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10주기 특별 기획전
평소 오래도록 존경하고 흠모해 온 천경자 화백의 작고 10주기 전시를 다녀왔다.
그 이름을 다시 마주하는 일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서늘해졌다. 어떤 그리움은 시간으로 희미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는 것을 그날 새삼 알았다.
공예과에 다니던 학창 시절, 나는 스케치북을 끼고 인사동 골목의 갤러리들을 순례하듯 다녔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배움이자 설렘이었고, 때로는 삶의 방향을 가늠하는 일이었다. 그 무렵, 경복궁 옆 현대화랑에서 천경자 화백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
전시를 보러 들어서는 입구에서, 화백은 화랑을 찾은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맞이하고 있었다. 그림 속 강렬한 색채와는 달리, 키가 큰 모습의 화가는 활짝 웃는 모습이 의외로 소박하고 다정해 보였다. 그 순간은 지금도 또렷하다.
징그럽고 무서운 존재로만 여겨지던 뱀을,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승화시킨 화가.
뱀이라는 소재 앞에서 나는 언제나 천경자 화백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던 뱀은 그의 손끝에서 오히려 신비롭고 고결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눈빛과 몸선에는 두려움보다도 생의 집요함과 슬픔, 그리고 묘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천경자 화백은 그림뿐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예술가였다. 여러 권의 에세이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시 떠올려 보면 그의 글과 그림은 닮아 있다. 개성은 강하지만 과장되지 않았고, 자유분방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순수함과 정, 그리고 쉽게 설명되지 않는 한(恨)이 꽃과 여인의 얼굴 속에 조용히 스며 있었다.
『내 슬픔의 22페이지』를 처음 읽던 날도 그랬다. 지금은 그 책이 집에 없지만, 이상하게도 그 표지의 색과 분위기는 아직 선명하다.
서울에 살았다면 전시를 더 자주 찾았을 것이다. 결혼 후 부산에 머물며 그의 전시를 직접 만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신문 문화란에서 화백의 소식을 접할 때면, 혼자만 아는 반가움에 잠기곤 했다. 멀리 있어도 존경은 줄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다. 천경자 화백이 베트남 종전화가로 활약했다는 점, 그리고 서울시에 대표작 500여 점과 저작권까지 기증했다는 사실이다. 예술의 크기만큼이나 마음의 자리도 넓었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그림을 남긴 화가이기도 하지만, 천경자 화백은 현대문학의 얼굴을 그려낸 화가이기도 하다. 수많은 문예지와 단행본의 표지를 그의 그림이 장식했다. 그림은 책의 첫 문장이 되었고, 독자는 그 색과 눈빛에 이끌려 책장을 넘겼을 것이다.
강추위가 몰아치던 겨울날, 그의 그림을 보러 가는 길은 이상하게도 설렘으로 가득했다. 화백이 평생 그려온 꽃과 여인들은 혹독한 추위를 단번에 녹여버렸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담아낸 색과 얼굴들, 그 안에는 삶을 끝까지 사랑하려 했던 한 예술가의 고집과 진심이 담겨 있었다.
추모의 메모를 남기는 자리에서 나는 짧게 적었다.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그녀의 에세이 제목처럼, 내 슬픔의 101페이지는 아마도 천국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림으로, 글로, 그리고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오순미작가님께서 쓰신 글을 보며 꼭 가야지 다짐하고 잊었는데 주일 예배 후 목사님께서 "인사동에서 고미술상을 운영하는 조정호집사님이 천경자화백의 그림을 서울미술관에 대여해 주고 티켓 5장을 받았습니다. 전시회 가실 분은 가위바위보로 정하겠습니다." 하셔서 제일 먼저 손을 들고 튀어 나갔다. 조정호집사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