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향나무 향기에 젖어

by 안신영

천 개의 향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숲 입구에 서자 가장 먼저 향이 다가온다.

어릴 적, 향나무 연필을 깎을 때 맡았던 냄새.
아버지가 깎아 주시던 연필. 그 연필깎이 속에서 피어오르던 그 향이 이곳에서 다시 살아난다. 잊고 지냈던 기억 하나가 향을 따라 슬그머니 걸어 나온다.

향나무는 그렇게 진한 향기로 연필재, 장식재, 가구재로 조각으로 우리 곁에 늘 머물렀다.

천 개의 향나무 숲은 사람을 조용히 끌어안는다.
토종 향나무와 서양향나무, 가이스카 향나무가 길을 따라 서 있고, 꽃향기가 좋은 금목서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꽃향이 좋은 금목서가 피는 계절이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잠시 마음에 머물다 사라진다.

향나무 오솔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시야가 트이며 잔디광장이 나타난다.

아이들처럼 신발을 벗고 뛰어놀고 싶은 충동이 스친다. 아이들이나 반려견과 함께라면
아무 걱정 없이 몸을 던져도 좋을 만큼 푹신한 잔디다.

느린 걸음으로 다시 길을 잇는다.
툭툭 나타나는 동물 조각상들이 걷는 재미를 보탠다.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게 되고,
그 사이 숨도 마음도 한 박자 늦춰진다.

지혜의 정원에는 다양한 표정의 부엉이 조각상들이 모여 있다.
서로 소곤대는 듯한 모습에 괜히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가을이라 꽃은 드물지만 푸르른 향나무들이 대신 향을 건넨다.
솔솔 스며드는 나무 향기에 몸 전체가 숲에 잠긴 듯한 착각이 든다.

구석구석, 혼자 앉아 사색하기 좋은 의자들이 놓여 있다.
푹신한 방석이 얹힌 자리도 보인다. 걷다 쉬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벤치도 곳곳에 있다.

‘느리게 생각하고, 느리게 걸으며 마음의 휴식을 찾아보세요.’

숲의 슬로건은 과장이 아니다.
정성의 손길로 가꿔진 나무들이 긴 시간을 품은 채 조용히 지친 사람들을 맞아준다.

이곳에서는 무언가를 더 하려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저 향을 맡으며 걷기만 해도
마음이 먼저 쉬어 가는 곳, 살아 있는 천 개의 향기 숲이다.

*천 개의 향나무 숲은 구례에 있습니다. 개인 운영시설이며 카페에 차와 도서를 판매하더군요. 2층에 숙박 시설도 있고요. 어린이와 반려견도 동반 입장 가능합니다.

*사진; 노향숙, 박정아, 안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