화상을 많이 그린 에곤실레 자화상 앞에서 사람들은 움직일 줄 모른다.

전쟁 동안의 여건이 여성모델은 대부분 아내를 모델로 했으며 장교나 장병들이 대부분이어서 모델들은 남성이 대부분 등장한다. 1915년까지 실레의 여성 누드화는 더 풍부해졌지만 많은 것들이 생명이 없는 인형 같은 형태로 그려졌다. 그 후 그는 자연적이고 건축적인 주제들을 많이 그렸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은 괴상하고 에로틱하며 포르노적이고 불안하며 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본다. 그는 남들의 초상화뿐만 아니라 자신 자화상에도 집중하였는데 그래서 나르시시즘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에곤실레가 학생시절 그린 소녀의 초상은 정말 아름다웠다. 머리가 긴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에곤 실레. 이번 전시에서 압도적으로 전시 작품이 많았다. 클림트 작품은 몇 안됐다.
아쉬운 마음에 인터넷에서 빌려온 클림트와 그림.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비롯한 유명한 금빛그림들을 보기 위해서 온 관람객들이 대다수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이번의 전시엔 금빛 그림들이 없었고 그림값이 제일 비싸다는 클림트의 후원자 '아델레 블로 후 바우어의 초상화'도 오지 않아 그림의 떡이었다. '키스'는 빈을 떠난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 10여 년 전 부산에서 클림트와 에곤실레 전의 전시회에서 본 클림트의 그림들은 복사였단 말인가?

고양이를 무척 좋아해서 작업실에서 고양이를 안고 있는 클림트.

구스타프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화가이자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스타일의 대표적인 작가. 작품은 주로 초상화와 누드그림, 장식적 패턴과 금색을 사용한 화가로 유명하다.

미술이 격동하던 19세기말에 영국, 프랑스 등에서 벌어진 인상파와 같은 진보된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을 접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오스트리아의 미술 경향과 미술협회의 보수성에 반발하게 된다. 이후반 아카데미즘 운동을 하면서 1897년 *분리파를 결성하고 미술의 거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에곤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를 얘기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형국이라서 예술가들이 일상생활에 예술과 공예를 접목시켜 더욱 아름다운 일상생활을 영위하려고 했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아야 할 것 같다. 도자기로 빚은 수도자의 두상은 컬러가 환상적이다. 온갖 문양을 넣은 네모난 꽃병과 여인들을 둘러 세워 만든 화병은 꽃을 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아한 꽃병인데 그냥 장식품으로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을 아름다운 작품이다. 홍차잔 세트는 방금 차를 끓여 따라 마시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예쁘다. 그릇 욕심 많은 나는 꽃병도 찻잔도 그저 탐이 날 뿐이다.

도자기를 전공했던 나로서는 특히 그릇과 화병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된다. 한때 물레를 돌리며 흙을 만지던 기억이 떠올랐다. 왜 그때는 저토록 자유롭고 아름다운 그릇을 상상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대가들의 시선이 얼마나 멀리 닿아 있었는지도 느낀다. 눈으로 실컷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감히 대가들처럼 저토록 예쁜 그릇과 꽃병을 만들 생각은 왜 못했을까?

카페문화가 발달한 비엔나. 목재로 만든 카페 의자도 만나볼 수 있었다. 유리공예와 더불어 가죽공에 작품도 있는데 가죽 가방, 가죽지갑은 지금 들고 다녀도 손색이 없을 만큼 디자인이 좋다. 역시 꿈꾸는 예술가들의 작품이라서 그런가 보다.

인파로 인해 여유로운 감상은 쉽지 않았지만, 전시를 보고 나온 뒤 도록을 다시 펼쳐보며 작품과 작가를 곱씹는 시간이 이어졌다. 전시장은 떠났지만, 감상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계속되었다.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회자되는 예술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타고난 영감뿐 아니라, 한 길을 파고들며 스스로를 단련한 끈질긴 열정이다. 비엔나 1900 전시는 그 치열한 시간의 흔적을 마주하게 한 자리였다.

선구자적인 면모도 있거니와 지치지 않는 열정과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예술활동을 한 작가들에게 감히 깊은 찬사를 보낸다.

*영상촬영 불가였는데 오리들 찍던 습관에 그만..

*분리파(Secession)); 19세기말 독일, 오스트리아 각 도시에서 일어난 회화, 건축, 공예운동. 과거의 예술양식에서 분리하여, 생활과 기능을 연결한 새로운 조형예술의 창조를 목표로 삼았다.

*아르누보; 순수 예술 (특히 회화와 조각)과 응용 예술 사이의 전통적인 구분을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시작된 운동. 미적으로 다양하고 국제적일 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디자인, 그래픽 아트, 가구, 유리 예술, 직물, 도자기, 보석 및 금속 공예 등 예술분야 전반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아방가르드; '이전 시대와 비교하여 매우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방법, 스타일, 생각'이라는 뜻. 우리나라에서는 전위예술이라고 함.

*상징주의;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나타난 예술사조이다. 미술에서 상징주의는 상징주의 시인의 영향 아래 조금 늦게 나타난 반사실 주의적인 경향을 지향했다.

** 위키백과 참조**


사진; 안신영. 도록&인터넷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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