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신영 Dec 29. 2020

가보지 않은 길-1

글쓰기

  오랜만에 영상인 날씨에 바깥으로 나서는 발걸음을 옮겼다.


  감기 뒤끝이라 함부로 나서긴 겁이 났지만 목에 스카프를 단단히 두르고 모자까지 쓰고 바람 한 점 들어올세라 철벽 방어를 하고 대문을 나섰다. 오늘은 평소 걷던 평탄한 창릉천  둘레길이 아닌 서삼릉 쪽 산길로 걸어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창릉천 둘레길엔 사람들도 많이 다니고 혼자 깊은 상념을 하기엔 아무래도 산 쪽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지난 초여름에 찻길 따라 이정표에 나타난 대로 걸어 농협대학교를 지나 서삼릉과 종마장 방향으로 향했지만, 그곳에서부터 왕복 1.2km를 확인하고 그럼 5~6km 넘는 거리는 무리일 것 같아서 다음에 가야겠다며 돌아온 적이 있다. 이곳에 온 지 1년쯤 되었는데  옛날에 서울에서 학교 다닌 사람들은 서오릉 , 서삼릉 등으로 소풍을 한 두 번씩은 다녀왔을 것이다. 그 서삼릉, 서오릉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반가웠지만 뚜벅이로 다녀야 해서 5~6km 이내인지 확인하고 걷고 있으며, 걷는 거리를 늘려 나가고 있는 중이었지만 아직 찾아보지는 못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길을 건너고 국 식당, 카페를  지나 조금 걷다 보니 한적 해지며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어느 길로 가야 산으로 갈 수 있을까? 갸웃하며 바라보니 [차길 없음] 팻말이 눈에 띄어 조용한 길을 택해서 걸음을 옮겼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우리는 옳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의 연속이다.


.


 자동차 한 대가 지날 만한 길이 끝나고 나니 낙엽이 푹 쌓인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호젓하고 푹신한 길을 걸으며 야트막한 야산을 바라보았다. 겨울이어서인지 갈색으로 치장한 산은 회색 및 나무들만 줄지어 서 있었고 왕래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어떠랴 하며 머릿속은 내 글이 문장력이 뛰어나지 않고 좋은 글이 아님을 알면서도 브런치에 올렸다는 것이 못내 가슴 한편이 찔려 브런치에 작품을 올리고서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던 자격지심이 있다. 피디 작가님의 통렬한 비판을 읽으면서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작품을 읽어보는데 수준 높은 작품뿐 아니라 수준이 닿지 않는 작품이 많이 있다는 얘기였다.

  사실 등단을 하고 짧은 기간 동안 동인 활동도 하며 글을 쓰고 동인지도 발표하긴 했었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폭풍이 휘몰아치듯 정신 차리기  힘든 일을 겪으면서 글쓰기를 잊고 지냈다. 절필하듯 글쓰기와 멀어져 생업에 뛰어들어 애들과 살아내야 했던 삶. 몇 년이 흐른 뒤에 그래도 문학의 끈을 놓지 못해 다시 소설 문화강좌를 들어보기도 했다. 수필은 나의 진실을 전부 드러내야 하는 글이라서 도저히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유명 소설가의 소설 쓰기 강좌를 들었다. 단편을 써보며 지망생들이 써온 작품들도 읽고 평을 하면서 좋은 시간을 갖게 되어 좋았지만 존경하던 작가님이 히말라야로 가기 위해 티베트로 떠나는 바람에 아쉽게도 소설 공부가 끝이 났다.

