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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Dec 30. 2020

골프 이야기-3

작은 거인 - 장정

                                                                                                                                                          


                   

그녀의 침착함은 어디에서 오는 가? 
   



 1라운드부터 선두를 지켜온 장정.  마지막 라운드의 장정은 앙다문 입술과 단단하고도 또박또박 내딛는 발걸음으로 여유로움과 안정감을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속내는 우승하고자 하는 열망의 불길로 타올랐을 것이다.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로 하여금 안도의 숨을 쉬게 할 정도로 침착하게 경기를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그녀의 속내는 우승하고자 하는 열망의 불길로 타올랐을 것이다.  작은 거인이라고 불러 달라는 그녀. 작지만 결코 작게 느껴지지 않는 여자. 우뚝 서 있는 큰 나무처럼 그녀는 당당하게 경기를 치러내 6년 만의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장정은 지난 1일(한국시간) 영국의 사우스포트의 로열 버크데일 골프링크스(파 72. 6천436야드)에서 열린 미국 여자 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 브리티시 여자 오픈(총 상금 180만 달러) 최종 라운드에서  3언더파 69타를 쳐 4라운드 합계 16언더파 272타로 정상에 올랐다.  2000년 이 대회 우승자 소피  구스타프손(스웨덴. 276타)과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 279타)의 추격을 뿌리친 장정은 이로써 99년 LPGA 투어 진출 이후 6년 동안 미뤄온 첫 우승컵을 안았다. 2위 구스타프손과는 4타 차의 완벽한 우승이었다. 
  이번 우승으로 장정은 박세리(28.CJ), 박지은(26. 나이키 골프), 그리고 김주연(24.KTF)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4번째로 LPGA 투어 '메이저 퀸'에 등극했다. 한국  선수의 브리티시 여자오픈 제패는 2001년 박세리에 이어 두 번 째다. 생애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이뤄낸 것은 박세리, 김주연에 이어 3번째다. 
  우승 상금 28만 달러를 받은 장정은 시즌 상금 74만 4천161달러로 상금랭킹 5위로 수직 상승하면서 난생처음 시즌 상금 100만 달러에 도전할 발판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LPGA 투어에서 시즌 상금 100만 달러의 벽을 넘어선 한국 선수는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등 3명뿐이다. 


    첫날의 악천후로 인한 세찬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내 선두를 달린 장정은 2위 그룹과 5 타차라는 넉넉한  리드를  안고 최종 라운드에 나섰지만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 
    소렌스탐과의 맞대결이라는 부담스러운 상황에다 이날 하루에만 5타를 줄인  구스타프손의 추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정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드라이버 티샷은 철저하게 페어웨이를 지키고 그린 공략도 위험한 쪽은  피해 가는 안전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다 기회가 오면 버디를 노리는 지능적인 경기  운영으로 장정은 이렇다 할 위기 없이 우승까지 내달렸다. 
    1번 홀(파 4) 12m 짜리 먼 거리 버디 퍼트가 컵에 떨어지며  기분 좋게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장정은 7개 홀 연속 파 행진을 이어가다 9번 홀(파 4) 버디로 우승을 향한 9부 능선을 넘었다. 소렌스탐의 두 번째 샷이 홀 1m 옆에 붙어  버디가 확실한 상황에서 10m 거리에서 때린 퍼트가 그대로 홀에 빨려 들어간 것. 갤러리들의 숨죽인듯한 환호성에 깜짝 놀란 소렌스탐이 손쉬운 버디 퍼트를 놓치면서 장정은 6타 차로  달아날  수 있었다. 


