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나는 며칠 전 우연찮게 로또를 한 장 구입했다. 지방에 가기 위해 버스 터미널에 갔었는데 버스 출발 시간이 남았었고 그래서 버스터미널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할머니 때문이었다. 남루한 복장의 할머니였는데 그녀의 작은 손에는 구겨진 로또 한 장이 쥐여있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잠깐 보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총각, 내가 차비가 없어서 그러는데... 이 로또 100불에 살라우?"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도박이나 로또 같은 걸 거의 하지 않는 나였지만 그래도 복권 한 장이 10만 원까지는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눈은 정말 애절했고, 바들바들 떨리는 그녀의 손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갑에 늘 현금 100불 정도는 가지고 다녔다. 나는 조용히 지갑을 열어 그녀에게 100불을 건네주었고 그녀의 로또를 건네받았다. 혹시나 해서 로또를 받는 순간 추첨일을 검색해 봤는데 다행히 이번 주 주말이었고 그래서 아주 찰나지만, 100불이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로또라는 게 참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은근 추첨일이 기다려지고 그래서 나의 하루하루가 꽤 길어졌다. 로또를 구입한 순간부터 당첨되면 그 돈으로 무얼 할지 다양하게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고.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추첨일 아침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로또 1등에 당첨돼서 어마어마한 상금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사실 내가 1등에 당첨되어봐야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내가 그간 1등이 된 것에 상상했었을 때도 '만약 1등이 된다면 30%은 불우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 기부를 하고, 30% 정도는 부모님과 가족에게 주고, 20% 정도는 좋아하는 술들을 사서 하루 만에 다 마셔버리고, 남은 20%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쓰자.'로 정리를 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로또가 당첨돼서 한 번에 크게 들어오는 돈이 없을 뿐이지, 늘 하고 싶은 건 늘 하면서 살아오고 있기에 로또가 당첨되어봐야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굳이 내가 로또에 당첨될 필요가 있을까? 맞아. 신이 있다면, 정말 정의의 신, 예수나 부처나, 등의 신들이 있다면 나에게 1등 당첨을 하게 해주는 것보다 정말 힘든, 정말로 이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누군가에게 상을 내리는 것이 맞지 않은가. 만약 내가 로또 1등이 된다면 어찌 보면, 그건 정의의 신들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 되는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굳이 내가 로또 1등이 될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1등이 되어봐야 내가 그간 생각하고 있고 살아왔던 모든 것들이 조금 비틀릴 것 같았고 귀찮은 일들도 더 생기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이런 기회? 나에게 기회는 아니지만 이 기회를 저버림으로써 정말 힘든 누군가에게 이 기회가 돌아간다면 오히려 그게 더 좋지 아니한가까지 생각이 미쳤고. 그래서 나는 며칠간 내 지갑에 잘 넣어두었던 로또를 갈기갈기 찢어서 사무실 구석의 작은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