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SNS를 통한 업무 지시 금지를 골자로 하는 법안이 제기되고 있다. 어느 사기업은 밤 10시 이후, SNS 상 업무 지시를 할 경우 팀장급에게 불이익을 주겠다, 라는 경영 방침을 내세운다.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세상에는 별처럼 수많은 직장이 있다. 치열하거나 지루하거나, 바쁘거나 여유롭거나. 아니면 어중간하거나. 공통점은 각 개개인에게 힘들지 않은 곳은 없다는 사실뿐이다. 당사자의 논리에서.
언젠가 점심시간, 대학 선배 회사 근처에서 선배를 만나 밥을 먹었다.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배는 대학 때처럼 맥주를 시켜 단번에 들이켰다. 안주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제육볶음.
"형 점심시간에 술 마셔도 돼요?"라고 내가 물었다.
"응. 한가로운 직장이니까."
몇 년이 지나, 이제는 내가 그때의 선배처럼 직장인이 되었으나 점심시간에 맥주는 여러 사유로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끔 그 선배를 만나면 그는 여전히 적당한 돈을 벌고,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술을 마시며 그리고 한가롭다.
SNS 금지법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규제하는지 정확히 알진 못한다. 다만 업무적으로 급한 일이 발생했을 때처럼 예외적 상황은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 것인가는 생각해봐야 한다. 제조업 같은 경우, 공장 내 생산 라인 비가동 발생 상황에선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연락이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비가동은 예측할 수 없다. 토요일 밤 새벽에도 전화를 받을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이 "예외가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 작은 허용이 법안 자체의 존폐를 위협하는 것이죠"라고 말하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건 너무나 폭력적이며 극단적이다.
나 역시 퇴근 후엔, 자유롭게 쉬고 싶고 싶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엔 언제나 예외란 것이 있다.
그런 예외적 상황에 직면한 회사를, 업무를, 상사를 이해한다고, 그럴 수 있다,라고 외친다면.. 돌을 맞을까.
혹시 누군가 독기를 품으며 반박할지 모른다.
"밤마다 업무 지시 카톡을 받고, 내일까지 뭐해라 라고 듣는 순간 잠도 잘 안 와. 그게 얼마나 고통인지 알아? 너는 너무 한가한 거야."
이해한다. 회사의 예외적 상황을 이해하듯, 나는 누군가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팀장도 쉬고 싶어 하지 않을까? 왜 굳이 밤까지 카톡을 보내며 업무적인 내용을 얘기하는 걸까, 그건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어쩌면 거기에 해답이 있을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나의 직장은 전혀 한가롭지가 않다는 점이다. 매일 전투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밤이 끝나면 또다시 연결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이래서 밤은 항상 짧은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