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살던 남자

지리산 자락에 묻힌 왕자

by 하로동선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에는 한 달 새 3만 8천여 명이 몰렸고, 장릉 방문객은 아홉 배 늘었단다. 청령포로 들어가는 나룻배는 대기 줄이 두 시간을 넘고 숙박과 음식점 매출도 52퍼센트나 올랐다니 과히 열풍이다. 영월은 원래 볼 것 많은 동네라, 여행 좀 다닌다는 사람들은 한두 번씩 다녀가는 곳인데, 영화 한 편이 잘 모르던 사람들까지 불 붙인 형국이다.

영화 관광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영화의 인기와 지역 인지도 상승은 정비례한다. 남이섬이나 군산의 사진관, 뉴질랜드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딜 가도 무슨무슨 영화, 드라마 촬영장이라는 팻말을 흔히 볼 수 있다.



한남마을 가는 길에 바라본 지리산




대전과 거제를 잇는 대진고속도로 생초 IC를 나와 첫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면, 길은 아름다운 강을 따라 마천으로 이어진다. 지리산 뱀사골과 칠선계곡의 물이 여러 지류를 합하여 이룬 엄천강이다. 지리산이 만든 두 개의 강이 경호강과 덕천강인데, 천왕봉에 떨어진 빗물이 남쪽으로 흐르면 덕천강이 되고, 북쪽으로 흐르면 경호강이 된다. 전국에서 수달이 가장 많이 서식한다는 엄천강은, 다른 물길들과 합하여 경호강이 되고, 진양호에서 덕천강을 만나 남강이 되어 흐르다가, 낙동강과 함께 남해로 흘러 들어간다. 여느 지리산의 물길처럼 맑고 아름다운 강이다. 엄천강을 따라 흐르는 길은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고, 마천 지리산둘레길 안내센터에 닿기 전에 '한남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한남(漢南).

조선 세종의 11번째 아들 '한남군 이어'.

그의 이름에서 따온 지명이다.

이 깊은 지리산 골짜기에 왕자의 이름이 붙은 까닭은 무엇일까.



한남마을 앞 버드나무 고목




한남(漢南)군은 세종의 4번째 서자이자 단종의 숙부다. 단종은 세종의 첫 손자이자 문종의 외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세종은 손자를 무척 아껴 집현전 학사들에게 "내가 죽은 뒤에도 이 아이를 잘 부탁한다"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한남군 역시 세종의 넷째 서자로, 어머니 혜빈 양 씨는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혜빈 양 씨는 단종의 생모가 출산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나자 세종의 부탁으로 단종을 보살폈다. 단종과 한남군은 숙부와 조카 사이였지만 혜빈 양 씨의 보살핌 아래 형제처럼 자란 각별한 사이인 것이다.

왕의 아들과 손자로 태어난 단종과 한남군(漢南君)의 생애는, 조선 왕실사에서도 손꼽히는 비극이지만, 그들의 어린 시절은 역설적이게도 세종 대왕의 넘치는 사랑과 기대 속에서 가장 찬란하고 따뜻했다.



엄천강을 내려다 보는 소나무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으로 단종은 왕위를 빼앗겼고, 한남군과 어머니 혜빈 양 씨, 동생 영풍군은 유배를 떠났다. 하지만, 계유정난의 소용돌이에서 한남군이 단종을 옹호하거나 복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단종과 같이 자랐고 그의 어머니가 단종을 길렀다는 것이 그의 죄였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결국 어머니와 동생은 처형당했고, 한남군은 충남 금산, 아산을 거쳐, 지리산 엄천강 새우섬이라는 좁은 밭뙈기에서, 울음을 삼키고 살았다. 그 새우섬이 바로 엄천강 한남마을에 있다.

새우섬은 엄천강의 물길이 퇴적된 지형을 갈라서 만든 섬 같은 땅덩이다. 한남군이 유배를 왔을 때는 단종이 유배된 청령포와 같이 배로만 드나들었는데, 그것도 모자란 세조는, 함양 목사에게 지시하여 배소 네 모퉁이를 건장한 사람으로 지키게 했다고 한다. 청령포가 물과 절벽으로 막힌 곳이었다면, 새우섬은 사방이 강물로 둘러싸인 천혜의 감옥이었다.




엄천강


영월이 영화 흥행으로 뉴스를 장식할 때, 한남마을도 뉴스에 나왔다. 지난 2월에 발생한 대형 산불로 산이 불타고 주민들이 대피했다고 며칠간 뉴스를 장식했다. 알고 보니 이전에도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다니다가 징역형을 살고 나온 자의 소행이란다. 기가 찰 일이다.

몇 년 전에는 엄천강을 막아 댐을 짓겠다는 계획이 수면 위로 떠올라 동네가 시끄러웠다. 한 번의 해프닝이 아니라 1998년, 2003년, 2016년에도 자본의 끈질긴 탐욕은 잊을만하면 조용한 마을을 뉴스에 등장시켰다.

하지만, 한남마을은 그런 뉴스와는 상관없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남쪽을 향해 열린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으로, 산골마을이지만 들도 적당히 넓고, 물이 많아 농사짓기에도 좋다. 살림이 넉넉하니 사람들 인심도 후하고 일 년 내내 시끄러운 소리 안나는 마을이다.

작은 리조트형 숙소도 있고, '수달아빠'라고 불리는 젊은 환경 운동가와, 그의 누님이 하시는 지리산 최고의 계절 밥상을 내놓는 식당도 있다. 이래저래 지나다가 들르거나, 하룻밤 자고 가기 좋은 동네다. 혹시 지리산에 왔거든, 일부러라도 한번 찾아가 볼만한 곳이다. 마을 곳곳에는 한남군을 기억할 만한 장소들이 많다. 하지만, 굳이 한남군의 비극적인 생애를 추모하려고 애쓰지 말고, 고샅길을 걷고, 강둑에 서서 유유히 헤엄치는 수달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리산 생사목



한남군은 서른한 살에 죽었다.

권력은 그를 죽였으나, 마을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고자 마을 이름으로 남겼다.

지역 유림들이 한오대(漢吾臺)라는 정자를 세워 그를 추모했다.

한남군이 살던 집 한오정(漢吾亭)은 1936년 홍수로 사라졌다.

그때 새우섬도 물길에 쓸려가고 돌무더기만 남았다.

그의 무덤은 한남마을이 아니라 함양읍 교산리에 있다.

한남군은 지리산 자락에 묻힌 유일한 조선 왕조의 왕자다.

근처 멀지 않은 사천 곤명에 아버지 세종과 조카 단종의 태실지가 있다.


가장 사랑한 두 사람이 가까이 있으니, 그리 외롭지는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