 글과 멀어지지 않기 위해 당시에 유행했던 싸이월드에 방을 만들고 그날그날 소회를 조금씩 써뒀다. 작가님과 지망생들과 소통을 하면서. 그러나 늘 자신 없는 글이었다. 솔직히. 그러나 다시 글쓰기를 하기 위해 브런치에 덜컥 발을 디밀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쓰기 위해서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한 방향으로 갈 때 '그쪽은 안돼"라고 강력하게 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념에 젖어 걷다 보니 큰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은 것이 보였다. 이렇게 길을 막아 강력하게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반가운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다 같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과서에서 배웠던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도 있고 남들이 지나갔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가지 않은 길,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인생은 다시 살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님이 갔던 길, 앞서갔던 선배들이 이끌어 주는 길이기도 하지만 내가 개척해야 하고 맞닥뜨려 해결하며 사는 삶이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명한 판단으로 수월하게 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기 때문에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원이 되어 복잡 다난한 일들이 벌어지며 크게는 전쟁, 기아, 지금 같은 코로나 블루로 펜데믹이 되어 전 세계가 이 하나를 물리치기 위해 노력하는 최대의 난제 속에서도 작은 기쁨이 있고 다시 슬픔, 허탈함도 느끼며 다양한 삶의 형태가 이루어지는 것인가 보다.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부터 중고등학교 대학을 나오는 동안 시를 쓰고 산문을 쓰고 상을 타면서 나에겐 글  쓰는 일이 숙명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 결혼이라는 길로 들어서고는 꿈은 뒷전으로 밀리고 사는 나날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갔으니 아는 사람은 오직 서울서 만난 남편 한 명 박에 없는 곳에서 의 생활은 결혼은 다 이런 것인가? 시어른과 가족을 위해서 밥하고 청소하고 시장 봐서 또 밥하고... 내 삶은 무엇인가? 시인이 되고 싶었던 꿈 많던 소녀, 아가씨는 어디 갔나?

  혼자 눈물로 밤을 훌쩍이던 것도 16년쯤 흐르고 나니 부산생활, 시집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다시 하지 못한 숙제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부산에도 백화점 문화센터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보다 10년쯤 문화적 차이가 나던 때이니까. 그래도 반가워 문예창작반에 등록을 하고 어느 대학 교수의 문학 강좌를 들었다. 쓰고 싶던 시를 1주에 한 번식 써 갖고 갔지만 어떤 날은 혹평을 당하고, 어떤 날은 호평을 받고. 그래도 어찌나 즐겁던지. 글을 쓰게 되어 너무 신났고 해방구 갔던 나의 글쓰기 수업은 제때 차려 드려야 하는 시아버지 밥상으로 인해 불편함은 있었지만, 경보 선수처럼 달리듯 하는 걸음으로 시간 맞춰 귀가하곤 했다.

 틈나면 바닷가도 찾아가 메마른 정서를 촉촉하게 만들고 싶어 애를 쓰고 좋은 시구, 글귀 찾느라 엄마의 독서 삼매경에 빠져 아이들조차 책 읽기는 아주 자연스레 된 것 같다.


  가로막은 길을 돌아서 두 갈래길에서 가지 않았던 길을 따라 옆의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다시 선택해야 하는 순간, 어느 길로 가야 하지? 왼쪽의 언덕길은 한 두 명이 내려오고 오른쪽은 텅 빈 길이다. 사람들이 내려오는 길로 발길을 옮겼다. 길은 잘 닦여 있었고 오른쪽은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그 안에 몇 동의 건물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어느 교회의 숲 비전센터였다. 전나무가 양쪽으로 서 있는 언덕을 올라 끝까지 걸어가니 예전에 농협대학교 쪽으로 걷던 자동차 도로가 나왔다. 아쉬워서 둘러보니 왼쪽으로 좁은 산길이 나 있어서 그 길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난 산길인데 낯설지만 험하지 않고 낙엽 쌓인 길을 걸으니 재미있다. 참나무가 많은 곳엔 참나무 잎이, 소나무가 많은 곳엔 소나무 갈비들이 푹 쌓여 있었으며 커다란 오동나무 잎사귀가 누워 있는 길 옆엔 반드시 오동나무가 서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호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