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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Dec 29. 2020

가보지 않은 길-2

글쓰기

사람이나 나무나 자기가 서 있던 자리엔 반드시 흔적이 남는 것 같다.



 일 년여를 공부하면서 시어른들은 주부가 그냥 집안일이나 하면 되지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언짢아하시는 것 같았다. 지금 적극적으로 엄마의 글쓰기를 응원하면서 브런치를 알려주고 응모하게 한 막내딸이 그때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혹 엄마가 없을 때가 있어서 불편했는지

  "난 엄마가 공부를 안 해도 행복해요"하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문학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나는 글을 쓰면서 누군가와 소통을 하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말은 입을 통해서 나오지만 글에서 만치 섬세하게 표현된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말을 달 못 한다. 일상적인 간단한 대화는 해도 오래 얘기하는 것도 자신 없는 것 같다. 친구들과 만나 얘기하다 보면 난 주로 듣는 쪽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들어도 바로 아니다고 대꾸하지 못하고 한 참을 생각하고 몇 번이 흐른 뒤에 아니다고 하거나 아니면 그냥 삭인다. 말을 안 하고 지나가도 내 감정에 큰 이상이 생길 것 같지 않으면 참는다고나 할까? 그러나 글은 마음의 표현을 가장 정직하게 할 수 있어서 좋다.


 결국 산길 끝 좁은 길 아래는 처음에 들어섰던 상가와 연결이 되어 내려가지 않고 되돌아 좁은 산길을 걸어 교회를 지나 삼거리까지 와서 내게 처음에 선택되지 못했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솔개 약수터와 서삼릉길]이라는 안내판이 작게 보였다. 아! 약수터가 있어서 졸졸졸 물이 흐르는 좁은 하천이 있었구나. 

 또박또박 걸으며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하나? 

 

 공부를 한지 일 년쯤 되어 갈 때  안 그래도 연말엔 늘 신춘문예란을 정독하며 보낸 세월이 있어서  다시 신문을 들여다보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일간신문에서는 시와 동시, 동화, 소설만 응모를 할 수 있었는데 문화일보에서는 수필을 응모할 수 있도록 영역이 넓어졌다며 서울에 있는 지인이 응모를 해보라며 전화가 왔다. 난 뛸 듯이 기뻤다. 지금까지 열심히 했으니 한 번 응모를 해봐야겠다고 다짐했고 운 좋게 당선이 되었다. 그 후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던 몇몇은 교수님 추천으로 부산에 있는 문예지에 등단을 했다. 교수님은 우리들을 제자라며 동인을 만들도록 해주셨고 매월 만나 한 편식 평을 하며 문장 강화에 힘을 쓰도록 하셨다. 일 년에 한 번씩 동인지를 출간하도록 이끌어 주시기도 했다.

  시어머님의 방광암 투병 간병할 때부터 글쓰기가 중단되었던 것 같다. 심 시위원이셨던 원로 수필가 박연구 선생님, 허세욱 선생님께서 열심히 쓰라는 응원의 말씀 듣는 것조차 내겐 사치였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남편마저 우리 곁을 떠나고 아이들과 서울로 올라왔다. 예전에 내가 살 던 서울이 아니었다. 5년을 힘들게 지내다가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살았다. 그때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단하게 살아 글 쓰는 일과 멀어졌다.

일 때문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지내면서도 매월 내려가 글 모임 사람들을 만나고 애들 살림도 봐주기도 하며 다니다 서울 생활을 접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 후 몇 년이 흐르고 감각이 무뎌지지 않기 위해 나름 문학도서를 읽으며 일본의 하이쿠에 빠져 짧은 시도 지어 보며 늘 글과 가까이 지내려 노력했다. 여전히 딸들은 엄마를 응원하며 필요한 책은 없냐고 물어보며 늘 책을 사줐다. 글 모임 사람들과 매월 만나  풍경 좋은 곳에 가서 밥을 먹고 수다를 떨던 시간을 생산적으로 하고 싶어 해서 다시 시를 암송하고 시를 쓰거나 수필을 써 오는 분께는 평을 하며 다시 독서를 하기 시작했고 시를 암송하며 내 안에서 문학의 열정이 식지 않기만을 바랬다. 그분들은 내게도 작품을 써 오라며 당부했지만 손녀를 키우면서 잠을 재울 때나 놀이할 때  동시를 읽어주고 시를 외워 낭송해주기도 하는 일로 만족하고 있었다. 손녀를 키우며 지내는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기쁜지 모를 일이었다.


글은 밭이랑에 앉아서 큰 돌을 골라내며 씨앗 뿌리기 좋은 흙으로 만드는 일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종업식 날 동생을 데리고 옆 마을 큰 고모님 댁으로 간 적이 있다. 고모는 놀라셨지만 조카 둘이 왔으니 반갑게 맞아 주셨고 점심을 먹은 후에 텃밭으로 나가 하던 일을 계속하셨다. 나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웃으시면서 너는 어려서 못한다고 하셨다. 그래도 하고 싶다고 하니 밭이랑 흙속에 큰 돌이 있으면 골라내라고 하셨다. 나는 포슬포슬한 흙이 만지기 좋아서 열심히 작은 돌까지 가려냈다. 고모가 나를 한참 보시더니 그렇게 작은 돌까지 골라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는데 어린 나는 그 말을 이해를 못 했던 것 같다. 큰 돌을 골라내는 것은 씨앗을 뿌렸을 때 흙속에 씨앗들이 자릴 잘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후로 성경 말씀에도 가시밭과 가라지 밭을 비유로 삼은 구절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 어찌 알겠는가.


