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채수아 작가님의'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읽고

by 안신영

채수아 작가님의 에세이집 서평단을 선착순으로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왔을 때, 나는 일곱 번째 댓글을 쓰다가 멈췄다. 잘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였다. 이 책을 가볍게 다루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나 자신을 믿을 수도 없었다. 결국 서평단 신청을 접고, 나중에 서점에 가서 사서 읽은 뒤 천천히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며칠 전 책을 사 들고 집에 들어와서는 한동안 읽다 덮기를 반복했다. 책 보다 먼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늘 막막하다. 그런데 작가님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사랑이란 감정이 아니라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로 건너가야 할지 표시된 지도를 한 장 건네받은 기분이었다.

채수아 작가의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읽으며 오래 한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내 안에 들어온 말 한마디가 어느새 내 것이 되고, 그것이 씨앗이 되어 어디론가 훨훨 날아간다. 날아간 그곳에서 예쁜 꽃이 피어날 것이고, 또 씨앗이 생길 것이고 또 어디론가 날아가겠지. 이래서 세상은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하는 걸까? 그래서 나 귀하듯 남도 귀한 거겠지. 항상은 아니지만, 상대방이 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행복하길 가슴 저리게 빌 때가 있다. 내 소중한 인연들에게. -173p”

이 문장을 읽으며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란 결국, 나와 남을 분리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채수아 작가의 글에는 시집살이라는 공통된 삶의 배경이 있다. 그러나 그 삶을 견디는 태도는 놀라울 만큼 단단하고 너그러웠다.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며 집안일과 육아를 감당했고, 급성 백혈병이라고 생각할 만큼 백혈구 수치가 최저로 떨어지는 시련도 겪었다. 결국 사표를 내고 가족의 삶을 선택한 뒤에도 시어머님의 시집살이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장애가 있는 남편을 대신해 억척스럽게 삼 남매를 키워낸 시어머니를, 한 사람의 여인으로 깊이 이해하려 애쓰는 그 마음 앞에서 나는 여러 번 멈칫했다. 순종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태도였다.

나 역시 시집살이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통 크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서운함이 남았고, 그 감정은 앙금처럼 마음 한쪽에 고여 있다. 그 차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브런치에서도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여러 번 숨을 멈추곤 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도에 머물렀던 시간 이후, 삶의 질곡을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평안에 닿아 있는 듯한 기운이 문장 사이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님은 삶을 붙잡고 흔들기보다, 기도가 이끄는 방향으로 조용히 발을 옮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모습은 문득 테레사 수녀의 삶을 떠올리게 했다. 지금 에세이집에서도 작가님을 향한 존경심은 여전하다.

나는 기도를 하면서도 여전히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했다. 내려놓겠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은 늘 충분하지 못했다.

교사인 아버지를 보며 자란 작가님은 자연스럽게 교사의 꿈을 키웠고, 결국 교사가 되었다. 작가님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면 오래전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페스탈로치 선생님이 떠오른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결근하려던 여교사를 대신해, 교장실에서 그 아이와 함께 놀아주던 교장 선생님.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 이런 어른 밑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작가님이 교단에 섰다는 사실은 어쩐지 당연하게 느껴졌다. 비록 건강 문제로 너무 이르게 교직을 내려놓았지만, 제자들은 오랫동안 작가님을 기억했다. 시간이 흘러서도 연락을 이어가고, 만나서 추억을 나누며 그 시절을 다시 꺼내 놓았다.

선생님을 그만두었어도, 선생님으로 남아 있는 작가님이다.

작가님의 글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기보다, 내가 사람을 얼마나 쉽게 판단하며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거창한 헌신이 아니라, 끝까지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임을 작가님의 글은 보여준다. 그래서 이 글은 읽고 끝나는 글이 아니라, 관계의 순간마다 오래 불려 나올 문장이 된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의 방향을 잃을 때마다, 다시 펼쳐보게 될 글, 사랑의 방향을 일러주는 지도라는 생각이 든다.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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