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숙시인의 시집을 읽고
다가설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공전하는 마음, 단 5분의 겹침을 평생의 기쁨으로 간직하는 태도. 김경숙 시인의 시는 거창한 언어보다 오래 바라본 시간으로 말한다. 그녀의 시를 읽다 보면, 기다림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믿게 된다.
달이 만든 실반지
김 경 숙
수없이 맴돌아도 다가설 수 없던
당신 뜨거운 가슴에
오늘, 기어이
그림자를 안고 뛰어들었습니다.
대낮에
온 세상이 캄캄해져도
당신께 바친 실반지를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축복해 주더군요.
단 5분여
짧은 시간이
나에겐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다시 백변을 기다린다 해도
나는 당신의 품에 안겼던 추억만으로
기쁘게 살겠습니다.
400배 더 크고
400배 거리만큼 먼 당신
당신과 나와 지구의 거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이룬, 금환식
개기 일식을 보려고
캐나다 퀘벡주 작은 시골 셔브록에 왔다가 흩어져 돌아가는 인파 속에도
경이로움과 기쁨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시 사모하는 당신께 안길 날이
아득히 멀다 해도
세상의 중심인 당신만을 바라며
울컥 목메이는 그리움은 삼키고
물러섬 없이 내내 공전하겠습니다
*2024년 4월 13일
나는 김경숙 시인을 30여 년 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늘 자연 앞에 멈춰 서던 사람, 풀꽃과 눈을 맞추던 사람, 고독을 품고도 유쾌함을 잃지 않던 사람. 그런 그녀가 오래 다듬어 내놓은 시들을 읽으며,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시가 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랑 대출'
사랑을 대출합니다
........
펄럭이는 현수막 사이로
이상한 입간판이 보인다
다시 보니 "차량" 글자가 부서져
"사랑"이 되었다 - 중략
<잡초들의 항변, 낙엽, 덩굴손, 산수유 꽃, 네 잎 클로버, 감꽃.....> 전부 열거할 수 없지만 여러 편의 시들이 자연을 관찰한 따듯한 마음, 세심함에서 빚어진 주옥같은 시들이다. 감나무를 유난히 좋아한 시인, 나는 가을이면 붉은 감나무를 볼 때마다 시인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녀의 시는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서사로 독자를 끌어당기지 않는다. 대신 오래 바라보고, 천천히 스며들며, 조용히 마음을 흔든다. 풀잎 하나, 스치는 바람 한 줄기에도 시인의 시선이 머무는 순간, 그 사소함은 더 이상 사소하지 않게 된다. 그 시선이 바로 이 시집의 중심이다.
그 결은 시 「달이 만든 실반지」에서 또렷하게 드러난다.
다가설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공전하는 마음, 찰나의 겹침을 오래도록 품는 태도는 이 시집을 관통하는 정서다. 시인은 400배의 거리와 크기라는 과학적 사실을 빌려, 닿을 수 없는 사랑과 기다림을 이야기한다. 그 순간, 천문학의 언어는 사랑의 언어로 바뀌고, 우주의 간격은 마음의 거리로 겹쳐진다.
단 몇 분의 겹침이 평생의 기쁨이 되는 순간을 시인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건네준다. 그 말 없는 고백 앞에서 독자는 자신의 기다림과 그리움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여행길에서 그녀는 종종 내게 풀꽃과 나무 이름을 물어보곤 했다.
“꽃 이름은 내가 제법 아는 줄 알았는데, 신영 씨가 더 많이 아네요.”
그렇게 말하며 웃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녀는 식물을 유난히 사랑했고, 나는 식물뿐 아니라 곤충과 작은 생명들까지 눈여겨보는 편이었다. 서로의 시선이 조금씩 달랐기에, 길 위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그녀의 시에는 자연을 향한 오래된 애정과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
*사진; 안신영,
*개기일식; 인터넷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