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은 아닐까?
떠난다는 것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희망이 아닐까?
떠난다는 것은 그리움을 가슴 한편에 심는 일은 아닐까?
맞아.
떠난다는 것은 남은 사람의 가슴에 그리움을 품게 하는 아련함이 깃드는 것이야.
언젠가는 오겠지, 하면서 보고프고 생각날 때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힘의 원천일 수도 있겠구나.
떠난다는 것은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하며 다정스레 '연락할게' 라며 떠나기도 하듯이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떠나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도 있긴 하더라만....
그대가 떠난 지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쉬이 연락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애당초 한 적이 없습니다.
"몇 개월씩 연락도 없으신 분이잖아요."
"나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
"마음 가는 데로 행동도 따른다네요."
"못됐다."
네. 저는 늘 못된 사람이지요.
반년만에 가셨으니 친구들과 매일 밤 축제를 벌이고 계실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여름에도 두어 달을 그렇게 보내고 오셨다고 하셨지요.
친구들이 매일 파티를 열어 주었다고요.
낮에는 스킨스쿠버를 하시느라 산소통을 바닷가로 옮기느라 뱃살조차 쏙 들어갔다고 하셨어요.
맞아요. 여름을 보내고 오셨을 때 수척해서 오셨는데 활기 넘치는 모습이셨죠. 좋아하는 스킨스쿠버로 해저 탐험하시고, 동창들과 즐거운 나날 보내셨으니...
지금도 그러시겠지요?
작년엔 수년만에 만나자마자 떠나셨던 프랑스행.
올 해엔 이미 몇 차례 주기적으로 다녀오시는 것을 알기에 담담하긴 하면서도 메일도 확인하고, 혹 문자메시지라도 오려나 하면서 기다립니다. '연락할게'라는 그 한 마디가 각인되어서 기다립니다. 매일... 역시이긴 하지만...
해저 탐험하시면서 상어랑 놀던 이야기, 오색 영롱한 물고기들의 자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지요.
글을 쓰지 않은 저에게 "나 같으면 매일 한 편씩 썼겠다."
"네 선생님이나 매일 쓰세요. 물고기랑 나눈 얘기, 상어를 눈앞에서 만져 본 이야기. 얼마나 많은 색다른 이야기들이 나오겠어요. 전 머릿속에 있으니 천천히 쓰지요."
일 년 전에 나눈 이야기들이 떠 오릅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공백기가 많아서 글 쓰는 일과 멀어진 삶을 영위하고 있었던 제게 도전의식을 심어준 확실한 말씀들.
지금은 해저 탐험하시려나?
지금쯤 랠리 파일럿이시기도 하니 자동차의 페달을 있는 힘 껏 밟고 계시려나? 베토벤 협주곡 7번 2악장을 크게 틀어 놓으시고 사하라 사막을 경주하시던 젊은 시절을 추억하시려나?
하루에 몇 번쯤은 그대 생각을 합니다. 시차가 있어서 제가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할 때면 그대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대로 들어갈 시간입니다. 제가 하루를 마감하고 숙면을 취하려 할 때에 그대는 한 참 친구들과 좋은 저녁 시간을 즐기고 있을 시간입니다.
언제쯤 그대의 연락이 올까요?
채근하지 않고 진득하게 기다려 볼 참입니다.
제 생각은 하고 계신지... 언젠가 하도 오랜만에 연락을 주셔서
"저를 잊지는 않으셨네요?" 했더니 "못됐다." 하셨죠?
짧은 시간에 많은 추억을 가슴에 남겨 주셨네요.
오늘도 좋아하는 음악, 그대와 듣던 음악을 혼자 들으며 음악마다 에피소드를 들려주시던 장면을 떠 올립니다. 스페인 음악을 들으면 캉캉춤을 추던 아리따운 아가씨와의 하루 저녁 로맨스, 몇 년 후 스페인에 가서 그 아가씨를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한 이야기조차도 아름답고 재밌게 들었죠. 혼자 남아 그대를 그린다는 일은 참으로 쓸쓸하면서도 행복한 일임을 깨닫습니다. 인간은 역시 추억을 먹고사는 동물인가 봅니다. 또 살아 있음에 그대를 그릴 수 있어 행복한 것입니다. 함께 했던 와인의 시간, 음악이 흐르고 촛불이 온화한 빛으로 감싸주던 공간이 홀로 있는 나를 때론 힘들게도 하지만 무엇을 해도 이 도시가 텅 빈 느낌으로 재미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이 곳에 계셔도 자주 소식 주는 것은 아니었지요. 다만 시공간적으로 멀어졌다는 사실 외엔 크게 변한 것이 없으면서도 쓸쓸함에 휩싸여, 갈팡질팡하는 제 자신인 것은 아주 떠나겠다고 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두 달, 석 달씩 소식 주지 않아도 기다림으로 나날을 채웠던 시간들, 나의 기다림은 또 시작된 것입니다.
또 좋은 작품 기대한다는 말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음에 포기하려는 마음도 많습니다. 좋은 시, 큰 시를 쓸 자신이 점점 없어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쓸쓸하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혹여라도 소식이 오지 않았을까?
메시지를 확인하지만 실망만 가득하여 눈물이 고이기도 합니다.
폰을 두고 산책을 다녀와 초록불이 반짝이면 혹 그대가 보낸 문자일까 하고 서둘러 폰을 열어 보지만 보고 싶지 않은 카톡의 동영상뿐입니다.
그대여,
참으로 야속합니다.
허기사 야속한 적이 한두 번뿐이었겠습니까마는
우리 같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참으로 많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스스로 다독일 때가 많습니다.
그냥 내가 정한 일이니 아무 말도 없이 기다리리라.
조용히 참고 있어 보는 거야.
인내를 배운다. 인내심을 기른다.
온갖 소양을 다 끄집어내어 참는 일에 몰두합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연락 기다리다가 숨이 넘어가겠다고.
그런데 저는요, 일 년을 보내면서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인간인지라 조금은 섭섭하고 씁쓸해요. 언제나 저는 그대에게 뒷전인가 봐요. 그대에게 크게 중요한 사람이 아닌가 봐요. 이런 생각은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 같아 가급적 안 하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네요.
다른 일을 많이 하려고 운동을 시작했어요. 저녁 시간에 아쿠아로빅을 하려고 했는데 마감이 되어 새벽반 수영을 시작했어요. 저녁이 좋은데... 새벽이라도 해야지 어깨 때문에, 발 때문에 계속 침을 맞을 수는 없어서 물속에서 하는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접영을 하다가 다리에 쥐가 심하게 나서 결국 침을 이틀을 맞고 조금 나아졌어요. 휴가 이튿날에도 발을 접질려 사혈을 하고 침을 맞고 나아졌지요. 여전히 다치면서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건강한 여름을 보내고, 좋은 작품 쓰라고 하셨는데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
세월은 빠르게 지나 소식이 없어도 무덤덤하게 지내는 요즘 예전에 써 놓은 글을 보면서 낯이 뜨거워지기도 하지만 진실한 마음이어서, 그때의 열정이 그립기도 하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발이 묶여 어떻게 지내시려나.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는 프랑스도 미국에도 갈 수 없어 무척 답답해하고 계시지 않을까. 수개월에 한 번씩 선심 쓰듯 문자 한 줄. 그것도 다운 로드한 음악 보내며 안부 여쭈면 답으로. 그러나 이제는 음악을 보내도 메시지는 없다.
어쩌면 떠남에 익숙할 즈음 새로운 소식을 주실 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