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보다 사람이 좋다

by 안신영

잠깐 외출을 마치고 돌아와 휴대폰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존경하는 램즈이어 작가님의 문자와 카톡이 동시에 와 있었다.

“오늘 휴무신가요?”

어쩜 이런 절묘한 타이밍일까. 마침 휴무일인데.
통화가 이어졌고 우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램즈이어 작가님과는 브런치에서 글로 먼저 만난 사이였다. 서로의 글을 읽고 댓글과 답글을 나누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런데도 서로를 알아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가님은 브런치 글에서 내 사진을 봐서 그렇다 했지만, 저만치서 걸어오는 순간 나 역시 단번에 알아챘다.

며칠 전 작가님이 브런치에 올린 글,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전시였다.

나 역시 좋아하는 화가들이라 전시가 끝나기 전에 한 번 들러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댓글에서 마감 날짜까지 알려 주셨던 터라 이틀 연휴 중 하루를 써야지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다.

조금 늦었지만 관람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며 괜찮으면 만나자고 하셨다.

그렇게 번개처럼 우당탕 만남이 이루어졌다. 실제로 만난 작가님은 글에서 느끼던 것처럼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전시장 안에서는 르누아르, 마티스, 로뎅, 드가, 고갱, 쉬잔 발라동… 익숙한 이름의 화가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교과서나 이전 전시에서 보지 못했던 낯선 화가의 그림들도 눈에 들어왔다. 많은 관람객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그림을 보고 사진도 찍었다.

그러고 나와 보니 작가님은 체력이 방전되기도 했지만 먼저 그림을 다 보셨기 때문에 밖에서 쉬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시장 옆의 기념샾에서 하율이에게 선물할 마음으로 화보집과 중 노트를 사서 들고 나와 노트 한 권은 작가님께 드렸다. 작가님은 나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을 잡고 상설전시관으로 이끌었다.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러 3층으로 올라갔다.

먼저 관람했던 작가님의 안내 덕분에 헤매지 않고 바로 그림 앞에 설 수 있어 좋다.

그 순간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전시장 천장을 뚫고 날아갈 것 같았다.

서화 전시실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다음에 다시 오기로 마음먹는다.

사실 나는 그림보다도 작가님과 더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전시보다 잿밥에 더 마음이 가 있는 셈이다.

작가님은 짧은 시간 안에 내게 더 많은 것을 보여 주려 이곳저곳으로 데려갔다.

손녀 하율이와 함께 오면 미술 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바쁜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쉼이라는 듯 사유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국보급 미소의 반가사유상 두 점이 고요한 미소로 앉아 있었다.

그 앞에 서 있으면 잠깐이라도 깊은 생각 속으로 가라앉게 될 것 같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은 연못이 우릴 반기는 가운데 작가님은 미리 알아 놓은 거울못 식당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동안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문을 열었다면서 웃으며 스테이크 어떻냐고 한다. 평소에 저녁은 가볍게 먹는 편이라서 샐러드만 먹어도 되는데 파스타도 등장했다.
먹는 것보다 이야기가 더 많았다.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나는 지난 이야기들을 봇물 터지듯 쏟아냈다.

첫 만남인데도 주책맞게 너무 많은 말을 한 건 아닐까 뒤늦게 조금 민망해졌다.

하지만 작가님은 차분하게,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놀라울 때는 눈을 크게 뜨고 공감할 때는 흐뭇한 미소로 답해 주었다.

글 속에서는 다 전하지 못했던 삶의 이야기와 지혜까지 아낌없이 나눠 주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전시를 보러 갔던 날이었지만 오래 남은 것은 그림이 아니라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닮은 사람이었다.

*photo by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