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을 찾고 싶은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나의 'SOS' 메시지.
우리는 흔히들 적성을 찾고자 할 때 항상 유념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잘하는 것, 나머지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모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날 수 없는 내 인생의 정수처럼 느껴진다. 너무나 찾기 힘들고, 누군가 답을 주지 않아 항상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그것이 '적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큰 함정에 빠져있다는 것을 인지해야만 한다.
'적성'이라 불리는 대상은 결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닌,
'나'라는 존재가 살아가면서 쌓아온 경험과 통찰 속에 나의 '적성'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이 말이 뻔해 보이고 당연한 말처럼 느껴진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해보겠다.
(구체적이 않는다면 각오를 하는게 좋을 것이야 ㅡ,.ㅡ)
'적성'이라는 것은 내가 참 잘하는 일이거나, 실력에 상관없이 내가 심미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말하는 것인데,
내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중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잠깐 동안의 취향을 얘기한다고 보긴 어려울 수 있다.
'스스로가 오랫동안 그러한 맥락을 좋아하고, 잘하여 나에게 전혀 낯 섬이 없는 일이라고 보는 것'
이 '적성'에 훨씬 가깝다는 것을 부정하긴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나에게서 비롯하여 일어난 맥락을 가지는 일들 중 꾸준히 유지되어 지금까지 그러한 '일' 이
적성일 확률이 큰 것이다.
예를 들어 본다면, DJ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DJING 은 매우 흥미롭고 새로운 영역의 배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 흥미 단계에서 우리는 농담 삼아 '이거 내 적성에 딱 맞네~~'라는 말을 가볍게 뱉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거 말이지! 나의 적성이 틀림없구만!")
재미를 느끼는 흥미의 단계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신호이다.
우리는 '재미'라는 신호를 결코 머리로 계산하여 나오는 값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흥미의 단계를 지속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티켓을 지녔다고 보면 된다.
좀 더 잘하고 싶은 마음, 나 혼자서도 오롯이 즐거울 수 있는 상태를 좀 더 사유하고자 발현되는 것이,
해당 분야에 대한 자발적 탐구이다.
이 탐구 과정의 시작점을 우리는 '취미'라고 부르며, 수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시작점에는 많은 확률로 '취미'로 시작된 순수한 자발적 탐구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순수하게 발현된 흥미와 재미는 적성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작고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나의 '적성'을 찾아가는 정말 중요한 힌트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흥미와 재미의 요소를 적성과 연관시킬 때는 왠지 모르게 , '남들보다 좀 더 특별해질 수 있는 분야' 혹은 '나에게 흥미와 재미가 될 수 있을만한 새로운 자극'에서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익숙해져 버린 대상들 속에서는 흥미와 재미에 대한 자극이 익숙함으로 인해 반감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봐~ 당신이 안다면 얼마나 안다고 그래!! 난 특별해지길 원한다고!!)
한 가지 예로 들자면,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라는 행위는 너무나 일반화된 것처럼 보이고, 이미 다른 색다른 흥미들 보다 더 오래되고 익숙한 경험인 경우가 많기에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라는 행위와 적성을 연결시키기에는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릴 때부터 음악이란 것을 듣기 위해 음원을 구매하거나 다운로드하여서 듣는 행위 자체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라는 행위가 결코 평범한 사건이 아닐 수 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라는 흥미의 단계에서 자발적 탐구의 단계인 '취미'로 넘어간다면, 다양한 음악을 평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 도 있고, 다양한 음악을 플레이하고 이를 재조합하여 사유할 수 있는 DJ 같은 분야에 발을 들여놓을 수 도 있는 일이다.
나 스스로가 머리로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 아닌 심미적이고 감성적으로 흥미와 재미를 느낀 대상들은 언제나 눈여겨봐야 될 대상들인 것이다.
사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이미 본능적으로 흥미롭거나 재밌어하는 대상을 만났으며, 그것을 취하여 사유한지는 다들 오래되었을 것이다. 새로운 흥밋거리들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다양한 환경적 제약이 걸린 현대인에게는 그러한 새로운 경험을 얻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적성을 찾기 위한 신호를 어릴 적 순수하게 좋아했던(지금은 뻔하게 일상이 되어버린) 대상에서 찾아내야 한다. 본능적으로 좋아한 어릴 적 대상물은 성인이 된 지금도 자신의 취향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을 것이다.
어릴적 발견한 흥미와 재미의 대상은 마치 다이아몬드 원석처럼 당신의 곁에서 계속 영롱하고 가능성 있는 빛을 뿜어냈겠지만, 우리는 그 영롱한 빛의 익숙함으로 인하여 방치 속에서 먼지로 그 빛을 덮어버린 것이다.
사실은 나의 곁에서, 내가 깨어있는 그 순간마다 항상 빛을 내며 자신의 본질을 알아봐주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나의 적성은 언제나 SOS를 보내고 있다' 라고 말하는 이유 이다.
우리가 그토록 찾고자 하는 적성은 '흥미'와 '재미'라는 것으로 오래전에 우리의 곁으로 와 있었고, 우리는 단지 그들이 내뿜는 영롱한 빛을 당연한 거로 여기면서 또 다른 빛을 찾아 헤매었을지도 모른다. 내 곁의 원석들은 오랜 방치와 세월의 때가 덮혀 빛나지 않을 수 있지만, 원석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나를 잘 살피고, 내 원석들을 발견해 내어 다시금 재조명하면, 자발적 탐구의 단계인 취미로 끌어올릴 수 있는 수많은 분기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우리의 적성을 발견해내는 첫 번째 포인트가 될 것이며, 이를 잘 가꾸어 발전시켜 나가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나다우면서도 자생력이 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아주 뻔한 취향... 이것이 핵심이다.
익숙함에 속지 말고,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뻔한 취향을
반드시 다시 되돌아 보길 바란다.
그들의 SOS신호듣고, 꼭 구조해주길 바란다.
그것이야 말로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적성'을 찾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