    11번 홀(파 4)에서 두 번째 샷이 벙커에 빠진데 이어 2.5m 파 퍼트를 빠트린 장정은 1타를 줄인 소렌스탐과 4타 차로 좁혀졌지만 동요하지 않았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3번 홀(파 4)에서 티샷이 오른쪽  러프에  빠졌고 두 번째 샷마저 그린 왼쪽 러프에 박혔지만 침착하게 핀에 붙여 파를 지켰다. 앞 조에서 경기를 치른 구스타프손이 후반에만 4개의 버디를 뽑아내 3타 차로  따라붙었지만 장정은 15번 홀(파 5)에서 세 번째 샷을 홀 1m 앞에 떨어트려 가볍게 버디를 잡아내며 여유를 찾았다. 
 역전을 노리던 소렌스탐은 16번 홀(파 4)에서 항아리 벙커에 빠진  볼을  2번 만에 겨우 쳐내며 1타를 잃었고 구스타프손은 1, 3라운드 때 연속 버디를 뽑아낸 17번(파 5), 18번 홀(파 5)에서 모두 파에 그치면서 더 이상 추격할 여력을 잃었다. 장정은 마지막 18번 홀에서 세 번째 샷을 홀 1.8m에 바짝 붙인 뒤 버디를  잡아내 우승을 자축했다. 
  장정은 '너무 기뻐 손이 떨릴 지경'이라며 '드라이버 탄도를 낮게 유지했고  경기 전 퍼터를  바꾼 것이 주효했다'라고 말했다. 소렌스탐은 18번 홀에서 더블보기를 범해 공동 5위로 추락했다.  올해 메이저대회 2승을 따냈지만 US 여자오픈과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잇따라 한국 선수에게 우승컵을 내준 소렌스탐은 '장정은 정말 훌륭한 플레이를 펼쳤다'면서 패배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정상급 실력을 갖추고도 6년 동안 우승컵과 인연을 맺지 못해 애를 태우던 장정이 생애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일궈낼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마인드 컨트롤  덕이었다. 중압감이 1∼3라운드 때에 비해 2배가 넘는다는 최종  라운드에서  '여자골프의 지존'이라는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의 동반 플레이를 치른 장정은 경기 내내 침착한 경기 운영으로 이렇다 할 위기 없이 무난하게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었다. 


  우선 장정은 철저하게 소렌스탐의 '존재'를 무시하는 전략을 택했다. 경기 내내 소렌스탐과는 가능한 한 대화는커녕 눈도 맞추지 않았고 오로지  자신의 플레이에만 집중했다. 그 작은 키로 티샷을 하고 그린 위를 한발 한발 내딛는 모습은 꼭 우승을 하고야 말겠다는 집념의 발걸음의 연속이었다. 
 세계적인 대선수와 동반 라운드를 하게 되면 '배우는 자세로 임하겠다'는  판에 박힌 코멘트를 날리기 일쑤지만 장정은 '배우는 자세'가 아니라 '이기겠다는  집념'뿐이었다.  또 장정은 LPGA 투어에서 최장타자인 소렌스탐과 힘 대결을 애써 피했다. 파 5홀에서 소렌스탐은 어김없이 강력한 드라이브샷에 이어 2 온을 시도했으나 장정은 웨지 샷으로 그린을 공략하기 적당한 위치에 두 번째 샷을 가져다 놓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5 타차라는 넉넉한 리드를 잡고 있었기에 장정은 안전 위주의 경기 운영을  선택했고 이는 대성공이었다. 장정의 전략은 첫째 드라이브샷은 거리보다 방향, 즉 페어웨이에 반드시 안착시킨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그린을 공략할 때는 버디 잡기가 쉬운 곳이 아닌 가장 안전한 방향으로 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장정은 이날 페어웨이를 벗어난 것은 단 한 번뿐이었고 보기 역시 1개밖에 없었다. 버디 4개 가운데 2개는 파 5홀에서 웨지로 친 세 번째 샷을 핀을 바로 노리고 만들어낸 것이었다. 
 무리한 버디 사냥에 나설 이유가 없었던 장정은 파 4홀과 파 3홀에서는 홀을 직접 겨냥한 샷보다는 그린 한가운데를 노린 뒤 2 퍼트로 파를 지키는 '지키기'에 충실했다. 이 같은 안전한 플레이는 타수차를 좁히려 안간힘을 쓰던 소렌스탐에게는 조급증을 안겨주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냈다. 사흘 내내 선두를 달렸던 장정은 또 2∼3m 퍼팅은 거의 놓치지 않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 것이 우승의 원동력이었다. 72홀을 치르는 동안 장정은 보기를 5개로 막아냈고 버디는 20개나 뽑아냈다. 버디 찬스는 거의 놓치지 않았고 보기 위기 때 파를 지킨 경우도 많았다. 
  장정은 경기가 끝난 뒤 '겸허한 마음으로 코스를 밟았고 끝날 때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코스를 이기려는 선수보다는 코스에 순응하는 선수에게 우승컵을 안겨준다는 골프 경기의 '진리'를 장정은 이번 대회를 통해 유감없이 증명해 보인 셈이다. (  2005.08.21 15:42 )





  



#golf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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