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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Sep 23. 2020

아빠 기억하기 : 소뇌위축증

#2

*소뇌위축증을 앓고 있는 아빠를 시간이 지나서도 기억하기 위한 기록


소뇌위축증(소뇌실조증);

소뇌 속 세포의 활동이 약해지며 운동신경이 둔해지고 언어장애, 운동장애, 배뇨장애 등을 초래하며 이후 전신마비로 사망에 이르는 병.
'파킨슨 증후군(파킨슨 병은 아니나 파킨슨 병과 증상이 비슷한 질환)'에 속해 있는 병으로, 파킨슨병과 비교했을 때 병변의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고 약물에 대한 반응도 매우 안 좋은 편.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희귀 난치성 질환'


아빠의 병명을 듣고나서 알게된 내용들은 이 정도였다.


'사망', '불치'라는 단어가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만 아빠의 병이 당시에는 와닿지 않았다. 그런 비극은 나의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게다가 아빠는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아주 심한 숙취를 매일, 매순간 앓고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라고 하니 아빠는 당시에도 매우 괴로웠을 것이다. 미련한 내 눈에만 달라진 게 없어 보였을 것...) 게다가 아주 드물게 이차적 원인으로 발병한 것이라면 원인을 제거해 치유가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도 봤었기 때문에 더더욱 와닿지 않았다. 아니 딱히 희망적인 이야기로 느껴지지도 않았고, 당연히 아빠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당연히 나을 수 있을 거라고. 무슨 믿음이냐고? 어느날 갑자기 수많은 병들 중에서도 치료법이 없는 희귀 불치병 판정을 받는다는 거. 그게 더 믿기 힘든 일 아닌가.


그리고 아빠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아빠, 왜 이러는거야?


아빠의 소뇌위축증 확진 초기를 생각하면 여러 장면이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그 시기를 떠올리는 것은 상당히 괴롭다. 변해가는 아빠의 모습이 괴롭고 원망스러운 것이 첫번째. 그런 아빠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에 대한 자책이 두번째다.


아빠는 식사를 하면서 뿜는 일이 많아졌다.

우리 눈에 보이는 아빠의 첫번째 변화가 이것이였던 것 같다.

당시 아빠는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음식을 씹다가, 특히 물이나 음료 종류를 마시면서 뿜는 일이 꽤 잦아졌다. 아빠 맞은 편에 앉아있다가 음식물을 뒤집어 쓰는 일도 많아졌고. 그럼 아빠는 당황스러워했고, 민망해했고, 미안해했다. 처음에는 '왁!' 소리지르고 짜증을 내다가도 민망해하는 아빠 모습에 괜찮은 척, 닦아냈다. 우리 가족은 "아빠 맞은편 자리는 위험 존"이라며 장난스레 피하기도 했다. 재밌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아빠가 음식을 입에 넣으면 "이제 조용히해 조용히해"하고 장난스런 눈빛을 주고받았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아빠는 더 뿜기도 했지만.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진정한 일류들이었을까.


아빠는 식탐이 많아졌다.

어릴 적 아빠와의 식사를 생각하면… 천천히, 참 점잖게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한 숟가락 정도는 항상 남겼던 것 같기도 하다. 미식가여서 숨은 맛집에서 자주 음식을 사오기도 했다. 많이 먹는 것보다 맛있고 건강하게 먹는 것을 좋아했다. 치킨이나 피자,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는 좋아하지 않았고. 그런 아빠가 식탐이 늘어났다.

그런 날이 있었다. 아빠와 엄마가 함께 코스트코를 갔다. (확진 초기 아빠는 혼자 거동이 가능한 정도였다.) 아빠가 힘들어해 엄마가 장을 보는 동안 아빠는 푸드코트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그때 지진이 일어났다. 참 드라마틱하지만 정말이였다. 놀란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뛰어갈때 아빠가 한 일이 무엇일까.

지진이 나기 전, 아빠의 맞은편에 젊은 엄마와 어린 아이가 핫도그를 먹고있었단다. 그리고 그때 일어난 지진으로 모자가 자리를 뜨자 아빠는 바로 그 자리로 가 남은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어버렸다고 한다. 진정되고 돌아온 모자가 아빠 모습을 보고 이상한 사람 보듯 경계하고 바로 자리를 떠버렸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당시에는 본인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든 변화가 생겨났다. 아빠의 '화'였다.


아빠는 화가 잦아졌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이유는 다양했다. 아니 이유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내는 화였다. 우리가 말을 길게해도, 대답을 빨리 안해도, 식사가 조금 늦어도. 이유는 '그냥'인 것 같았다. 한 번은 앞좌석에 앉은 아빠에게 '안전벨트를 메라'며 쥐어줬다가 큰 화를 들었다. 이런 화에 이유랄게 있을까. 또 한 번은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빨리 집에 가자'며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나는 친척들 앞에서 보이는 아빠의 모습이 당황스럽고 슬펐다. 그리고 그 슬픔은 화로 표출되어 아빠가 미웠다. 아빠의 화에 욕설이 섞여갈때, 그 화가 유독 엄마를 향할때. 속에서 불이 일어나는 기분을 느꼈다. 누가 둔기로 뒷통수를 내려쳐 눈이 돌아가는 느낌이였다. 한계가 무너져 참을 수가 없었고, 나도 화를 내고 욕을 했다. 아주 패륜으로. 내가 아는 아빠가 아닌 것 같았다. 우리 아빠가 아니니까, 그때는 아니였던 거니까 나도 아빠에게 그렇게 했던 거라고, 나는 지금도 비겁하게 나를 방어한다.


우리 가족이 망가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아주 모순적이게도 그 순간이 그립다.

우리 아빠가 가장 덜 아팠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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