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산재에서
마루에 앉았을 때였다.
발바닥에 닿는 온기가 먼저 마음을 풀어주었다.
반들반들하게 닦인 나뭇결 위에 몸을 얹자,
어디선가 오래된 시간이 따라와 조용히 옆에 앉았다.
나는 이미 여행자가 아니었다.
할머니 댁에 와 있는 아이처럼,
아무 경계 없이 그 집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어렸을 적 살던 기와집의 기억이
설명도 없이 스며들었다.
무엇이 달라서가 아니라,
몸이 먼저 알아보는 편안함이었다.
대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널찍한 잔디 마당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숨을 고른 듯 고요한 한옥이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마루를 기웃거리며 둘러보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 곳에 머물렀다.
꽃을 몇 송이만 남긴 동백나무,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벚나무.
화려하지 않아 더 오래 보게 되는 풍경이었다.
막 피어나려는 것과
이미 지나가고 있는 것이
한 자리에 함께 서 있었다.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사는 일은 언제나 수고를 동반하고,
고요해 보이는 삶에도
보이지 않는 손길이 쌓여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그곳에 머물며 내가 좋았던 것은
그 집에 사는 상상이 아니라,
잠시 앉아 쉬어 갈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었다.
마루는 누구에게나 등을 내어주고,
나는 그 위에 앉아
내가 지나온 시간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툭툭 가볍게 일어섰다.
photo by young &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