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누워서 홀짝거리다.
좋은 선물을 받았다. 후배가 준 티타늄 잔이다.
사실 강제로 뺏었다.
물욕이 많고 남의 것을 탐하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죄책감 없이 주머니에 넣어왔다.
아주 맘에 든다.
술잔 안쪽 바닥에는 山이 새겨있고, 바깥 바닥에는 酉, 酒, 臥, 山 네 글자를 썼다.
대충 짐작건대 산에 누워서 술 한잔하라는 소리 같다.
평소 아는 체하기를 즐기고, 허세도 능력이라고 주장하는 내 성정에 딱이다.
산 좋아하고 산에서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 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후배가 그걸 알고 골랐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잘 골랐다.
그런데, 혼자 즐기기엔 그 풍류가 너무 맘에 들어, 결국 여러 개를 사서 이름까지 새겨 나누는 일이 벌어졌다.
수고스러운 일은 후배가 맡았지만, 뭔가 계략에 걸려 돈을 털린 기분이다.
기분 탓이겠지?
...기분 탓이리라.
이래저래 잔이 많다.
직접 사기도 하지만, 대부분 선물 받은 것들이다.
작은 잔부터 큰 대접까지 가지각색의 잔들은 소중한 보물들이다.
밥그릇은 달랑 하나만 챙겨도 술잔은 두 개 이상 챙긴다.
주종에 따라 역할이 다르고 잔을 안 챙긴 일행에게 술 권할 때도 필요하다.
코펠이나 밥그릇에 술 따라 마신다고 술맛이 변하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술은 술잔으로 마셔야 제맛이 난다.
산꾼에겐 이런 말이 있다.
점심 술은 '선택'이요,
저녁 술은 '필수'지만
아침 술은, 산꾼의 '의무'다!
물론 내가 지어낸 억지요, 핑계다.
비 오는 날,
타프에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저 잔 가득 채운 술 한잔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