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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waysAwake Feb 14. 2017

피시방 자주 가시나 봐요?

피시방에 대한 단상

"피시방 자주 가시나 봐요?"

그녀는 그렇게 묻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네, 자주는 아니고 가끔 갑니다,라고 대답했다. 창 밖에는 비가 내렸다. 가늘고 여린 비는 중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땅바닥으로 추락해 부서졌다. 작은 입자로 대기 중을 떠도는 비는 냄새가 되어, 누군가 가게 문을 열 때마다 비 냄새가 났다.

"피시방 가서 무슨 게임하세요?"
"보통 남자들이 하는 게임을 합니다."

"롤?"
"네, 그것도 가끔 합니다. 많이는 아니고요. 친구들이랑 가끔"
"그렇다 해도 게임하는 시간은 아깝지 않아요? 시간을 더 좋게 쓸 수도 있을 텐데"
"이를테면?"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의미 있는 일들을 말했다. 거기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필라테스는 상상해본 적도 없다. 피시방을 가다가 뒤를 돌아, 아 오늘은 필라테스야,라고 보통 남자들은 행동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이미 보통 남자가 아니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쳤고 그녀는 계속 무언가를 얘기했다.

남자들, 그러니까 아직 20대인 보통 남자들은 만나서 할 게 정해져 있다. 술을 마시고 피시방을 가거나 피시방을 갔다가 술을 마신다. 종종 영화나 쇼핑, 카페, 클럽 등을 가지만 그건 서로의 교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남자들이 시간 보낼 곳은 이 넓은 대한민국에 많지 않다. 피시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즐겁고 흥미롭고 시간이 잘 간다. 무엇보다 싸다. 짓누르는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종합적인 가성비에서 피시방을 따라올 곳은 없다.


나는 그녀에게 피시방에 가는 행위의 타당함을 설명하려다 가만두었다. 그녀는 이미 피시방 가는 남자들에 대해 약간의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알 수 없지만, 세상에 그런 종류의 여자는 분명 있다. 손가락이 가는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가 있는 것처럼. 

내 대답이 희미해지자, 우리의 대화도 끊겼다. 나는 그런 상황을 가만두었다. 나는 다 마신 맥주잔도 가만두었다. 정적이 조금씩 길어지자, 그녀는 불안해했다.

사람은 관성에 영향을 그대로 받는지, 대화가 계속되지 않으면 미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나는 은색 빛이 나는 포크로 테이블 위에 가리아게-일본식 치킨 요리-를 하나 찍어 먹었다. 가리아게는 식어, 퍽퍽해졌지만 혀에 닿자 그 짭조름한 맛이 일순간 멈춘 나의 식감을 일깨웠다. 나는 연달아 가리아게를 찍어 입에 넣었다.

"맛있으신가 봐요? 조금 식었던데" 그녀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이고는 "네, 나쁘지 않네요"라고 말했다. 그때도 누군가 선술집에 들어왔고, 비 냄새는 여전히 계속 대기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이상하리만치 귀찮아졌다. 그녀의 말들이 미묘하게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나이를 한 두 살 먹어도 나는 여전히  복잡한 나의 감정 체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갈증을 느껴, 찬물을 단번에 들이켰다. 그녀는 별 볼일 없는 놈이군, 하는 표정을 숨기며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사이엔 커다란 기류의 벽이 생겨 버린 것이다. 이를테면 딱히 할 말 없고 딱히 말하고 싶지도 않아, 라는 벽.

예전 여자 친구는 차라리 피시방을 가라고 했다.
"술 먹고 뻘뻘 대며 놀러 다니지 말고 차라리 피시방을 가, 돈 굳으면 맛있는 거 같이 먹고"


그녀는 나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었다. 멍청하게, 그녀와 헤어지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런 자각만으로 우리의 세상을 원상 복귀시킬 순 없었다. 남녀 사이라는 건, 나의 감정체계보다 몇 배나 복잡해서 어긋나 버리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5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날 만큼 그녀는 좋은 여자였다. 

나는 정적을 깨고 "들어온 지 1시간이 넘었네요. 이제 그만 나갈까요?"라고 말했다. 그녀도 그래요,라고 말하고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커피는 생략.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는 마치 고대부터 그랬던 것처럼 땅에 부딪혀 부서지고 튕겨나가고를 무한히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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