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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세계 Apr 23. 2016

빅토리아피크를 느끼는 방법들

홍콩의 기분_5


정말이지 우아하다.

시쳇말로 '야경덕후'인 나에게 빅토리아피크의 야경은 일견에 소장가치 1호 야경으로 자리매김했다.


황홀경이랄까.




여행은 바람이라 생각했다.

도시마다의 바람 내음을 느끼는 것.

어쩌면 내가 여행하는 이유다.


그 바람에는 도시의 지정학적 특성부터 지역민들의 삶까지 담겨있다.


프라하 블타바 강변의 노부부


프라하 블타바 강변에서 맡은 바람 내음은 따스했고, 부다페스트 세체니 다리 위에서 맡은 바람은 도시가 품은 아픔처럼 서늘했다. 로마의 바람은 지중해에서부터 습기를 잔뜩 머금고 와 끈적했는데, 실제로 거기 사람들도 그 바람 마냥 농밀했다(?).




너도 나도 셀카삼매경


빅토리아피크에서 내 피부를 스친(사실 워낙 강풍이라 때리다 시피했지만) 바람은 홍콩의 내음을 느끼게 했다. 화려함과 억척스러움이 공존하는 홍콩의 삶.


근 두 시간 가량을 그저 전망대에서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이 무슨 욕심인 건지.




15번 버스 정류장 앞에서


내가 빅토리아피크를 감상한 방법은 이렇다.

오후 5시경 센트럴역에서 'to The PEAK(山頂)' 라 되어있는 15번 버스를 탔다. 가이드북에는 50분가량 소요된다고 서술되어 있지만 실소요 시간은 30분남짓이었다(여행동안 가장 붐비는 시간에 두 번 산정에 올랐는데 두 번 다 그랬다).


홍콩의 명물 피크트램을 타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사람이 많아서.


그런데 의외로 15번 버스가 주는 매력이 상당했다. 홍콩섬 중심부를 가로지르며 빌딩 숲 사이사이 고가를 지나 산으로 향하는 노선이 인상적이었다. 오전에 두 발로 걸었던 거리들을 버스 2층에 앉아 내려다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버스가 산 능선을 오르기 시작하면 창 밖 풍경에 눈을 뗄 수 없는데, 간간이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구룡반도 쪽 절경이 애태우듯 보였다 말았다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중간중간 위태롭게 하늘로 뻗은 얇은 홍콩식 빌딩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창에 코 박고 가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크게 두개의 건물이 있는데 하나는 쇼핑센터 건물이고 하나는 전망대 건물이다. 버스 내려 먼저 보이는 건물은 쇼핑센터 건물인여기도 테라스형태의 간이 전망대가 있다.


홍콩섬의 낙조


쇼핑센터 테라스에 오르면 좌측 뒤편으론 태평양이 펼쳐져진다. 고요한 바다 위로 무역선들이 보일 테고 작은 어선들도 통통거리고 있을 것이다. 오후 5~6시 즘 갔다면 슬슬 일몰을 준비하는 그 날의 태양이 수평선에서 한 뼘 위즘에 걸려있어, 그 모습 또한 장관일 테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적당히 감상하고 구룡반도 쪽을 바라보는 테라스로 나오면 눈 앞에 홍콩섬의 전경이 펼쳐진다. 쇼핑센터보다 앞쪽에 위치한 전망대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 시야각이 좋지는 않지만, 이 또한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전망대에 올라 보는 것보다 경치가 가까워 훨씬 실감 난다). 그곳에 서서 경치를 보고 있노라니 몇몇 한국인 관광객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 앞에 전망대는 돈 내야 된다던데, 여기서 봤으면 됐지"


아니 된다! 절대로 아니 된다..


진짜배기를 원한다면 꼭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쇼핑센터를 나와 전망대 건물에 들어갔다.

피크트램은 전망대와 바로 연결되어 있어 그 앞이 상당히 붐빈다. 전망대 안은 본격적인 쇼핑센터는 아니지만, 레스토랑과 전시장 그리고 기념품 숍 등으로 구성돼있다.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앞에 있는 기념품 숍에서 입장권을 구매해도 되고, 옥토푸스 카드(교통카드)가 있다면 카드만 찍고 입장이 가능하다.


두근두근.


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면 금세 옥상전망대에 도착한다. 와우-




해질무렵의 홍콩


아래에서 보면 위태 위태해 보이던 고층 빌딩들이 빅토리아피크 가장 높은 곳에 올라보니 하나하나 아름다운 별이 되어 빛나고 있었다. 정상의 바람은 상당히 매서운 편인데, 이 또한 야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중 하나였으리라.


홍콩의 야경


해가 슬금슬금 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완전히 해가 넘어가 깜깜해진 순간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반짝이는 하나하나의 불빛을 보며,


'좁디좁은 방- 30층 넘는 고층 빌딩 속- 하나하나의 삶들을- 내가 아름다움으로 느끼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곳에서 느낀 바람 그 자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그 자체가 홍콩의 모습이고 삶이었다. 그저 관광객의 눈으로 만끽하면 그만일테지만, 괜한 죄스러움을 느꼈다.


물론 그 죄스러움 역시 주제 넘은 것이겠지.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이 오고가는 가운데

눈 앞의 그 절경은 한치의 흐트럼없이


우아하고 슬프고도 아름답더라.



사진은 직접 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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