  저 밭에 포근한 날씨로 인해 할머니 한 분이 밭이랑에 앉아 돌을 골라내고 검불, 채소 뿌리 같은 것을 쉼 없이 걷어 내고 계셨다. 벌써 봄을 준비하고 계신 것인지 정말 열심히 하셨다. 할머니를 보면서 글쓰기도 밭이랑을 고르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서랍 속에 넣어 두고 꺼내서 읽다가 어색한 부분은 다시 읽어 보고 고쳐보기도 하면서 마춤법 검사를 돌리고 발행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기도 몇 번씩 한다.

 처음에는 브런치가 낯설어서 사진 올리는 것도 모르고 맞춤법 검사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어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하지만 내 글에 자신은 아직 없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어 보면 아는 것도 많으시고 지식의 방대함이 느껴지며 요즘 시대에 맞게 통통 튀는 글들이 참으로 경쾌하고 재밌다. 정말 부럽다. 난 언제 저렇게 쓸 수 있을까? 크게 고민하지만 어설픈 글도 자꾸 쓰다 보면 책임감 있게 옥석도 가릴 줄 알고 다듬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계속 쓰는 것 같다.


 이정표 표시대로 걷다 보니 솔개 약수터가 나온다. 약수터 입구에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면 저번에 갔던 농협대학교 앞쪽으로 가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산길을 향해 걷는데 다시 왼쪽 길, 오른쪽 길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는데 난 무릎을 생각해서 가파른 오른쪽 길보다 완만하게 뻗어 있는 왼쪽 길을 향해 걸었다. 참나무 잎이 수북하게 쌓인 길인데 어쩐지 잘못 들어 선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인적이 없어도 끝까지 올라가 봤지만 역시 초록색 철책 울타리로 막혀 있었다.

 하하하 웃으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걷고 내일 가파른 오른쪽으로 걸어가 보자.

 이렇듯 삶이란 것도 정주행을 하다 굴곡을 피할 길 없어 주저앉을 때도 있고 심기일전해서 다시 나아가기도 하는 것처럼 글 쓰다가 막히면 잠시 쉬고 다시 읽어 보고 주옥같은 글이 아니면 어떠랴. 교훈적인 글이 아니면 어떠랴 하면서 내 안의 나에게 위로를 해보기도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하고 싶다.



 다시 어제에 이어 길을 나섰다. 처음부터 약수터를 지나 어제 외면했던 가파른 길을 향해 올라서는데 지팡이로 쓸만한 나뭇가지가 없나 하며 둘러보았다. 마침 썩은 나뭇가지가 두어 개 보여 주워 짚어 보았지만 조금 짧다. 경사진 길을 올라가다 보니 누군가 버리고 간 생가지 지팡이가 보였다. 얼른 주워 짚어 보니 내 키에 안성맞춤이었다. 고맙게도 나뭇가지의 잔가지도 정리해서 쓰고 버리고 갔네. 하며 그 막대기에 의지해서 산길을 걸으니 훨씬 걷기가 좋았다.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오른쪽 옆은 골프카트가 보이고 골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길옆의 나뭇가지에 걸쳐 있는 현수막을 보니 사유지 산길이라고 주의해야 할 것을 당부해 놓았는데 교회의 비전센터 숲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동의 건물이 보이는 산길을 빙 둘러 오르락내리락하며 산길 끝으로 내려오니 어제 나왔던 그 길과 만나는 자동차 길로 닿아 있었다. 서삼릉으로 연결된 도로는 자동차 길 밖에 없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약수터의 산자락 지도에 농협대학 앞을 지나는 길이 이 도로였구나. 

  다시 어제 어제의 길로 내려오면서 우리의 삶은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처음부터 다시 돌이켜 세울 수 있는 시간이 아니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삶. 글은 썼다가 다시 지워 새롭게 쓸 수는 있어도 나이를 거꾸로 돌려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매일매일이 가보지 않은, 살아 보지 못한 날을 맞는다. 

 집에 도착해 현관 옆에 의지했던 나뭇가지를 세워 놓으며 문득 생각난 것은 혹시 누군가가 오늘 사용하고 내일 산에 올라갈 때 쓰려고 길 한옆에 누워 놓은 것을 내가 가져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발 아니기를 바라면서 '혹 그렇다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마음속으로 뇌어 본다.


  곧 가보지 않은 2021년을 맞게 된다. 우리의 2021년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코로나 블루에서 헤어나긴 하는 걸까? 각자 처한 현실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며 조용히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살려했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글쓰기만큼은 최선을 다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고 깊이 반성할 것이다. 또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날마다 노력하면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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