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관람하면서 이미 알고 있는 이름들이 이어졌다.
익숙함은 편안했지만 오래 머물게 하지는 못했다. 그림은 많았고, 시선은 자주 흩어졌다.
그러다 발걸음이 멈췄다.
봄 (Springtime)
낯선 이름의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코의 그림 앞에서였다.
커다란 화면 속, 두 사람이 그네를 타고 있었다.
고대 신화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몸짓.
여인의 드레스는 공중에 풀어지고 있었고,
남자는 그녀를 감싸듯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장면은 완성된 자세가 아니라 지금 막 지나가고 있는 순간이었다.
그네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그들의 몸은 그 움직임을 따라 기울어 있었다.
나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상하게도 시선은 두 사람의 몸이 아니라 여인의 눈에서 멈췄다.
그녀는 연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빛은 단순한 사랑의 표정이 아니었다.
기쁨과 장난, 그리고 아주 미세한 긴장.
지금 이 순간이 곧 지나갈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눈.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눈동자 가장자리에 얇게 번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네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고 공기는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으며 빛은 두 사람의 몸 위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너무 가벼워서 오히려 오래 머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장면 앞에 한참 서 있었다. 그들이 행복해 보여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순간이 너무 쉽게 지나가 버릴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사랑을 기억한다고 믿지만 실은 사랑이 머물던 ‘시간’을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어떤 말, 어떤 표정보다도 그날의 공기와 빛, 몸이 기울던 방향과 속도 같은 것들.
그래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람이 아니라 그때의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지도 모른다.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그 순간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그림 속의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어쩌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나아가는 그네의 방향, 이미 지나가고 있는 시간의 방향.
그들은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네라는 시간 위에 함께 올라타 있는 상태였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들의 표정 때문도, 아름다운 색감 때문도 아니었다.
그들이 지나가고 있는 그 순간, 그리고 그것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봄은 늘 돌아온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겪는 봄은 언제나 한 번뿐이다.
같은 계절은 다시 와도 같은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가장 선명하게 남는 것은 붙잡았던 순간이 아니라 붙잡지 못했던 순간들이다.
그림 속의 그네는 계속 흔들리고 있었고 나는 그 흔들림을 마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치 이미 지나가 버린 어떤 시간을 뒤늦게 따라가고 있는 사람처럼.
*photo by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